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rch 29,Friday

한주필 칼럼- 쓸모

 

지난주에는 달랏을 다녀왔습니다. 

한동안 베트남을 다니며 사업을 구상하다가 코로나로 인해 3년간 베트남에 들어오지 못하던 동생이 코로나 정국이 순화되면서 베트남을 다시 찾았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며칠을 붙어 다니며 지내다 달랏까지 여행을 함께 했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달랏은 멋졌습니다. 특히 달랏 1200 골프장의 정경은 감탄을 자아낼 만 했습니다. 달랏에서 골프 여행객을 위한, 미모사라는 골프호텔을 운영하는 신도상 사장의 친절한 도움으로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달랏으로 골프 여행을 하신다면 추천할 만한 숙소이자 안내자입니다. 

달랏은 한국인에게 특별한 도시입니다. 달랏은 한국 사람에게 기본적인 공감의 요소를 제공합니다. 깊은 산세와 선선한 날씨가 마치 한국의 그것과 같아 고향의 내음과 비슷한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달랏을 함께 간 친구들과는 공감의 경험이 더 많은 탓인지 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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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랏에 가서 느끼는 것 중에 하나 있는데, 산세는 한국의 그것과 유사하고 살림이 울창한데 나무는 좀 달라 보입니다. 특히 소나무가 많이 보이는데 이곳의 소나무는 한국과는 달리 곧게 뻗어있다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한국의 소나무는 한국의 굴곡진 역사를 보여주듯이 온통 휘어진 가지로 전체적으로 늙고 쓸모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달랏의 소나무는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있어 얼핏 보아도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이 가능한 젊고 유능한 모습으로 비추어집니다.  

그런 달랏의 소나무를 보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간에게 뭔가 유용한 용도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하게 만들고 그런 기대로 자신의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 항상 행복한 것만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목수가 톱을 들고 와서 목재로 사용할 요량으로 가장 먼저 자르고 싶은 나무로 지정될 듯하여 그렇습니다. 그런 반면, 장작을 필요로 하는 서민의 도끼질 대상에는 제외될 듯하여 기쁜 면도 있습니다. 장작의 용도에는 굽어진 소나무가 어울릴 듯하니까요. 결국 늙은 목수는 곧게 뻗은 소나무는 귀한 자재를 제공하니 고맙고, 굽어지고 휘어진 늙은 소나무는 늘 푸른 잎과 일할 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여 고맙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그들은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쓸모가 있는 셈입니다.   

엊그제 달랏에서 골프를 치면서 그곳의 캐들의 모습을 보며 느낀 게 있습니다. 전혀 훈련이 안 된 채 골퍼를 겠다고 나온 캐디들을 보면 참 쓸모없는 캐디란 생각이 듭니다. 또한 골프용어조차 모르는 캐디를 손님에게 보내는 골프장 매니저도 참 한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골프장이라는 환경을 떠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렇게 쓸모없는 캐디들도 집에서는 귀한 아들 딸이 되겠지요. 동생에게는 의젓한 형이 되기도 하고 누나에게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귀한 동생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부모님이 좋아하는 자주감자를 맛있게 삶을 줄 알지도 모릅니다. 그가 캐디 역할을 잘못한다고 세상에서 쓸모가 없는 인간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존재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가치는 어떤 역할에 대한 판단으로 규정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쓸모를 따지지요. 

‘고마운 사람보다 필요한 사람이 되라’ 조언이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주고 마는 관계가 아니라 늘 함께 하는 관계를 지향하는 듯합니다. ‘세상에 가장 큰 위로는 존재다’ 라는 말도 있지요. 가족이나 친구처럼 이권이 개입되지 않은 관계에서는 쓸모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존재만으로 충분합니다. 

특히 노후에 함께 시간을 보낼 친구는 더욱 그렇습니다.   

함께 만나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공감하고, 심심한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주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가 가진 것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지 않겠습니까? 

친구가 지닌 자랑스런 자산, 많은 부와 찬란한 사회적 명예는 자신의 노후 생활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친구가 풍요롭다고 그 풍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가 높은 명예를 누리고 있다고 해도 그 명예를 공유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런 명예와 부를 지키기 위해 늘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친구는 노후에는 결코 좋은 친구가 되기 힘듭니다. 노후생활에는 많은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사회적 명예가 요구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존재만으로도 훌륭한 친구로서 쓸모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함께 존재함으로 충분한 가치를 채우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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