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19,Friday

한주필 칼럼-Never in Doubt. (의심하지 마)

최근 손흥민 선수가 심각한 부진에 빠진 모양새입니다. 무려 7경기 동안 골을 기록하지 못하더니 지난 토요일 게임에서는 아예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동안 손흥민의 부진에 대하여 영국 언론이 말이 많았던 것으로 압니다. 한 팀의 한 동양 선수가 부진한 것이 그렇게 화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영국인들의 동양인에 대한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국의 최고 스타 케인을 밀어내며 명성을 쌓아가는 손흥민이 잠시 절뚝거리자 이때다 싶은 건지 모든 영국 언론과 토트넘 팬들이 들고일어나 손흥민 선발 제외는 물론 이 기회에 팔아치우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결국 콘데 감독 역시 그에 부응하여 그를 선발에 제외시킵니다. 아무리 부진한 모습을 보여도 영국인 케인은 절대 벤치에 앉히지 못하는 콘데가 그보다 더 팀에 공헌한 한국인 손흥민은 아무렇지 않게 벤치에 앉힙니다. 아마 이 경험은 손흥민에게 곤욕스런 기억으로 남아 필요한 시기에 다시 상기될 것입니다. 

그리고 손흥민을 선발에서 제외한채 시작한 리그 최하위인 레스터와의 게임에서 후반 15분경 간신히 1골 차이로 리드를 잡자, 콘데는 공격진을 대거 수비진으로 바꿔버립니다. 그리고 손흥민을 투입하여 공격을 흉내 내게 하고 케인조차 2선으로 내려와 미드필드 진을 돕도록 만듭니다. 공격을 포기하고 리드한 1골을 지켜 승리를 쟁취하자는 이탈리안이 즐겨 쓰던 수비 전술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술이 손흥민에게 길을 열어줍니다. 레스터의 수비진을 묶어 둘 요량으로 공격 루트에 남겨두었던 손흥민에게 공이 갈 때마다 손흥민은 빠른 드리블과 특유의 감아차기 슛으로 멋진 골을 기록합니다. 어떤 축구 팬은 “내가 축구를 40년 이상 봐 왔지만, 손흥민의 감아차기 슛의 깊은 쾌적은 처음 본다”며 감탄합니다. 그것도 25미터 이상의 거리에서 말입니다. 결국 손흥민은 후반 교체로 들어와 30분 만에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자신이 부진에 빠졌을 때 그 난리를 치던 영국인들을 ‘아닥’하게 만듭니다. 게임 후 영국언론들 입에서 침이 튀도록 찬사 일색입니다. 영국인들, 일본과 같은 조석변이 섬나라 근성이 그대로 드러냅니다. BBC는 그런 자국인의 냄비근성을 탓하는 듯, 손흥민의 해트트릭에 대한 소감으로 Never in doubt! (의심하지 마)라는 문구를 자신들의 공식 SNS에 올립니다. 

그들의 반응을 통해 영국이라는 나라의 생얼을 본 듯합니다. 그들은 신사의 나라니 하며 영국인의 품위를 주장하지만 알고 보니 그들의 민낯은 신사와는 거리가 멉니다. 특히 스포츠 승부에 연연하며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예전 바이킹 시절의 원시적 모습이 재연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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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영국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거의 모든 유럽인들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수천 년을 전쟁 속에서 살아오며 심어진 살생 DNA를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그 광기를 해소하는 듯합니다. 

이태리는 2002년 한국 월드컵에서 한국에게 질 때 안정환이 골을 넣었다고 자국리그 팀에서 뛰던 안정환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무뢰한 짓을 별 고민없이 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경기에 심판을 본 사람을 장기간 소송을 걸어 더 이상 축구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 비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이태리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김민재가 선수로 뛰고 있다니 불안한 마음입니다. 지금은 김선수가 잘 하고 있어 다행이지만, 문제가 생기면 당장 한국놈을 믿는게 아니야 하며 내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한국에서의 눈부신 활약으로 독일로 간 몇몇 젊은 선수들은 언어를 핑계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손흥민 선수도 언급한 부당한 차별이 아직도 공공연히 일어나는 듯보입니다. 

우리가 한 때 선진국이라고 동경하던 유럽인들은 이렇게 아직도 구시대의 차별의식 속에서 동양인을 인정하지 않은 인식을 드러냅니다.        

최근에는 미국도 그런 정치적 행태를 보입니다. 인플레이션을 막겠다며 자국 기업만 보호하는 정책으로 미국을 믿고 투자한 한국기업의 등에 시퍼런 칼을 태연히 꽂습니다. 또 투자 시 지원금을 받은 기업이 중국에 공장을 갖고 있다면 지원금을 회수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모든 법안의 목적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이라지만, 최근 급격하게 힘을 키우는 한국을 제어하기 위함이 포함된다는 것 역시 세계인이 다 압니다.  

또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다가 재고가 바닥이 나자, 한국의 무기 목록을 우크라이나에게 전하면서 한국이 너희가 필요한 것을 갖고 있으니 달라고 해보라는 무책임한 충동질을 하는 게 지금의 바이든 정부입니다. 한때 대국임을 스스로 자랑하던 미국이 갑자기 소인배 면모를 드러냅니다. 하긴 원래 그런 나라인 걸 우리가 오해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유럽이나 미국이 동양을 정당하게 대우할 것이라고 믿는 순진한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성장하면 그들이 우리를 존중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망상에 불과합니다. 현명하고 성숙한 정치 외교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 엄정한 시국을 헤쳐 나가야 할 한국에는, 겁 없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홀대하며 자충수를 두는 정치 초보자가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으니 국민들 걱정이 커져 갑니다.  

윤 각하, 어쩌면 이런 어려운 시기에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난세에 태어난다는 영웅으로 그 이름을 남길 기회가 됨직도 하여이다. 부디 지혜로운 처신으로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길 부탁하옵니다.       

우리 국민들 역시 정신 무장을 해야 합니다. 

유럽이나 미국을 상대로 한 우리의 사고는 Never in doubt (의심하지 마) 이 아니라, Keep in doubt (의심을 놓지 마) 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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