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August 12,Friday

한주필 칼럼 – 立不敎 坐不議(입불교 좌불의), 존재로 주는 가르침


요즘 한국의 위상은 그야말로 황금기입니다. 반만년의 한민족 역사상 이렇게 풍요롭고 국력이 성세했던 적이 있었을까 싶게 지금의 대한민국은 엄청난 위상을 자랑합니다. 

하루 세끼 먹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 엊그제인데, 이제는 너무 먹는다고 살을 빼는 일이 전국민의 과제가 되었으니 참 세상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졌습니다.  

백세를 넘기신 노모를 아침 느즈막한 시간에 기침하게 하고  얼굴을 닦고 이동식 변기에 앉혀드립니다. 아무 말씀도 없이 변기에 앉아 계신 노모의 편안한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에서 100년 찐 세월의 깊이를 어렴풋이 감지합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북한에서 일본의 이등국민이 운명인 줄 알고 태어나, 만주사변, 대동아 전쟁의 참화를 고스란히 겪고, 18세 나이에 함경도 종성 한씨 목사님 집안에 시집와서 지긋지긋한 일경의 감시속에 지내다가 해방을 맞아 일경의 눈에서 자유로워졌다 싶었는데, 그것도 잠시, 곧 북한지역을 점령한 공산당에 의한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자 다시 전 가족이 남쪽 서울로 내려오고, 수년간의 노력으로 간신히 자리를 잡았으나 곧이어 터진 한국 전쟁, 결국 4남매를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을 떠나 그곳에서 이 글을 쓰는 인간을 낳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병약한 남편을 대신해 열 식구 살림을 도맡아 이끌다가, 고작 나이 50에 남편을 여의고, 그 후 반백 년을 혼자 지내시며 7남매 모두 제대로 교육시키고 건강하게 키우신 김성실 권사님. 그리 강건하시던 분이, 그 모진 세월을 꿋꿋이 이겨내신 분이, 이제 백년을 넘기니 더 이상 혼자 지탱할 기력조차 없으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진 세월을 보내신 분이 이렇게 오래 사시는 것도 참 신기한 일입니다. 평생을 영혼으로 의지하신 예수님의 은총인가 싶기도 하고, 아직도 이 땅에서 하실 일이 남아있나 싶기도 하지만, 어찌 높으신 하늘의 뜻을 짐작이라도 하겠습니까? 단지 그 뜻 덕분에 그 자손들이 매일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갑니다.  

어머니는 어떤 생각일까? 일본의 탄압과 최악의 빈곤, 굶주림을 일상처럼 지내던 세월에, 주검이 바람에 날린 길가의 낙엽처럼 널부러진 지옥의 참화를 겪으셨다가, 이제 전세계가 부러워 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이 변화를 어머님은 어떻게 느끼실까. 

어머님이 흔쾌한 답을 주실꺼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웃으시겠지요.

立不敎 坐不議(입불교 좌불의) 라고 “서있을 뿐 가르치지 않고, 앉아있을 뿐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다” 처럼 그저 무언의 가르침을 주시겠지요. 

요즘 눈과 귀가 다 어두워지신 탓에 대화가 거의 없으신 어머니지만 대화를 못한다고,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듯합니다. 대화에 꼭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느낍니다. 

오히려 과한 대화가 불화를 일으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목소리가 터지면 늘 당신의 소리를 낮췄습니다. 말씀이 없으시면 가르침은 더욱 깊어갑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나이 든 자식들은 그만큼 자기 생각이 굳어집니다. 굳은 신념은 곧잘 잦은 충돌로 드러납니다. 어머니는 침묵으로 기도합니다. 말을 멈추고 생각하라 합니다. 시간이 문제를 도닥이고 해결책을 마련할 때까지 인내를 갖고 기다립니다. 

어머님은 늘 이렇게 가르침을 줍니다. 아무 말씀도 없이 그저 가만히 앉아계실 뿐인데 말입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존재는 이승이든 천국이든 문제가 안됩니다. 그 이름은 모든 이의 영원한 가르침, 그 자체입니다.   

 

어려서 읽은 박인노의 시조는 우리에게 孝 라는 것을 되새기게 만듭니다. 

조홍시가(早紅枾歌)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가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박인노가 한음의 집에 갔을 때 접시에 담긴 홍시가 나오는 것을 보고 홍시를 좋아하시던 어머니에게 드리고 싶은데 가져가도, 반길 어머니가 없으니 그게 서럽다는 시조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바꿀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는 유대인의 격언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부모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바뀌고 인간의 삶이 아무리 풍요로워져도 자식과 부모, 가족의 관계는 바꿀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바뀌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영원히 존중 받아야 할 관계라는 것이지요.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이 우애를 나누는 것은 인륜일 뿐입니다. 

아직 잡수시는 것을 사양하지 않는 모친을 두고 있는 저는 행복한 자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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