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5,Thursday

독서 모임 ‘공간 자작’ – 댓글

 

 

온라인으로 신문기사나 커뮤니티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글에 달린 댓글들을 읽게 됩니다. 날카로운 지적으로 감탄을 하게하는 댓글도 있고, 뛰어난 재치로 웃음을 자아내는 댓글도 있고, 놀라운 통찰력으로 공감을 이끌어내는 댓글도 있습니다. 멋진 댓글들이 원글보다 더 읽는 재미를 줄때도 있죠. 하지만, 어떤 댓글들은 편견과 증오, 의도적인 비아냥으로 눈쌀을 찌푸리게 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댓글을 다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런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일부 사회부적응자들이라고 하며 무시하기에는 이런 댓글들이 너무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할 직장을 다니고, 일반적인 가정에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나와 너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왜 우리는 이런 댓글을 달까요?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굳이  한말씀을 하며 기분을 푸는 케이스입니다. 자기 만족입니다. 뭔가 배가 묵직한 상태에서 화장실을 갔다온 후에 기쁨을 느끼듯이, 마음속의 응어리진 감정을 댓글로 풀어냅니다. 술취한 사람이 주택가 한복판을 휘청휘청 걸어가며 ‘와!…. 와!…’ 하고 한맺힌 함성을 내뿜는 것과 같습니다. 논리도 없고, 날카로움도 없습니다. 그냥 무시할만한 내용이 대분분이지만, 본인이 의도했건 안했건 취객의 고성방가같은 불쾌함을 줄때가 있습니다. 현대 미술 기법 중에 액션 페인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얀 종이 위에 물감을 뿌려대고 그 물감들이 우연히 만들어낸 효과를 예술이라고 부른 것이죠.  액션 페인팅은 작가의 감정을 표현하고, 분출하게 하여 치유효과가 있는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댓글들은 작성자들에게 치유 효과를 주는 것 같습니다. ‘액션 라이팅’ ( Action writing ) 이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user image

이기려고 쓰는 댓글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가장 강한 감정중에 하나가 지고 싶지 않다, 이겨야 한다는 감정입니다. 남들과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대놓고 드러내놓지 않는 감정이지만 익명성이 보장되는 (지나 치면 신상털기의 희생자가 될 수 있지만) 온라인 공간에서는 잘 드러나는 감정입니다. 우리 일상은 부모님과 자녀, 선생님과 학생, 선배와 후배, 상사와 부하, 형님 동생 등 나름의 위계 질서로 잘 짜여져 있습니다. 초등학생의 학급회의부터 집안의 가족회의, 회사의 부서별 회의등 수 많은 회의들이 있지만, 다 알다시피 이런 회의에서 자기 생각을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회의는 회의를 주재하시며 혼자 다 얘기하신 분이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없으면 이만 마치겠습니다’ 라는 멘트로 끝이 납니다. 우리 일상속의 회의들이 이렇다보니, 온라인상의 우리들이 쉽게  싸움꾼, ‘키보드 워리어’ 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느정도 평등한 발언권이 보장된 온라인 문화는 순기능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싸움도 적당한 룰과 멋진 기술로 서로를 보호하면서 하면, 팔꿈치로 찍건 목을 조르건간에 격투 스포츠가 되며, 멋진 승부에 대해선 기립박수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화학약품을 뿌린다던지, 뒤에서 흉기를 사용한다던지, 무차별 총격을 가한다던지 하면 폭력이 되고 범죄가 되며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됩니다. 온라인상에서 일상처럼 조용히 살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 지역과 지역,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 A 정당 지지자와  B정당 지지자 같이 서로 귀를 닫아놓고 벌이는 설전은, 특히 그 논리가 지극히 주관적이고 유치하다면 또한 보는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본인의 수준을 낮추게 됩니다.

가장 꼴불견인 댓글은 조작을 목적으로 거짓말을 퍼뜨리는 댓글들입니다. 자기네 회사 제품에 대한 비판 기사에 그 회사 직원들이 반대의견을 다는 것부터 시작해, 경쟁사 제품 관련 기사에 악플을 달기도 합니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때 엉뚱하게 특정 정치인과 연결시킨다거나, 특정 지역 비하, 여성 비하, 남성 비하 등 희한한 방식으로 연결시켜 자기가 전하려는 메세지를 남겨놓는 댓글들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속한 그룹이 있고, 자기만의 신념이 있고, 스포츠부터 선거에 이르기까지 ‘내편’이 이기는 것을 바랍니다. 나의 신념을 위해 말할 권리는 있지만 그 목적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어떤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모욕감을 줄 권리는 없습니다. 특히 이런 일이 경제적, 정치적 배경을 갖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으니, 댓글 읽는 이들의 주의도 필요합니다.

댓글은 온라인 글쓰기 문화를 풍성하게 하는 축복같은 제도입니다. 글쓴사람도 얼마나 많은 댓글이 달리는 가에 따라 감정의 기복을 느끼고, 댓글 내용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바꿔나가기도 합니다. 읽는 사람도 댓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며 다른 독자와 글쓴이에게 영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하지만 댓글을 쓸때는 댓글도 하나의 창작품으로써 원글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진 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저자 – 독서 모임 ‘공간 자작’
이번에 본 칼럼을 시작한 독서 모임 공간 자작은 회원수 xx명 규모의 2018년 말 시작하여, 한달에 한번씩 평균 2권의 책을 읽으면서 토론하고, 주제를 논하는 독서 모임이다. 이들의 칼럼은 ‘공간 자작’ 대표측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발표할 예정이며, 2주에 한번씩 연재될 예정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

Copy Protected by Chetan's WP-Copyprot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