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rch 29,Friday

한주필 칼럼-골프와 명예

얼마 전 한국 여자 골프에 세간의 눈길을 끄는 신인스타가 등장했습니다. 윤이나라는 이름의 19살 소녀인데, 남자 선수 못지않은 탁월한 장타, 나이에 비해 성숙한 여성의 매력을 풍기는 외모에, 늘씬한 키, 뛰어난 미모까지 겸비한 예비스타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몇 개 대회에서 선두권에 이름을 올리더니 콜라겐 제품으로 유명한 회사가 주최하는 대회에서 우승컵을 올리며 새로운 여왕의 등극을 알립니다.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팬클럽이 생기며 많은 사람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리는 듯했는데, 지난주 충격적 뉴스가 하나 뜹니다. 

그 윤이나 선수가 한 달여 전 어느 대회에서 공을 숲속에 보내고 자신의 것이 아닌 공을 찾아 치고 난 후 바로 신고하지 않고 그냥 게임을 마쳤다는 내용이 담긴 자술서를 한국 골프협회에 보고하고, 그로 인한 어떤 처벌도 받을 것이고, 동시에 자숙하는 의미에서 모든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는 소식이 떴습니다. 

골프에서는 공을 바꿔 치는 것은 흔하지 않는 일이지만, 일단 일어나게 되면 칠 때마다 2벌타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보고하지 않고 게임을 마치면 실격 처리됩니다. 당연합니다. 잘못된 스코어를 보고 한 것이니 실격 처리되겠지요. 그러니 그녀의 케이스를 법적으로 풀이하자면, 그날의 게임은 당연히 실격 처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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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되는 것은 왜, 그녀는 그날 바로 보고 하지 않고 한 달이나 지난 후에 보고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시간상의 차이로 인해 그녀의 자백에 대하여 진정한 고해성사가 아니라는 질타가 나옵니다. 사회적으로도 온통 그녀의 도덕성을 지적하며 골프라는 운동을 할 자격 여부가 언급될 정도입니다. 

한마디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한 달여가 지난 사실을 고백하는 것 자체에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테고, 그 과정이 어찌 되었든지 그녀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자수를 한 셈인데, 그런 그녀를 너무 도덕적 기준만 내세우며 파렴치범으로 몰고 가는 것이 그 어린 소녀에게 알맞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프로라는 직업을 가진 이상 어린 나이가 책임을 면할 이유가 될 수는 없지만 일단 자기 스스로 자백했다는 것에 방점을 두고 처리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사건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한창 골프에서 내기를 즐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골프를 처음 배울 때 내기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배운 게 문제였지요. 덕분에 실력은 신속하게 늘고 골프룰에 대한 엄격한 자세를 갖게 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기 돈이 걸려있으니 골프룰을 어기는 경우 관용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타인에게는 물론이고 자신도 지킬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지금 와서 고백하는데, 그렇게 골프 내기를 즐기던 때, 나와 가까운 친구와 다른 두 명과 편을 가르고 공을 치고 있었는데, 어느 홀에서 나와 내 친구가 공을 그린에 둘 다 올렸습니다. 천천히 마크하고 공을 드는데 친구가 공을 닦아준다고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공과 얼른 바꿔서 다시 건네줍니다. 공이 바뀐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고백했을까요? 

물론 못했죠. 가슴이 두근거리긴 했지만 안 틀키기를 바랐지 고백할 생각은 못 했습니다. 더구나 나만 2벌타를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친구 역시 내 공을 쳤으니 벌타를 먹어야 합니다.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가슴이 두근 거렸지만 그대로 넘어가서 내기 돈을 챙긴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는 골프 칠 자격이 없는 인간인가요? 

또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지금은 한 번의 스윙으로 공을 두 번 터치하는 것이 벌타가 아니지만 예전에는 벌타였습니다. 

베트남에서 지인들과 공을 치면서 홀 매치 내기를 하는데, 가장 어려운 홀에서 저만 어프로치 파를 한 듯합니다. 내기 돈이 나에게 들어올 판인데 제가 거절합니다. 아니요, 저기서 어프로치 할 때 공을 두 번 건드렸어 하고 자백합니다. 동반자 누구도 보지 않았지만 내 스스로 자수하고 돈을 거절했습니다. 동반자들이 저의 양심을 칭찬한 것도 좋았지만 내 스스로 그런 고백을 한 것에 기뻤습니다. 바로 내 명예를 스스로 지킨 듯하여 그렇습니다. 나는 골프를 칠 자격이 되나요? 

이건 골프 할 자격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명예를 지켰는가 아닌가 하는 스스로의 선택 문제입니다. 남들이 뭐라고 손가락 질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룰을 잘 지킨다고 타인에게도 자신만큼의 엄격한 자세를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윤이나 선수를 질타하시는 정의롭고 도덕적인 기자 양반들, 그 어린 나이의 선수가 실수한 것이 그리 만인의 공적인 양 질타 받아야 할 일입니까? 

5.16전에 작은 신문사를 경영 하시다 문을 닫으신 부친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세상에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인간이 경찰과 기자다 하셨는데, 그러고 보면, 그런 작은 실수에 골프계에 참변이 일어난 듯이 떠들어대는 기자들 절대로 가까이할 인간들이 아닌 듯합니다.    

위에서 제가 겪은 공을 바꿔 친 사건은 20여 년이 지났음에도 지금 생각만 해도 얼굴이 붉어집니다. 윤이나 선수를 그런 잘못을 고백하기까지 얼마나 깊은 번민으로 고민했을까 생각하면 따로 벌을 내리지 않아도 충분히 벌을 이미 받은 것이라 봅니다. 

그녀에게 다시 한번 스스로 명예를 지킬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예를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키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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