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rch 28,Thursday

한주필 칼럼-코로나 병상 일기

목요일 아침, 집에 있는 코로나 진단키트를 사용하여 제가 코로나에 걸렸음을 확인했습니다.  

진단이 내리기 전날인 수요일 저녁부터 몸 상태가 이미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온 몸이 무거워지고 눈이 충혈되고 열이 오릅니다. 뭔가 무거운 병기운이 접근하는 품세가 여느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진단이 없어도 코로나를 직감합니다. 

목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이미 몸이 정상이 아님을 느낍니다.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습니다. 그날 오후 골프 라운딩이 있으니 확실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단키트를 사용하여 붉은 두 줄로 나쁜 예감을 확인합니다. 피치 못할 불참 사유를 동반자에게 알리고, 회사에도 알립니다. 남들은 이미 다 한두 번씩 앓고 난 철 지난 유행인데 이제야 걸렸으니 참 유행에 둔한 모습입니다.

친구가 이태원 사고를 위로하는 시를 적어 보냈지만, 내 발톱 밑의 가시가 먼저라고 무거운 머리가 그 시 한 줄을 읽어내지 못합니다. 미안하오. 나중에 내 몸이 정상일 때 다시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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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런가요? 코로나가 다 지나는 끝물이라 그런가요? 왜 이리 쎕니까? 

 라이터에 가 다 떨어질 즈음에 불꽃이 제일 높아진다고 하지요. 이 코로나도 끝물이라 마지막 화력을 다 쏟아 붓는 듯합니다. 와우, 정신이 번쩍 날 정도입니다. 처음부터 잽도 없이 바로 강펀치가 날아듭니다. 몸이 완전히 사그라집니다. 몸 구석구석이 잘근잘근 밟힌 듯이 아픕니다. 온 몸이 멍들은 기분입니다. 기운이 완전히 빠져나가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싫습니다. 오후를 지나 밤이 되니 증상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가벼운 기침에도 내장이 진동하며 밖으로 뛰어나올 기세입니다. 온몸의 센서가 다 일어선 듯합니다. 작은 접촉에도 온몸이 난리 치듯이 반응합니다. 죽음은 이렇게 다가오나 싶기도 합니다. 

코로나를 수 차례 겪은 현지 직원이  약국에서  약을 먹고, 그냥 죽자하며 눕습니다. 약이 제대로 듣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럴 정신이 없습니다. 다른 분은 자신은 8시간에 한 번씩 타이만 먹으면 된다고 의사가 처방하여 그렇게 코로나를 넘겼다고 합니다. 또, 한국 약국에서  약을 3일 치만 먹으면 코로나가 사라진다며 그 약을 보내주겠다는 후배도 등장합니다. 고마운 일이지만 이미 약을 먹고 있으니 다른 약은 사양합니다. 또 다른 지인이 목이 아플 테니 입안에 녹여 먹은 독일제 약을 소개합니다. 따로 구입했습니다. 

즉 얘기를 종합해보니 어떤 약이든지 코로나 치료약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증상에 따른 치료만 하면 된다는 얘기로 이해됩니다. 아무 약이든 좋으니 제발 잠이라도 들게 해다오.  

오늘 금요일 아침, 지난 밤 초저녁부터 누웠지만 수면은 부족합니다. 입동이 다가오는 긴 긴 겨울 밤을 몇 번이나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이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을 보니 그리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온 몸이 어디가 아픈지 모르게 마비된 듯합니다. 인지 능력이 점점 약화되는 것을 느낍니다. 깨어있는지 자고 있는지 구분이 안 갑니다. 잠이라도 푹 자기를 원하지만 아픈 몸이 잠을 방해합니다.    

마스크를 쓰고 아침을 가져오는 집사람, 이미 코로나를 앓고 있는 나야, 이제 좀 지나면 든가 말든가 하겠지만, 문제는 이러다 집사람이라도 옮겨가면 큰일입니다. 집사람은 집에서 늘 마스크를 씁니다. 저도 씁니다. 각방을 쓰고 가능하면 서로의 방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식사도 내방에서 따로 합니다. 내가 먹은 그릇의 설거지는 내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집사람은 당신이 부엌에 얼씬대는 게 더 안 좋으니 나오지 말라 합니다. 설마 그릇으로 옮지는 않겠지요. 대신 손을 잘 씻어야 할 듯합니다. 

지금이 금요일 오후입니다. 어제 아침부터 오늘 오후 3-4시까지, 제가 기억하는 시간 중 가장 험악하고 긴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무한한 인내를 요구받았습니다. 공연히 일본 순경이 생각납니다. 악독한 일본인 순경도 하루가 지나니 오늘 오후부터 고문의 강도를 조금 줄여줍니다. 꾸준히 먹은 약 덕분인지 원래 코로나 진행이 이런 건지 알 수 없습니다. 38.7까지 오르던 체온이 이제 37.5 정도로 낮아졌습니다. 여전히 무겁고 신경이 섬세하긴 하지만 많이 평화로워진 기분입니다. 이렇게 앉아서 자판이라도 두드릴 정도가 되니 말입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토요일 아침입니다. 증상을 느낀 지 4일 차가 되는군요. 일단 전체적으로 좋아진 듯한데 여전히 기운이 없습니다. 갈비뼈 근방은 뭔가에 눌린 듯하고 침을 삼킬 때마다 고통이 따릅니다. 편도선이 부은 듯한데 편도선 약을 따로 먹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젯밤은 지난 밤보다 상대적으로는 잠을 잘 잔 듯합니다. 물론 자주 깨어나기는 마찬가지지만 고통은 조금 덜어진 듯합니다. 이 상태로 가면 하루 이틀만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오리란 기대를 하게 만듭니다. 오늘 하루는 별다른 고통 없이 지냈습니다. 몸이 여전히 무겁고, 작은 기침에도 가슴이 울리고, 목이 여전히 잠겨있긴 하지만 이만하면 나라님은 아니어도 고울 원님은 됩니다. 내일 일요일 하루 더 지내보면 이제 확실해질 듯합니다. 

일요일 아침입니다. 체온을 재보니 37.1 입니다. 거의 정상을 찾아가는 듯합니다. 다만 목감기와 코감기 증상이 남아있어 코로 숨쉬기가 불편합니다. 편도가 부어있는지 침 삼키기가 여전히 걸리고 말입니다. 결국 따로 먹을 편도선 약을 사러간 집사람이 약을 한 보따리 안고 돌아옵니다. 말이 안 통하는 베트남 약사에게 번역본을 보여주며 얘기했더니 이렇게 한 보따리를 안겼다고 합니다. 좀 많다 싶었지만 서방님 치료제를 마다할 수가 없었겠지요. 사온 약을 하나씩 찾아보니 복합 항생제, 인후통 약, 감기약, 스테로이드 염증 치료제 등 다양합니다. 거기에 한국산 컨디션 조절 소화제까지 들어있습니다. 일일히 한글로 다시 적어두고 나중에 필요할 때 써먹기로 합니다. 이름이 없는 정체 불명의 알약은 바로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베트남 약국의 과다 조제는 일상화된 듯합니다. 특히 외국인을 상대하는 아파트 근처의 약국은 그런 현상이 많습니다. 가능하면 현지인을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결과적으로 생각해보니 이 코로나는 종합 감기 증상을 보입니다. 몸살감기를 시작으로 목감기, 코감기 이렇게 모든 감기 증상이 다 나타나고 나면 그제서야 코로나도 힘을 잃는 듯합니다. 열이 정상에 접근하니, 이제 눈앞에 사물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인지능력이 정상을 찾아가는 듯합니다. 자판 글도 어제보다 뚜렷하게 인지됩니다. 확실히 코로나가 내 몸에서 탈출을 준비하는 모양입니다. 

뒤늦게 코로나에 걸려 혼줄이 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옮겨봤습니다. 아들 애가 아비가 코로나에 걸렸다고 오래 전에 준비한 여행을 미뤘다고 하네요. 하다 싶기도 하고, 아비가 기저질환자라 일찍 갈까 봐 그러나 싶어 기분이 묘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코로나와의 5일 전투에서 생존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오늘 월요일, 새로운 기분입니다. 완전한 몸으로 돌아온 것 같지는 않지만 80%는 회복 된 듯합니다. 이 험한 세상에 제명대로 살아가는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새삼느낍니다. 자가진단 키트를 써봤더니 선명한 한 줄, 아래 희미한 줄이 하나 더 남아있습니다. 아직 완치 판정이 안 나온 것입니다. 여전히 미열이 남아있어 하루만 더 쉬어 보기로 합니다. 그래도 이 정도로 넘어간 것에 감사드립니다.  

모두 건강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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