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September 28,Wednesday

한주필 칼럼- 눈 빠지게 기다리기

얼마 전 친구가 카톡으로 좋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글의 제목은 “親 字에 담긴 뜻”이었습니다. 

한 작은 마을 일 나간 아들이 돌아올 시간이 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그의 어머니가 마을 가장 큰 나무에 올라 아들을 기다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 친할 親 자라는 것입니다. 

나무( 木)에 올라서서 (立) 아들을 찾는(見) 모습을 그려 놓은 것이 바로 親자입니다. 제시간에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눈 빠지게 기다리는 어머님의 마음이 친할 親입니다. 

親자가 들어간 단어에는 나쁜 뜻이 없습니다. 어버이를 母親, 父親 이라고 부르고 가까운 사람들을 親知라고 부릅니다. 

친구, 친절, 친목, 친화, 친애, 친근, 친숙 모두 이 친할 親자가 쓰입니다. 

가깝게 지낸다는 것은 인간관계의 최상급입니다. 가능한 친할 親자가 많이 들어가는 관계를 많이 갖는 사람이 세상을 즐겁게 사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이 親 자의 형성 과정을 보며 저도 한가지 해프닝이 떠오릅니다. 

 

지난 추석 연휴 때 일입니다. 집사람과 아들애를 싱가폴에 관광을 보내고 얻은 자유시간을 저는 달랏으로 친구들과 골프 여행을 떠났습니다. 

싱가폴에 간 집사람과 아들애가 한 시간이 멀다 않고 근황을 사진과 함께 보내옵니다. 공항에서 출발하는 것부터 싱가폴에 도착하여 호텔에 들어가고 거리 산책을 하는 것 등 처음 이틀간 세세한 이야기가 거의 생중계 하듯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토요일입니다. 집사람이 늘 보내는 성경 문구가 아침 10시경쯤 카톡에 올라오고 난 후 별다른 연락이 없이 조용합니다. 저도 일정을 마치고 동료들과 저녁을 먹으며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종일 연락이 없었다는게 떠오릅니다. 한 시간이 멀다 않고 소식을 전하던 사람이 웬일이지 하며, 궁금한 마음에 “많이 피곤한 모양이네, 오늘은 어디를 다녀오셨나” 하고 톡을 보냅니다. 그런데 저녁을 다 먹을 때까지 응답이 없습니다. 

이곳이 저녁 8시니 그곳 싱가폴은 밤 9시입니다. 싱가폴이 베트남 보다 한 시간 빠릅니다. 어디 먼 곳을 다녀오나 보다 싶었지요. 아무리 늦어도 10시에는 돌아올 터이니 조금 더 기다려보자 하며 마음 한구석에 싹트는 불안감을 애써 누릅니다. 그곳 시간으로 열 한시가 되어도 연락이 없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제가 직접 전화를 해보는데, 전화도 안 되고 카톡 전화 역시 받지 않습니다. 뭐지, 무슨 일이 생겨도 단단히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공포처럼 스며듭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난 밤에 집사람이 카톡으로 말레이시아 카프리 호텔에 체크인했다는 말이 생각이 나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카프리 호텔을 구글 지도에서 찾아내 연락처를 받아 전화를 해봤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집사람이나 아들애 이름이 고객명단에 없다는 것입니다. 와 이런 일이! 급격하게 불안해집니다. 이건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수십 년을 사는 지인에게 연락을 해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카프리 호텔에 재 확인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잠시 후 지인이 쿠알라룸푸르에 2개의 카프리 호텔이 있어 둘 다 연락해 봤는데 역시 그런 이름의 손님은 없다는 전언입니다.

달랏에 함께 온 친구들과 일과를 마치는 즐거운 저녁 시간이 이곳 저곳에 전화를 해대며 드나드는 내 모습에 그만 분위기가 어둡게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친구들에게 사과하고 일단 숙소로 철수하고 저는 방에 앉아서 오늘 밤 안에 연락이 없을 경우 어찌해야 할 것인지를 궁리하며 매번 시계와 휴대폰을 번갈아 보며 연락을 기다립니다. 

의자에 앉아 지근대는 머리로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며 최악의 경우 말레이시아에 갈 일정까지 체크하고 있는데, 베트남 시각 12시(말레이 시각 새벽 한 시)가 막 넘어서는 순간, 휴대폰에서 카톡 폰 특유의 음악이 들려옵니다. 흠찟 놀라며 바라보는 데 아들애 이름이 뜹니다. 전화를 받아 들고 아들애 목소리를 확인한 순간, 가슴 안에 몇 시간 동안 뭉친 검은 응어리가 일순간 풀려버립니다. 애간장이 탄다는 느낌이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지요. 

알고 보니 집사람과 아들애가 머무른 곳은 쿠알라룸푸르가 아니고 싱가폴 바로 옆 도시인 조호바루라는 곳의 카프리 호텔이었고, 연락이 안 된 이유는 렌트카를 빌려 그 근처 유명 관광지에 다녀오느라고 주로 차 안에 있어서 인터넷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로등이 없는 밤거리를 천천히 오다 보니 자정을 넘어서 호텔로 돌아왔다는 해명입니다. 그런데 왜 전화가 안 되었는지는 아직도 모를 일입니다. 베트남과 싱가폴 로밍이 자동이 아닌 모양입니다. 

아무튼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그날의 사건으로 저는 아마도 가슴에 시꺼먼 멍 자국이 하나 남은 듯합니다. 타지에 간 가족의 안부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은 보니 그들이 내 親族이 맞는 모양입니다. 

나무에 오르는 대신 전화통을 붙들고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을 그린 漢字는 뭐 없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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