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January 28,Saturday

한주필 칼럼- 길들어짐 

 

 

한주필 칼럼- 길들어짐 

 

어린 왕자에서 나오는 유명한 말이 있지요.  ‘길들어지는 것’

길들어진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어린 왕자의 질문에 여우는 대답합니다. “관계를 맺는 거야”

어제 오후, 골프치고 돌아오는데 고속도로를 거의 다 빠져 나오기 전, 2군 입구에 다다르면 늘 그랬듯이 교통 정체가 일어납니다. 하나도 낯선 일이 아닙니다. 늘 있어왔던 일이지요. 옆자리에 앉아 졸고 있던 동반자도 도착시간이 된 듯하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고개를 듭니다. 그리고 교통정체가 된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하품을 합니다. 이것이 베트남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이 교통 정체가 무사히 호찌민으로 다시 돌아왔음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베트남의 익숙한 교통 정체는 우리를 안도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렇게 베트남에 길들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베트남과 깊은 관계 맺음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쇼생크 탈출이란 영화를 모두 아실 것입니다.

1994년, 28년 전에 제작된 영화지만 불후의 명작입니다. 그 영화에서 감옥 안 도서실에서 50여 년을 살아온 브룩스라는 노인이 가석방 통지를 받자 순간 당황하며 난동을 부립니다. 50여 년을 살아온 감옥에서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난감한 마음에 가석방 사실을 축하하는 동료를 칼로 위협합니다.

결국 노인 브룩스는 가석방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스스로 목을 매달아 이미 길들여져 있던 마음의 감옥으로 돌아갑니다.

길들어진다는 것, 중독과 같은 듯합니다.

베트남 생활이 거의 30년을 향합니다. 베트남은 내 고향도 내 고국도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우리 정서와는 너무 다른 베트남의 문화 덕분에 심심찮게 짜증을 유발하는 곳이긴 하지만, 어느덧 우리는 베트남의 모든 것에 익숙하게 길들어져 있습니다.

하긴 그렇죠, 일하는 곳이 베트남이고, 가족도 베트남에 있고, 친구도 베트남에 있습니다. 물론 한국에도 형제자매가 있고 친구도 남아있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고 살아야 할 관계는 아닙니다. 그저 잊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며 살아가는 마음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베트남의 인맥은 하루가 멀다하고 연락하며 서로 만나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일상의 관계입니다.

그런 일상에 길들여지다 보면 베트남에 있을 때 가장 정신적 동요가 적습니다. 베트남을 떠나 한국에 가게 되면 하루가 멀다하고 베트남에 돌아올 생각을 하며 지냅니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임시 생활인 듯 늘 주변을 살피게 됩니다. 이미 마음은 베트남에 빼앗긴 셈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 베트남과 관계가 너무 깊어지는 듯하여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언젠가 떨쳐야 할 곳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정작 떨치고 나면 나의 곳이 사라질까 두렵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국에서 머리가 파 뿌리가 되도록 살아도 되는 것인가 자문도 해보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는 법도 없습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아무 곳에서나 웃으며 살 수 있다면 충분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마음 한편에서는 다른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타고난 역마살로 여전히 또 다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인지, 아니면 고국의 고향 하늘 아래로 돌아가고 싶은 것인지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미 길들어져 있는 이 익숙함을 털어낼 자신이 있다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몇 해 전 하노이에 사무실을 내었다고 철수한 적이 있습니다. 몇 해 버티지 못하고 사업적 손실만 잔뜩 안고 철수한 이유는 하노이 사람들의 배타적 성향을 발견한 탓입니다. 하노이 사람들은 호찌민 사람들과 전혀 다릅니다. 인종도 다르지만, 말투도 다르고, 날씨도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성향도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 다름은 베트남 사람만이 아닙니다. 하노이 교민 역시 호찌민에서 온 한국인을 외지인으로 대하는 모습에 적잖게 당황했습니다. 그런 이질적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철수한 것인데 결국 호찌민에 이미 길들어져 있어 그와 다른 하노이에 다가가지 못한 것입니다.

길들어짐은 쉽게 잊혀지거나 지워질 가벼운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인간관계가 한번 맺어지면 너무나 많은 요소의 연결로 인해 쉽게 끊어질 수 없듯이 한번 길들어지고 나면 그 익숙함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은 듯합니다.

한국에 돌아가 오랜 친구를 만나 반가움을 표하고 집안 안부를 묻고 나면 나오는 다음 질문은 ‘언제 또 베트남에 돌아가느냐’ 는 것입니다. 대답이 망설여집니다. 내 집은 어디인가 자문해 봅니다.

이제는 벗어날 수 없는 이방인이 되는 기분입니다. 고국에서는 잠시 돌아온 이방인이고 이곳 베트남에서는 애초부터 이방인입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니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지만 그래도 자꾸 고개를 드는 해답 없는 물음입니다.

내 삶은 어디에서 마감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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