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August 12,Friday

한주필 칼럼 – 시시비비의 지옥

나이가 들면서 가장 자주 마주하고, 자습하고, 자책하기도 하는 큰 가르침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을 내세우고 고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시비를 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대화에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를 따지다가 서로 충돌을 하고, 감정싸움이 되고 결국은 관계에 금이 가는 말도 안 되는 사항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나요?

이에 대하여 장자는 이리 말합니다. “聖人不由, 而照之於天” (성인불유 이조지어천) “성인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대신 하늘의 이치를 따른다” 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장자가 말한 하늘의 이치란 자연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에는 올 그름이 없지요. 죽음도 자연의 하나라는 말처럼 자연에는 삶과 죽음마저 구분이 없는데, 올 그름의 구분이 있을 리 없습니다. 이 말은 우리식으로 풀이 한다면, 수양이 된 자는 문제를 판단함에 있어 고정된 관점이 없이 자유롭게 모든 것을 헤아린다는 뜻입니다.
네가 옳다, 너도 옳다, 부인도 옳소 하던 황희 정승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은 늘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며 핏대를 세웁니다. 자신의 옳음을 인정하지 않고, 내세우는 다른 의견을 모욕으로 받아 들이며 분노하고 저주합니다.
좀 지나고 보면 그리 난리 칠 일이 아닌데, 그 당시는 자신의 의견에 목숨을 걸고 상대에게 양보를 강요합니다. 

작은 의견의 차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관계의 의가 틀어질 정도가 됩니다. 시비의 지옥에 빠진 인간은 평생 쌓아온 의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도, 그깟 것이 무슨 대수냐 하며 이성 줄을 놓아버립니다.  

아 우매한 인간이여.  

아무리 올바른 생각이라도 평생 쌓아온 인연보다 귀하던가요? 

그저 하나의 의견일 뿐입니다.
양보한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맞는 것처럼 보여도 영원토록 바른 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런 불투명한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수십 년을 쌓아온 인연을 내칠 수 있나요? 그리고, 자신의 삶에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우둔한 이가 내세우는 의견이 뭐 그리 옳겠습니까?
나라는 구하고 인류의 생사가 달린 일이 아니라면 고집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가진 게 없는 미천한 인성이 만들어 낸 자기 방어일 뿐입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진정으로 반성합니다. 

이렇게 자기 방어에 무게를 두고 사는 인생은, 시비를 가리는 것이야 말로 자신을 지옥에 빠트리는 일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절대 깨닫지 못합니다. 다른 이와 비교하고 상대적 쓸모를 겨루며 내가 우월하다는, 어린 마음으로는 절대로 자신의 잘난 의견을 양보하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내가 그보다 더 잘나고 멋지다고 으스대고 싶은 젊음은 오히려 시비를 가리려고 팔을 걷어 붙이며 달려 듭니다.  

그런데 얻는 게 있나요?

요즘 말대로, 개뿔입니다. 시비를 통해 얻는 것은 그저 순간의 정신적 승리감이 전부지만 그 대가로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의 상처를 안기고, 덕분에 자신도 지옥에 빠져 헤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곤 밤에 이불을 걷어 찹니다. 

지옥을 아시나요? 인간관계에서 만나는 지옥이란, 누군가와 관계가 틀어지고 서로 갈등의 늪에 빠져 헤매는 것이 지옥입니다. ‘타인은 지옥이다’ 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새겨보면 지옥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르트르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건 상관없이 저는 사랑과 배려가 없는 관계가 바로 지옥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 곁에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의 의견에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천국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이가 좀 들면 그런 천국의 경험은 아니더라도 지옥의 경험은 조금씩 사라집니다. 자기 고집이 사라진다기보다 세상에는 하나만 있는 정답은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는 겁니다. 내가 주장하는 이 완벽한 이론도 어쩌면 엉터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다른 문이 열립니다.  

비로소 지옥에서의 탈출이 시작됩니다. 

갈등의 지옥을 견디기 너무 힘들어서 그 지옥을 탈출할 방법을 찾아 낸 것입니다. 그것이 포용입니다. 나와 다른 뭔가를,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연의 이치를 배우면서 점차로 갈등의 지옥을 벗어납니다. 그리고 세상이 나를 인정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덤으로 배웁니다. 내 존재가 확인되지 않아도 심리적으로 불안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갑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모든 것은 지금까지 끔찍한 지옥의 감옥에 갖혀 수 많은 세월을 보낸 대가로 얻은 비싼 처세술입니다.  

이렇게 우매한 인간은 꼭 당하고 찍어봐야 깨닫는 게 생깁니다. 그래도 지금, 내 삶에 제일 젊은 시간에 깨닫게 되어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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