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4,Wednesday

전화번호부 혹은 냄비 받침판

요즘 별로 세상 사는 재미가 없어 어떤 책에서 소개한 것처럼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망상을 하며 책도 보고, 이런 저런 인터넷 사이트들을 뒤져봤는데 별다른 묘책은 나오지 않고 대신 베트남 관련 사이트에서 교민잡지에 대한 비판적 글을 발견하고 흥미롭게 읽어봤습니다.

< 씬짜오베트남>이라는 잡지를 대놓고 비난하는 글도 가끔 눈에 띠여 오랜만에 눈이 번쩍였습니다.그리고 관련 댓글까지 전부 읽어보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물론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한 비판적 댓글을 읽는다는 것이 심사를 유쾌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그것 역시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에 참을성을 갖고 전부 정독을 했습니다.

저희 잡지를 비난하는 글을 보면 재미있는 특징이 있는데 < 씬짜오베트남>에 대한 비판적인 글의 대부분은 제 칼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제 글이 너무 현 정부에 대한 지지를 일방적으로 드러내는 편향적인 글이라는 것이 비난의 이유입니다.
하긴 제가 좀 그렇긴 합니다. 아직도 전쟁 중인 나라에서는 일단 국정의 안정이 우선이라는 사고를 바탕으로 글을 쓰다 보니, 급진적인 변화를 원하는 젊은 누리 꾼들의 심사를 건드린 모양입니다.

그래도 뭐 어쩝니까? 제 이름을 걸고 쓰는 칼럼인데 제 사고를 바탕으로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죠.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각자 다 자신의 사고를 가진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제 글에 대하여 육두문자 이상의 모욕적인 표현을 써가며 폄하하는 혈기 넘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시원하게 잘 썼다고 칭찬하는 독자들도 있지만, 칭찬의 말씀이 고마운 만큼 비난하는 친구들의 심사도 다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싶은 것은 제 글에 대한 비난과 욕설이 보이긴 해도 저희 잡지 기사에 대한 폄하는 없더군요 오히려 가끔 저희 잡지에 게재된 기사들을 교민들이 볼만한 좋은 정보라며 소개하는 글들이 보여서 한편 마음이 놓이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특색을 보자면 아무리 교민잡지가 광고지에 불과하고 읽을 가치가 하나도 없는 쓰레기 같은 글을 실어도 그래도 교민잡지가 전화번호부로써의 역할을 한다는 것에는 이구동성으로 동의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찬사의 표현은 아니고 전화번호부 정도의 용도밖에 없다는 폄하입니다. 그래도 뭐, 그런 역할이라도 한다니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전화번호부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는 것만해도 교민사회에 귀한 봉사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데 한 발 더 나가서 잡지를 제작하는 사람들을 모욕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말이 있는데, 교민잡지가 라면 끓이는 냄비 받침으로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에 들고 간다고 하는 발언입니다. 이 말은 분명히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저 그만큼 읽을 거리가 없다는 얘기를 은유적 표현으로 비아냥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별로 감동을 주지는 않고 오히려 책을 만드는 인간을 자극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족을 답니다.
비록 무료로 누구에게나 배포되는 잡지이긴 하지만 이 책 한 권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대충 따져도 웬만한 점심 식사비 이상의 금액이 소요되는데, 그런 비싼 책을 2주마다 냄비 받침 용도로 소비하신다면 국가의 전체 GDP를 올리는 데는 일조하시겠지만 경제원리로는 효율성을 잃은 행위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걸머지고 나가실 분들이 그런 무감각한 경제 활동을 한다는 것은 개인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니, 혹시 냄비 받침판이 없어서 저희 잡지를 가져가시는 분이있다면 저희 회사로 방문해 주십시오. 냄비 받침판을 무상으로 드릴 테니 잡지는 가져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아도 잡지를 더 보내 달라는 곳이 많아서 부수를 늘여야 할 판인데 냄비 받침 용도만 빠져도 그런 염려는 안 해도 될 것 같으니까요.

아무튼, 교민 잡지를 냄비 받침판으로 사용하는 친구들은 비 웃음을 날리겠지만, 저희 편집 팀은 이왕 시작한 잡지인데 세계 최고의 교민잡지를 만들자는 자세로 일하고 있습니다. 별로 만족할 만한 급료도 받지 못하지만 교민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나름대로의 보람을 즐기며 둔한 머리를 짜내기 바쁩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참고로 저희 잡지 성향을 말씀 드리자면, 정치적으로는 좌우 아무 쪽으로도 편향되어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정치적인 성향을 주장할만한 역량도 자격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베트남에 대한 기사를 소개하고 발굴하여 교민들에게 필요하다고 느끼는 기사를 쓸 뿐입니다. 단,실명을 걸고 쓰는 개인 칼럼에 대하여는 철저히 개인적인 글로 인정하여 그 내용에 대하여 편집진은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희 잡지를 관심있게 읽으시는 분은 알겠지만 제가 쓰는 이 칼럼에 가끔 우파 쪽으로 편향된 글이 등장한다면, 또 한편, 다른 필자에 의해 쓰여지는 본지의 또 다른 칼럼은 정치적으로 좌파성향으로 보이는 글이 실리기도 합니다. 일부러 균형을 맞추는 것도 아니고, 칼럼은 단지 그 글을 쓰는 개인의 사고라는 정의(定義)를 따를 뿐입니다. 그리고 그 글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독자들에게 맡깁니다.

그럼에도 개인칼럼에 대하여 낯뜨거운 비난을 퍼붓는 친구들을 보면 뭔가 반응하고 싶은 욕구가 일기는 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 대중의 비난과 조롱에 몸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정도는 감수하기로 하고, 그저 본지의 기본 자세와 편집 원칙을 간략하게나마 말씀 드렸습니다.

그래도 이런 글을 쓰다 보니, 요즘, 사는 재미가 없어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수 있는 방법이 뭘까 하던 망상도 함께 사라져 버리는군요.
비난도 관심의 일종이라고 본다면 그것조차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삶이 항상 재미있고 행복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려준 셈이죠. 단지 많은 욕을 먹은 만큼 너무 오래 지루한 삶을 살게 될까 두려워지기는 합니다.

작성자 : 한 영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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