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December 2,Wednesday

죽어서 남은 배우 – Robins Williams.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에 하나다. 가장 좋아하는 배우 하나를 꼽으라면, 여배우들의 눈부신 미모에 눈이 어두워지기 전에 선정을 한다면, 망설임 없이 뽑아낼 배우가 로빈 월리엄스다. 사실 왜 좋은지 모른다. 그의 코메디가 좋은 것인지 그의 천의 목소리가 좋은 것인지 아니면 조금은 기형적인 몸매에 각진 턱이 드러나는 네모진 얼굴에서 풍겨 나오는, 감춰진 신념 같은 것에 빠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면 대부분 뭔가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입시위주의 현대 교육의 허상을 보여주고 진정한 교육의 길을 알려준다.
아침에 깨자마자 화들짝 놀랄 만큼 큰 목소리로 외치는 굿모닝 베트남은 그의 우렁찬 목소리만큼이나 많은 가능성이 담긴 베트남을 암시한다. 전쟁 속에서도 피어나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전쟁이 찢어놓는 여린 인간들의 사소한 감정들, 전쟁 중임에도 그저 평화롭게 보이기만 하는 지루한 베트남의 풍경 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네이팜탄의 화염이 뒤덮이는 장면에 루이 암스트롱이 부른 저음의 < 원더풀 월드>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아이러니한 신을 만들어 낸 것이 누구인지 궁금할 지경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그는 100년의 역사를 지닌 자신의 출신 학교인 명문 웰든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하며 우리에게 많은 것을 속삭인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와 문학을 통한 전인교육을 실천하며, 사물을 자신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자아를 깨우라고 그 영화를 통해 우리를 자극한다. 이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는 원작자인 톰 슐만이 직접 시나리오를 만들고 키터위어라는 감독이 제작한 명작이다.

어느 친구는 그 영화의 평가 댓글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내 인생은 두가지로 나뉘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기 전의 나와 본 후의 나.
특히 학생이라면 무조건 봐야만 될 둘도 없는 영화다.

그가 교실의 책상 사이에 쭈그려 앉아 애들을 불러 모아 놓고 마치 어른들만 알면서 너희에게는 금단의 열매로 묶어버린 선악과의 얘기를 풀어놓듯이 조용히 속삭인다. “단지 호기심으로 시를 읽지 말라,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이 의학이나 법학이라면, 시에는 아름다움, 낭만, 사랑, 연민, 배려 등 사람의 감정을 보듬어주는 모든 요소가 담겨있다.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이유다” 라고 속삭이며 입시라는 자물쇠에 갇힌 아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캡틴, 오 마이 캡틴’ 100여 년이 된 명문학교의 엄격한 방침을 따르지 않으며,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 대학 진학만이 삶을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인간이라도 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너희들이 동경하는 이 학교의 졸업생들, 그 행적을 기리고자 너희들이 보는 교정건물 어딘가에 붙은 사진 속에 인물로 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의 순간을 즐기는 일이라며 참 교육을 실천하는 키팅 선생님의 언행이 문제가 되어 그가 학교를 물러갈 때,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였던 학생들이 그가 가르친대로 책상위로 올라와 키팅 선생님을 바라보며 그에게 존경과 사랑이 담긴 작별인사를 건넨다. 그가 가르친 그들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이미 자아를 찾아 자신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로 볼 수 있음을 캡틴, 마이 캡틴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가르침으로 우리가 이렇게 성장했다는 것을 알려주며 오 캡틴, 마이 캡틴, 그대가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하며 몸으로 외친다.
이 장면, 학생들이 책상위로 올라가 위에서 아래로 키팅 선생님을 내려다보는 그 시각을 담은 장면이야말로 학생들이 일방적 가르침이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진정한 자아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음을 암시하는 이 영화의 최종 메시지이다.

로빈 월리엄스를 보면 공연히 슬퍼진다.
오늘 그가 세상을 떠났다. 알코올과 마약 중독으로 인한 우울증이 자살의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이제야 왜 그의 얼굴에 그런 깊은 우수가 보였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의 드러나지 않는 우수 속에는 뭔가 밝힐 수 없는 비밀이 담겨있는 듯 신비롭기조차 하다. 그렇구나, 그랬어, 그 역시 세상에 전부를 다 드러낼 수 없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 아마도 그래서 그를 좋아했는지 모른다. 그는 학생들에게 담요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자아와 대화를 하라고 주문한다. 학생들 앞에서 눈을 감게 하고 자아에 빠져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스스로 풀어보라고 가르친다. 그런 수업을 받은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을 위해 하는 일이지 스스로 깨닫게 만든다.

그러던 그가 스스로 자신을 거두어갔다. 영화와 실생활은 이렇게 다르다. 영화 속에서 남의 마음을 열어주며 길을 가르치던 그가 정작 생활 속에서는 스스로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자아를 찾았기에 더 이상 할일 없었는지 모른다. 어떤 이유든지 간에 아무튼 그의 죽음은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오 캡틴, 마이 캡틴, 왜 당신은 우리에게 가르친대로 담요로 몸을 감싸고 아름다운 시를 읽으며 자신과 대화를 나누지 못하였나요? 왜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그 음률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셨나요?

이 영화의 제목 Dead Poet Society를 <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 번역한 것은 오역이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데 그것은 이미 돌아가신 시인들의 작품을 읽고 연구하는 동아리의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오역이 오히려 영화의 신비로움을 안겨주고 내용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한 몫을 한 것이 사실이다.
이 오역이 이 영화의 메시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뭔가 희망이 사라진 사회를 의미하는듯한 제목으로 사회의 보수적인 교육제도에 대한 의구심을 던지게 만든다.
아무리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해도 사회에 대한 무조건 적인 순응만이 반드시 좋은 삶은 아니다. 가장 훌륭한 삶은 일류 학교를 졸업하고 취득한 부와 명예 그리고 성공으로 가득한 그릇이 아니라, 자신의 진정한 감정이 담긴 자아가 살아서 뛰어다니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나 자신조차 만나지 못한 삶이라면 부와 명예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가끔은 하고 싶은 대로 하시라. 아름다운 미인을 보고 추잡한 생각을 했음을 털어놓으며 자신을 드러내 보라. 설사 그것이 사회의 룰에 어긋난다고 해도 말이다. 가끔은 자신을 찾기 위해 사회의 엄격한 규범에 의문을 던지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아를 찾는 첫 번째 걸음이다.

로빈 월리엄스의 명복을 빈다.

작성자 : 한 영 민

PDF 보기

12-2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Copy Protected by Chetan's WP-Copyprot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