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July 7,Thursday

한주필 칼럼-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초 간단 방법

 

아마 현대인이 가장 많이 먹는 약을 하나 들라면, 아마도 진통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집에도 아스피린 통, 두어 개를 눈에 띄기 편한 곳에 두고 수시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식탁에도 올라와 있습니다. 식사 후 먹는 상비약과 함께 자리 잡고 있는데, 혈압약과 함께 아스피린 한 알을 복용하면 혈관질환이 방지된다고 해서 아예 고혈압약과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고혈압 약 참 고약합니다. 최근에 고혈압 기준을 140에서 130으로 낮췄다고 하는데 이게 말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자신의 나이에 90을 더한 수치가 기준치였는데 어떻게 그리 달라진 것인지 이해가 잘 안 됩니다만, 의사 양반이 약을 먹어야 할 환자 취급을 하니 할 수 없이 먹기는 하는데 마음에 내키지는 않습니다. 혈압 기준치를 10만 낮추면 약을 먹어야 할 고혈압 환자가 1억명 이상 새로 생긴다고 합니다. 제약회사의 농간이 의심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내키지는 않아도 제가 혈압 약을 먹는 이유는 부친이 고혈압으로 일찍 돌아가신 탓입니다. 많은 병이 유전적 원인을 갖고 있는데 특히 혈압은 더욱 그런 듯합니다. 그래서 보험에 든다는 기분으로 혈압약과 혈관질환을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아스피린도 복용합니다. 

수년 전 허리가 삐끗하여 진통을 느끼며 고생하는데 의사인 큰 형이 아스피린을 먹으라 하더군요. 진통제인 아스피린이 허리에 작용한다는 생각은 못했죠. 머리 아플 때만 먹는 약인 줄 알았는데 허리 아픈 것도 통증이니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통제는 아픈 부위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뇌에 작용하여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에 어느 아픔이든지 다 같은 작용 합니다. 짐작은 하겠는데 실제로 의사의 입으로 확인하니 실망이 적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진통제가 뇌에 작용하여 아픔을 느끼지 못할 뿐 상처치료에는 전혀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아무튼, 그 후로는 진통제라는 약이 치료 약이 아니라 진통을 감추는 약이라는 것을 알고 그리 자주 사용할 약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행하게도 대표적인 진통제인 아스피린이 혈관을 물게 만들어 혈관이 막혀 일어나는 각종 질병을 막아 주는 물리적 작용을 한다기에 자주 복용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진통제가 육체의 진통만을 줄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아픔에도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아시나요? 즉 정신적 아픔 역시 뇌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면 진통제는 그것마저 덜하도록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왕따를 당해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등, 아무튼 정신적 아픔을 느끼는 부류를 둘로 나눠서 한쪽에만 진통제를 주었는데, 진통제를 먹은 부류가 정신적인 고통을 덜 느끼며 사회활동에도 더욱 적극적이었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즉 진통제를 먹음으로 정신적 고통을 덜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상식과는 좀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진통제가 뇌 안에 고통을 느끼는 부위에 작용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역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신적인 고통 역시 뇌가 느끼는 것이라면 뇌에 작용하는 진통제가 안 들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정신적 아픔을 표현하며 가슴이 아프다 하는데, 가슴이 아픔을 느낄 수는 없지요. 실제로는 뇌가 아픔을 느끼는 것이니 그런 아픔은 진통제가 다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실연의 아픔, 이혼의 아픔,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 인한 아픔, 말로 입은 마음의 상처 등 모든 마음의 고통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진통제를 권하면 되나 봅니다. 

이런 연구결과를 발표한 책에서 덧붙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접고 일단 상처가 아물도록 위로하고 보살펴줍니다. 평소 그리 가깝지 않은 사이이고, 하다못해 미운 사이라 해도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의 상처로 아파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성의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일로 그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되지 하고 상처에 소금을 뿌립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에게 왜 상처 입었냐고 나무랄 수 없는 것과 같이, 정신적인 아픔을 느끼는 사람에게 꾸중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들 역시 육체적인 환자처럼 대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단 모든 것을 접어두고 상처가 낫도록 돌봐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들 역시 진통제와 같은 치료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임을 인정하고 더 이상 상처를 쑤시지 말고 일단 병석에서 일어나도록 보듬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렇죠, 우리는 정신적 환자들에게 상처가 보이지 않는다고 너무 가볍게 취급한 듯합니다. 정신적 환자도 육체적 환자와 같이 일단 한 수 접고 환자로 대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되새겨 봅니다. 

또 한편 거꾸로 생각해보면 마음의 상처도 그리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진통제로 치유가 되니 말입니다. 

은퇴 후 집에서 밥을 축내고 있다고 마누라에게 꾸중을 듣고 마음의 상처를 받는 불쌍한 늙은 남편들, 아스피린 한 알 털어 넣고 잊어 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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