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September 19,Saturday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기대를 낮추면 즐거운 영화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 어느 유행가 가사의 한 소절이 아니다. 소설 모비딕의 한 구절도 아니다. 영화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이하 해적)’ 은 명나라에서 보낸 조선의 국새를 한 마리 거대한 고래가 꿀꺽 삼켰다는 기발한 상상력에서 시작한다. 물론 이성계가 명나라로부터 10년 동안 국새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지만 고래 이야기는 터무니없다.

여기에 세 가지의 갈라진 이야기가 합쳐진다. 첫째는 위화도회군에서 이성계에게 반기를 들고 산적이 된 송악산의 미친 호랑이 장사정이다. 믿고 의지했던 모흥갑에게 배반을 당한 채 세상을 등지고 산 속의 두령이 돼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둘째는 해녀 출신으로 해적 우두머리가 된 여월이다. 소마라는 해적단 두목을 모셨으나, 그의 흉폭함으로 말미암아 선상 반란이 일어나고, 여얼은 해적단의 우두머리가 됐다. 세 번째는 조선의 개국 이야기다. 첫 장면 위화도회군으로부터 이성계의 야심을 둘러싼 대신들의 적대감이 증폭된다.

‘해적’의 웃음 코드는 바로 이 두 도적 집단, 산적과 해적의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경험의 간극에서 나온다. 도통 바다를 모르는 산적 일당은 고래를 잡으면 팔자가 필 것이라고 믿고 바다로 진격을 거듭한다. 그들은 고래가 생선만 하다고 생각하고 해적 출신으로 바다 경험이 풍부한 칠봉의 말을 도통 믿으려 들지 않는다. 물론 돌아오는 것은 극심한 배멀미와 경악에 가까운 선상 체험뿐.

바다를 누비는 여월의 해적 일당은 호쾌한 액션의 한 축을 담당한다. 여자라고는 믿을 수 없는 기개로 바다를 누비는 여월에게 국새를 삼킨 고래는 어렸을 때의 인연으로 묶인 영물이다. 그들은 소마와 싸우고, 관군과 싸운다. ‘해적’은 그러나 유머와 액션의 두 축으로 굴러가다 보니, 여러 가지 단점도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집채만 한 고래라든가 세 척의 배가 격돌하는 해상 전투를 표현한 CG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우리는 이미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CG로 만든 아주 멋진 고래를 본 적이 있다). 이석훈 감독의 연출은 두드러진 특색 없이 평이하다. 게다가 캐릭터에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해적’은 한국판 ‘캐리비안의 해적’을 표방하지만, 그러기에는 연출상의 유연함과 자연스러움도 부족하다.

다만 1980년대의 ‘인디아나 존스’를 보는 듯한 스필버그식 리듬감각과 눈에 익은 할리우드 스타일은 이목을 집중시킨다. 특히 가상의 섬 벽란도에서 벌어지는 추격신에서 거대한 물레방아가 손예진이 탄 후룸라이드를 덮치고 마을로 굴러 내려가는 장면은 ‘인디아나 존스 2’에서 거대한 돌이 동굴에서 굴러 내리던 경쾌한 리듬감각을 닮아 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웃음보따리가 유해진이 분한 칠봉이다. 해적이었지만 배멀미를 너무 심하게 하고 생선 알레르기가 있는 그는 산적으로 전향했는데, 바다를 잘 안다는 이유로 서열 30위에서 서열 2위로 초고속 승진을 한다.

바다에서는 ‘음파음파’만 잘하면 된다는 유해진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칠봉 역에 다른 배우를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해적’은 지난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의 엄숙함과 진지함에서 가장 많이 벗어난 작품이다. ‘명량’보다 훨씬 명랑한 영화이며, ‘군도’보다 훨씬 가벼운 영화다.

그저 시간의 태엽을 빨리 돌릴 생각을 하면 2시간이 휘리리릭~~ 기대를 낮출수록 더 쉽게 즐거워진다.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ㅣ 모험, 액션
감독 : 이석훈 ㅣ 출연 김남길, 손예진, 유해진
12세 관람가

작성자 : 심영섭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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