2022,May 26,Thursday

몽선생( 夢先生)의 짜오칼럼 – 탐욕의 전쟁은 멈춰야 한다

탐욕의 전쟁은 멈춰야 합니다. 무력으로 억압하는 모든 행위는 멈춰져야 합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면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침공(侵攻)’입니다. 약 두 달 전의 일입니다. 전쟁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침공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침략을 의미합니다. 공격하는 측의 도덕적 명분을 찾아볼 수 없는데 이 사태가 딱 그렇습니다. 하기야 전쟁을 벌이는데 ‘도덕적’ 명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웃음을 살 일이기는 합니다. 명분이란 게 포장일 뿐 속셈은 항상 다른 곳에 있는 법이니까요.

전문가들은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로 촉발되었다고 합니다. 크림반도는 2014년 러시아에 합병되었고 돈바스는 친러 반군의 활동으로 내전이 끊이지 않던 터라 이런저런 이유가 얽혀 나토 가입을 추진했지만 이를 불안히 여기던 러시아를 가만 있지 못하게 했다는 거지요. 천연가스를 숨겨진 원인으로 드는 이들도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통하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공사가 핵심입니다. 실제로 EU 국가들이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린 이유도 천연가스의 원활한 공급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천연가스 파동으로 혼쭐난 것이 불과 2021년의 일이었으니까요. EU는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실정입니다.

그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의 해묵은 감정으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기에 소환되는 것이 홀로도모르(Holodomor) 대기근 사건입니다. 우크라이나는 프레리, 팜파스와 더불어 세계 3대 곡창지대 중의 하나입니다. 영양소가 풍부한 흑토로 뭘 심어도 잘 자라는 땅이라 유럽의 빵바구니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그런데 1932년 기근이 찾아왔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전염병까지 발생하여 사태가 심각해졌습니다.  대기근은 우크라이나 전역을 굶주림에 빠지게 했습니다. 사망 인구의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1933년까지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의 10~25%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스탈린의 소련은 수탈행위를 멈추지 않았고 심지어 기근에 대한 국제원조까지 막았습니다. 그러면서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우크라이나 농민들이 살기위해 국경을 넘어 인접국가로 탈출하려 했는데 소련 국경군에 의해 사살되는 참극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이를 홀로도모르라고 부르며 기념일로 삼아 매년 곡식 낱알을 뿌리며 죽은 이들의 원혼을 달랜다고 합니다.

전쟁의 발발 원인을 찾다 보면 끝도 없습니다. 역사와 정치의 변화, 경제, 집단 심리까지 뒤져야 합니다. 그것들이 얽히고 설킨 내용을 남이 이해하기 쉽게 포장해 낸 것이 ‘명분’입니다. 그러나 이런 전쟁의 실제 이유는 생각보다 명백합니다. 그것은 ‘탐욕’입니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집권 이후 탐욕을 점차 노골화했습니다. 체첸전쟁의 마무리, 크림반도의 병합과정, 돈바스에서 벌인 그의 시도는 성공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학습효과가 그럴싸한 명분이 없어도 무력을 행사하기를 서슴지 않게 했을 것입니다. 알자지라방송은 COVID-19로 인한 푸틴의 국내 지지율 하락 만회가 이 전쟁의 숨겨진 이유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를 침공했듯이 내부문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집권 여당들이 불리할 때 연애인 추문을 터뜨리거나 안보문제를 만들어 관심을 돌리려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태에 비하면 애교 수준입니다. 이번 전쟁의 발발에는 국제사회의 무기력함도 일조했습니다. 국제연합의 영향력은 유명무실 해졌고 서방세계는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손익의 주판알을 튕기기에 바빴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이라고 나을 건 없습니다. 전쟁을 비난하고 반대하면서도 꼭 짚어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국제법 파기는 코털 뽑는 수준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푸틴이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싸움이 벌어지는 곳의 사람들 몫입니다. 땅은 피폐해지며 삶은 고단함을 넘어 파괴되기까지 합니다. 이런 일들은 민간인들, 특히 여성들과 아이들의 몫이 되고 있습니다. 이미 부차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저지른 범죄가 어떠한 지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전쟁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을 보면 한숨이 나옵니다. 다들 전쟁을 비난하고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그런 것은 아닌 듯합니다. 비디오게임처럼, 혹은 주식전광판을 보듯 사태를 해석하는 이들, 영상을 편집하되 자극적인 부분들만 편집해 노출시키는 이들을 보노라면 아연실색하게 됩니다. 역시 탐욕의 기재가 작동합니다. 돈이 불러온 탐욕의 논리가 들러붙어서 남의 피해로 나의 배를 불리는 수단으로 삼습니다. 관심에 흡착하여 살찌우는 기생충 짓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이러한 탐욕의 종교에 빠진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제 탐욕은 국가의 어떤 체제를 구분하는 특성이 아니라 인간 본성이 앙모하는 신앙이 되어 버렸습니다. 과시하는 힘이 우선하는 세계, 그것을 먹고 자라는 폭력, 폭력의 명분을 제공하는 탐욕의 논리가 은연 중에 멈추지 않는 강처럼 우리들의 정신 아래를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은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하는 잔인함으로 물들게 하고 인간을 인간이 아닌 참혹함의 바닥에 내팽개치지만 그렇게 만드는 것은 신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그 와중에 여러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돕기에 나서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저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제가 속한 작은 커뮤니티를 통해 국경 없는 의사회에 비록 작은 비용이지만 후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돌아보니 세상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시리아의 내전으로 인한 난민사태는 진행형이고 미얀마의 내전은 여전하며 아프가니스탄 난민사태도 해결되기에 요원합니다. 세상은 칼로 싸우던 때나 드론으로 싸우는 때나 거기서 거기입니다. 수단만 바뀔 뿐 탐욕은 그대로이니까요.

우리나라도 아픈 역사가 많습니다. 지정학적 특수성이라는 멋진 표현 속에 처절한 대가를 치렀고 또 지금도 치르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입니다.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땅은 역사적으로 유럽인들에게나 아시아 유목민들에게 진출의 통로였고 러시아에게는 유럽과 바다를 향한 다리로 노림 받아왔습니다. 결국 세력의 확장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탐욕의 희생물입니다. 그러므로 국가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없이 평화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우리에게 미사일을 쏘는 이들에게 곡식을 퍼줄 때에는 낭만의 혀가 아닌 제압할 힘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도주의의 핵심입니다. 힘이 없으면서 퍼주는 것은 평화의 방법이 아니요 평화의 구걸일 뿐입니다. 나라가 강해야 합니다. 진정한 평화는 전쟁을 멈출 만한 힘, 그리고 그 힘이 유혹하는 탐욕을 자제할 힘을 갖출 때에만 가능합니다.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어서 종식되고 평화가 찾아오기를, 그리고 우리나라가 그런 힘을 갖춘 나라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박지훈 夢先生

건축가(Ph.D),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동남아사업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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