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September 25,Friday

후임은 전임을 씹는다

푸미흥 사무실에서 두 시간 반 정도를 쉬지 않고 가야만 도착할 수 있는 이 회사를 방문하는 날이면 아침 미팅만 마치고 곧장 출발한다. 누군가 나에게 베트남에 대한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해 보라기에 ‘베트남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음’이라고 짧게 말한 적이 있었다.

바뀐 지 1년이나 된 운전기사의 뒷머리는 언제나처럼 구겨진 채 정비되지 않고 있었고 뒷머리가 정비되지 않은 기사는 차 대가리를 오토바이 대가리보다 먼저 밀어 넣기 위하여 커락션을 쉼 없이울리고 오토바이 위의 꽁가이는 오토바이 대가리를 차 보다 먼저 밀어 넣기 위하여 커락션을 앙칼지게 울린다. 먼저 밀어 넣어야 임자가 되는 도로는 대가리 때문에 빈틈이 없고, 없는 빈틈 사이로 또 다른 오토바이 대가리가 백미러를 스치며 잽싸게 지나친다. 그들이 잽싸게 지나친 도로 옆에는 ‘껌승 헤우’ 연기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릿한 냄새를 풍기고 그 노릿한 냄새는 차 대가리와 오토바이 대가리 때문에 빈틈없는 도로 사이를 어슬렁거리다 대가리 싸움을 하고 있는 차 속까지 기어들어 온다. 다시 한 번 누군가 나에게 베트남을 한마디로 정리하라고 한다면 난 “산만해, 너무 산만해~”라고 말할 것이라고 생각 해 본 적도있다.

40분을 달려야만 산만한 호찌민을 빠져 나온다. 빠져나온 산만한 호찌민은 뒤에 있었지만 앞에 있는 빈증 도로를 산만하지 않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난 40분이나 달려 산만한 호찌민을 벗어나 산만한 빈증 도로를 머리카락이 정비되지 않은 기사와 함께 진입하고 있다. 8월의 비는 내 차가 지나가야 할 앞을 깊게 때리기도 하고 내 차가 지나 온 뒤를 강하게 때리기도 하고 창 옆을 달리는 오토바이 위의 꽁가이 헬멧을 예쁘게 때리고 튕겨져 나가기도 한다. 아직도 1시간 넘게 산만한 비와 함께 가야 하기에 헬멧과 마스크에 가려 보지 못한 빗속의 꽁가이 얼굴을 상상하며 눈을 감는다. 감은 눈 속에서는 조금 전 보지 못한 꽁가이의 얼굴이 들어 올 수도 있고 먼 과거의 일들이 너무나 가깝게 들어와 있을 수도 있다.

내가 방문하는 회사와 거래한지는 4년이 조금 넘었지만 나는 벌써 이 회사의 3명의 전임 법인장을 알고 있고 이번에는 4번째 선임 법인장을 알기 위해 두 시간 반을 달려가고 있다. 지금까지 바뀐 3명의 법인장이 회사에 한 번도 돈을 남겨 주지 못해 바뀐 것인지 아니면 회사가 그에게 돈을 남겨 주지 않아 그가 회사를 바꿔 버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회사는 법인장이 4명이나 바뀔 동안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었고 돈을 남기지 못할 때마다 한국 본사 직원의 출장횟수는 잦아지고 본사 직원의 출장 횟수가 잦아질 때마다 법인장은 바뀌어 갔다.

4년 전 초대 법인장인 정 법인장을 처음 만났을 때 난 ‘참 젊음이 좋다’란 생각을 했으며 그는 참 좋게 젊어 있었다는 기억이 난다. 좋게 젊다는 것은 피부가 아직 탱탱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엉덩이가 벨트위까지 볼록하게 붙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본인의 실력을 믿기에 두려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에서 뱅기를 타고 온 따끈 따끈한 한국산 법인장이였으며 그의 책상 위에는 ‘베트남어 길라잡이’란 빨간색 책이, 많은 상처를 받은 채 올려져 있었지만 그가 만든 공장을 가동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찾아온 금융위기로 인하여 오더가 줄어들 때 한국 본사 직원의 출장은 잦아졌고 본사직원이 3번째 왔다 갔을 때쯤 그의 회사에는 호찌민에서 두 시간 반이나 차를 타고 온 베트남산 선임 법인장이 출근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전임 법인장이 되어버린 그와 호찌민에서 온 후임 법인장의 어정쩡한 관계는 한 달 동안 지속되었지만 ‘초대 법인장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딱히 근거도 없는 전설을 ‘좋게 젊어’ 있는 그도 극복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가는 뱅기를 떤선넛 공항에서 타고 떠나갔다.

호찌민에서 두 시간 반이나 차를 타고 출근한 후임 박 법인장을 처음 만났을 때 ‘베트남에서 늙어 있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베트남에서 늙어 있다는 것은 머리카락이 몇 개인지 한 시간 만에 셀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본인의 베트남 말이 성조가 있다고 혼자 느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베트남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떠나간 정 법인장을 ‘얘’ 라고 표현했으며 그는 ‘얘’가 되어 버린 정 법인장이 만들어 놓은 공장을 ‘아무것도 모르는 얘가 만든 공장’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가 정 법인장이 처리한 경비나 구입품목에 대하여 직원을 시켜 일일이 조사하여 본사에 보고하는 일부터 하였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얘기가 되어 떠나버린 정 법인장은 회사의 경비를 사적으로 축내고 공장의 라인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초대 법인장이 되었고 정 법인장이 무능력하고 파렴치한이 되는 만큼 박 법인장에 대한 본사의 믿음과 능력은 배가 되어 갔지만 그의 능력대로 공장을 뜯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여 운영한지 1년이 지나도록 공장의 실적이 오르지 않을 때쯤 본사 직원의 출장은 다시 잦아지기 시작했고 본사 직원이 두 번째 출장 올 때 따라온 사장의 인척이라고도 했고, 대기업에 근무한 적이 있다고도 한 젠틀한 사람은 출장자가 돌아 갈때 따라가지 않았고, 따라가지 않은 젠틀한 인척이 얼마 지나지 않아 후임 법인장으로 발령이 나버렸기에 박 법인장은 전임 법인장이 되어 두시간 반이나 차를 타고 호찌민으로 돌아갔다.

내가 젠틀한 김 법인장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눈 속에 칼이 있다’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눈 속에 칼이 있다는 뜻은 눈매가 옆으로 찢어졌다는 뜻이기도 하고, 내가 어릴 때 TV에서 본 ‘콜롬보’형사 같다는 뜻이기도 하고, 눈 속에 있는 칼로 누군가 벨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후임 박 법인장은 가장 먼저 회사 내 베트남어 통역원부터 그의 눈속에 들어있는 칼로써 베었고, 전임 법인장이 채용한 총무과의 김 과장을 베었으며, 또 다른 한국인 두 명을 베고 또 다시 채용하고도 그의 칼은 멈추지 않고 전임 법인장에 대한 비리를 밝혀 배상 책임에 대한 내용 증명을 보냈으며 그 이후부터 전임인 박 법인장은 호찌민의 범죄자가 되어 가고 있었으며 그의 죄상이 한 개씩 추가될수록 사장의 인척이면서 눈 속에 칼이 있는 김 법인장 자리는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다.

난 그의 눈 속에 있는 칼과 대기업 근무 경험과 상관없이 사장의 인척이란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의 법인장 자리는 의자가 마르고 닳도록 오래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너는 ‘돈 못 벌어 주는 직원을 사랑하지 않는다.’란 근거 있는 진리에는 인척도 친척도 의미 없는 것이기에 본사 직원의 출장은 다시 잦아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종 업계의 법인장이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그의 회사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르고 닳도록 현직 법인장일것만 같았던 김 법인장은 어느날 전임 법인장이 되어 눈속에 칼을 품고 호찌민에 있는 떤선넛 공항을 통하여 돌아 갔다.
그리고 나는 아직 보지도 못하고 말만 들은 현직인 4대 법인장을 만나러 두시간 반을 산만한 호찌민을 벗어나 산만한 빈증 도로를 달리고 있다.

1년마다 법인장이 바뀌는 산만한 회사의 4대 법인장을 아직 만나 보지 못했지만 동종업계에서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온 법인장이 그의 연봉과 상관없이 스쳐 간 전임 법인장들처럼 또다시 회사의 일보다 전임 법인장의 비리 발굴로 본사의 신임을 얻고자 한다면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산만한 빈증 도로를 다시 한 번 두 시간 반이나 달려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있다.

작성자 : 최 은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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