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16,Tuesday

독서 모임 ‘공간 자작’- 마음의 상처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받고 살게 됩니다. 누군가 나에게 의식적으로 주는 상처도 있고, 상대는 생각도 못했는데 나 혼자 끙끙 앓게 되는 상처도 있습니다. 기분도 나쁘고, 사람도 싫어집니다. 제대로 상처를 받으면 자신감을 잃고, 우울해집니다. 심할경우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울수 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고, 정신력으로 이겨내라고 충고를 해주지만, 그것은 방금 교통 사고가 나서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바로 일어나서 걸어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조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마음의 상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말로 주는 상처가 가장 흔합니다. 우리는 인간인 관계로 매일 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 많은 말을 나눕니다.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관계에 있을때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막말’, ‘갑질’을 통해 상처를 줍니다. 말하는 사람은 고객으로서, 직장 상사로서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 내가 이렇게 까지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나’라는 자괴감과 무력감을 동반한 상처를 줍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막말과 갑질을 당한 사람들이, 다른데 가서 반대의 입장에 처했을때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똑같은 행동을 한다는데 있습니다. 군대에서 선임한테 괴롭힘 당한 후임이 나중에 더 악독한 고참이 된다던가, 대학교때 각 학년별 군기잡기 문화가 좋은 예가 될것 같습니다. ‘나도 당했으니, 너도 그만큼은 당해봐라’ 라는 심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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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복잡한 경우는 대체로 ‘조언 또는 충고’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흔히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로 시작하는 이 말은 조언을 가장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해서 속이 시원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합니다. 친밀하지 않은 사람들간의 불필요한 신체적인 접촉을 금하듯이, 말도 불필요한 간섭을 피해야 하는데 조언을 빙자하여 그 규칙을 깹니다.

듣는 사람은 자기 공간을 침범당한 황당함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훔쳐 보기’를 당한 수치심을 느낍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조언이 사실에 가까울 수록 상대는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 사실을 말한다고 자신에게 면죄부를 줘서는 안됩니다. 누군가에게 조언과 충고를 하고 싶다면, 그 사람과 자신의 친밀도를 충분히 생각해보고, 가급적이면 상대의 의사를 확인한 후에 조언을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상대가 원치 않는 조언은 깜박이 없이 끼어들기하는 차처럼 불쾌감을 줍니다.
말로 인한 최악의 상처는 듣는 사람이 자신이 상처 받는지도 모르고 듣게 하는 말로부터 발생합니다. ‘너는 부족한 사람이야, 나없으면 안되는 사람이야’라는 메세지를 계속해서 던져서 상대방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이 쓰는 말입니다. 내가 못하는 것만 지적하는 직장상사, 아이가 엄마의 허락이 없이는 화장실도 못가게 만드는 부모, 투자자에게 모든 것을 자기를 통해서만 진행하게 만드는 사업 파트너 같은 사람들이 쓰는 화법입니다. 연인 관계, 사이비 종교 단체 같은데서도 이런 말로 상대를 조종합니다. 모두가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최악의 순간에서도 피해자가 자신이 피해자인지 인지 조차 못합니다. 소위 ‘가스라이팅’이라고 알려져 있는 행위인데, 말로써 행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의 나쁜 행동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차별에 의한 상처도 오래 갑니다. 가족안에서 이루어진 형제자매들간의 차별의 경험은 나이가 40~50이 되어 자신이 부모가 된 상태에서도 자신의 부모를 원망하거나, 특정 형제자매를 안보고 살게 만드는 결과를 만듭니다. 부모, 특히 사업하시는 분들이 기업 경영하듯이 자식들간의 경쟁 시스템을 자녀 교육에 도입하여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아들, 딸 차별을 둔다거나, 장남 차남에게 기회의 차이를 두어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는 평등하게 대한다고 하지만 자기 마음에 드는 아이와 맘에 안드는 아이에게 대하는 태도의 차이때문에 그 아이가 평생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아이가 없는 것은 완벽한 부모가 없기 때문이다’ 라는 교육에 대한 격언을 마음에 새기며, 부모님들은 부모로서의 자신의 행동을 가끔씩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에 의한 차별, 직장에 가면 직장상사에 의한 차별, 직업을 구할때는 성별에 대한 차별 등 세상은 차별 투성이입니다. 인종차별법, 성차별법, 종교차별법 등 수 많은 차별에 대한 법이 있다는 것은 세상에 그 이상의 실제적인 차별이 존재한다는 증거입니다. 존재하는 차별을 부정할 필요도 없고, 불공정한 차별에 필요이상의 상처를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사회적 차별에 맞서는 가장 건강한 방법은 ‘근거 있는 자신감’을 갖고 사회안에서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 자신의 몫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실제적인 폭력에 의해 생긴 마음의 상처도 있습니다. 몸의 상처는 아물어도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트라우마’라고 하는데, 어떤 상황에서 폭력적 경험을 하고 난 후에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때 당시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힘들어 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학생때 왕따 경험, 가정 폭력의 경험,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에 의한 피해 등 물리적 폭력에 의한 마음의 상처 역시 오랫동안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맞을 짓을 했다’, ‘니가 더 조심했어야지’ 등의 말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주는 경우가 있는데 정당 방위의 영역이 아닌 이상,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군대문화, 유교문화, 지나친 음주 문화로 인해 우리 사회는 폭력에 다소 관대한 경향이 있습니다. 폭력적인 방법으로 달성한 목표는 성과를 뛰어넘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상처에 대한 글을 쓰는 와중에 우리 사회가 또 하나의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글로 언급하기 싫을 정도의 큰 상처입니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젊은 영혼들과 유족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대로된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저자 – 독서 모임 ‘공간 자작’
이번에 본 칼럼을 시작한 독서 모임 공간 자작은 회원수 xx명 규모의 2018년 말 시작하여, 한달에 한번씩 평균 2권의 책을 읽으면서 토론하고, 주제를 논하는 독서 모임이다. 이들의 칼럼은 ‘공간 자작’ 대표측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발표할 예정이며, 2주에 한번씩 연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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