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September 30,Wednesday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씬짜오독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호치민시한국학교에 근무하는 수학교사 김형섭입니다.
마흔을 눈앞에 두고 공개적인 글쓰기를 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부족한 글솜씨가 부끄럽기도 합니다. 부족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영화 “명량”의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18일만에 아바타의 최다 관객수를 뛰어넘어 이젠 1500만명 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가고 있다.
과연 이 영화가 그렇게 재미있고 잘 만들어진 영화일까에 대한 대답은 각자의 몫이지만 개인적으로 김한민 감독의 전작인 “최종병기활”보다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즉 재미있는 영화는 맞지만 “이순신” 장군이라는 영화 외적인 요소가 흥행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제일 존경하는 위인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선두를 다툴 만큼 한국인에게 이순신 장군은 특별한 존재이다.

어릴 때 이순신장군 만화를 보면 이순신장군은 완전 무결한 성인의 모습이고, 원균은 정말 악한 사람으로 나온다. 책을 읽다보니 원균을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악한 사람은 아니었다라는 걸 알 수 있다. 즉, 후세에 이순신장군의 영웅화를 위해 악역이 필요했기 때문에 원균의 행실을 더 과장해서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은 ‘있는 그대로’의 이순신이 아닌 후대에 덧칠해진 이순신장군이기에 지은이는 역사적 사료의 구체적인 인용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이순신을 전해주기 위해 책을 썼다.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하기 전에 고백하자면 난 아직 이 책을 본 적도, 읽은 적도 없다!?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알고 있다.

그 비밀은 바로 이 책이 저자 본인이 10년 전에 쓴 [이순신의 두 얼굴]을 수정보완한 책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한국학교도서관에도 [이순신의 두 얼굴]만 있다.)

저자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30세쯤에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흠뻑 빠져 직장 생활 틈틈이 수년 동안 공들여 40세에 책을 발간하였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평범한 직장인이 어떻게 7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쓸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조선사를 전공하지도 않은 사람이 전문가 못지않게 심도 깊은 내용을 다루었고, KBS ‘TV 책을 말하다’의 선정도서가 되는 등 나름 큰 유명세를 치른 책이다.

이순신장군은 결혼 후에 문인의 길을 포기하고 무인의 길로 들어섰고 32세라는 늦은 나이에 무과에서 병과로 합격하여 군인의 길을 걷게 된다.
이순신은 정말 강직하고 우직한 군인이었다. 상관의 부당한 요구에는 일절의 타협을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큰 곤혹을 겪기도 하지만 끝까지 수많은 고난과 좌절을 정면돌파해 나갔다.
“그가 밟은 길은 평범했지만 그 길 위에서 그는 비범했다”는 지은이의 말처럼 평범한 삶이었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 우직함이 결국 1591년 2월 13일, 47세에 수군절도사에 오르게 하였다.
어릴 적 동네 형인 유성룡의 추천으로 파격 승진을 한 이순신이었지만 그 만큼 대신들의 반대도 강했다. 이순신 장군은 완벽주의자였기 때문에 때론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3도수군절도사에서 파직당하기도 했다.
1차 조일전쟁* 후 이순신장군이 파면당할 때 이런 의문이 들었다.
조정 대신들은 왜 이순신장군에게 등을 돌렸을까?
빛이 오면 어둠은 싫어할 수 밖에 없다는 말처럼 강직하고 고개를 숙이지 못하는 이순신에게 적이 많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정조가 온 몸으로 정약용을 막아준 것처럼 선조가 현명하고 바른 행동으로 이순신장군의 방패가 되어 주었다면 2차 조일전쟁은 쉽게 끝날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7년 전쟁의 여파로 명은 나라가 멸망하고 일본은 정권이 바뀌었지만 조선은 그 어떤후폭풍도 없었다. 여전히 지배정권은 자기 비판없이, 일본의 호전성을 전쟁의 원인으로 강조하고 명에 구원병을 요청한 사실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의 권위를 만회하려는 등 성난 백성을 위로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전쟁 중에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왕, 전쟁 중에 다수의 민란이 일어난 점을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는 명량해전을 12척 대 330척의 싸움으로 보고 있지만, 저자는 13척 대 130척으로 보고있다. 이순신 장군이 “지금 신에게는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라는 말 때문에 12척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수리 중이던 1척이 추가되어 명량해전에서는 13척이었다는 이야기다.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한 위대한 인물인 이순신 장군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알기 원한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조일전쟁 전쟁이 일어난 해인 ‘임진’이나 왜인들의 난리라는 뜻의 ‘왜란’보다는 전쟁의 기간을 강조하는 ‘7년 전쟁’ 또는 전쟁의 당사자인 조선과 일본의 정식 국명을 써 ‘조일전쟁’으로 표현하였다.

작성자 : 김형섭 – 호치민 한국국제학교 교사 (terry1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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