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4,Wednesday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반복된다

 

 

2023년을 전망하는 기사들이 잔뜩 찌푸린 폭우 전 날씨처럼 어둡습니다. 퍼펙트스톰이란 단어까지 등장했습니다. 한국의 모기업에서 열린 연말 정례보고에서는 도무지 희망이 배인 구석의 얘기를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베트남의 경우에 선방을 해왔지만 출렁이는 환율과 최근 유력한 부동산개발기업을 통해 불거진 좋지 않은 소식들은 베트남도 곧 소용돌이치는 불확실성의 기류에 빠져들 것이란 예측을 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려움은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던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우리에게 내년은 쉽지 않을 거란 인식이 일상적인 것으로 고착되어 다음 해를 말하는 조심스러운 진단에 늘상 포함되어 왔습니다. 그러니 이번엔 그냥 어려울 것이 아니라 ‘진짜’라는 수식어도 붙입니다. 마치 어느 나라의 화폐단위가 ‘헤알(Real, 진짜)’인데 하도 화폐가치에 대한 신뢰가 없다 보니 아예 ‘진짜’라는 이름으로 화폐단위를 바꿔버렸다는 얘기와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제가 베트남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로도 이런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2008년의 경제위기입니다. 베트남의 GDP는 2004년 7.5%를 시작으로 2007년까지 연평균 7%대를 기록하며 거침없이 성장했습니다. 이런 자신감을 배경으로 베트남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합니다.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아시아의 신흥 강자로서 위세를 드러낼 참이었죠. 하지만 2008년 미국으로부터의 서브프라임 위기가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번지자 베트남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당시 일본계 증권사가 베트남의 IMF 도움 요청 가능성에 대한 보고서를 공개했는데 시장에 미친 여파는 핵폭탄급이었습니다. 특히 IMF라는 이름에 트라우마가 있는 한국인들에게 그 영향은 심각했습니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베트남 경제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하향 조정했고 외국계 자본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자본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한국인이 빠져나간 푸미흥의 아파트 단지 임대가는 반 토막이 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불황이네 인플레이션이네 하는 표현들이 일상어가 되었습니다,
2015년에 이르자 바닥을 쳤던 성장률은 다시 5%대로 진입합니다. 그리고 반등을 깨닫기도 전에 곧바로 활황기로 진입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삼성전자 등 대규모 FDI가 이루어진 덕분이라고 합니다만 기업이 아무 이유도 없이 들어오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한 투자의 배경을 만들어 낸 것은 어려움의 세월을 버텨내고 준비한 베트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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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다시 위기입니다. 낙관적일 수는 없습니다. 여러 면에서 과거의 위기와 다릅니다. 더욱 심각합니다. 베트남은 이미 글로벌 공급망 안에 들어와 있고 어떤 측면에서는 핵심기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글로벌 경제와 밀접도가 높아진 만큼 세계경제가 흔들리면 더욱 심하게 요동칠 수 있습니다. 수년간 부동산시장은 공급의 부족과 몇몇 이유로 거품이 잔뜩 낀 기형적인 성장을 가져왔습니다. 기업의 자금이 말라붙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상처가 봉합되려면 이번의 위기는 보다 아프고 길게 다가올 지 모릅니다.
하지만 베트남도 두 손 놓고 바라보지는 않을 겁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러한 기회에 정부는 개혁을 앞당기려 할 것입니다. 제15기 국회 4차 회의 일정인 11월 10일, 국회는 2023년 경제사회발전계획에 대한 의결을 통과시켰는데, 총리가 제출한 2023년 경제사회 발전 계획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굵직한 목표 아래에 있는 실행 과제들입니다. 거기에 도시개발 인프라 확충은 물론 전자정부, 전자상거래, 온라인 교육플랫폼 구축 등의 이슈들이 깔려 있습니다. 미진했던 비효율적인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금융 건전성 확보와 같은 민감한 문제들도 감춰져 있습니다. 이런 과업들이 제대로 추진된다 해서 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겠지만 그 이후를 기대해 볼 수는 있습니다. 글로벌 자금들도 전과 다른 행보를 보일 것입니다. 예전처럼 썰물 빠지듯 갑자기 철수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일부 악의적인 유투버들의 근거 없는 중상과 달리 의외로 잘 버텨 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글로벌 공급망에 속해진 베트남이 어려움을 겪을 수는 있지만 거꾸로 그러한 시스템이 베트남으로 몰아치는 위기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보다 분명한 것은 베트남 시장 역시 체력이 좋아졌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시장을 잘 살피며 향후의 행보를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기가 기회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알고 있고 모두가 인정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이는 극히 소수인 듯합니다. 욕하는 이들에게는 욕할 상대 밖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고 닫혀 버린 문만 보는 사람에게는 그의 뒤로 반쯤 열린 창문이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COVID-19로 시작해서 신냉전과 패권주의에 영향받은 이번 위기의 요인들은 어느 하나도 완전한 종식은 커녕 해결의 기미 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복잡하게 얽혀진 불확정성들은 비빔밥처럼 버무려져 우리의 일상을 침해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길이 없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주 소소한 예로 제가 아는 한국인 청년 한 사람은 COVID-19가 창궐하고 나라의 문이 닫혔을 때 이 곳에서 버텼습니다. 동기들이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방 구석에 홀로 남아 이력서를 썼습니다. 그 청년이 동기들보다 빠른 취업을 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귀국하느냐 마냐 하는 암울한 시절의 결정에서 취업 통보를 받기까지는 불과 5개월이었고, 그 시기의 인내의 차이가 동기들 간에 다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기업이라고 다를까요?

2008년의 경험이 반복될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시장은 위축될 것입니다. 하지만 2008년의 몰락이 2012년, 2013년을 거치며 정상화의 조짐을 보이더니 2015이후로 새로운 활황기를 불러 일으킨 것처럼 시장은 다시 뜨거워질 것입니다. 물론 대외적인 불확실성의 요인은 베트남 경제에 잠재적인 위협요소로 남아있습니다. 전쟁과 전염병의 여파가 상품, 원자재의 가격을 계속해서 급격히 변동시킵니다. 최근에는 휘발유 가격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음을 목격합니다. 생산 비용과 소비 경제에 모두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제시하는 6.5% 성장률 달성이 낙관적이지만은 않음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수치에 다다르지 못할지라도 시장은 다시 일어섭니다. 그러니 지금은 그 견딜 맷집을 키우는 일과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볼 때입니다. 마냥 움츠리거나 줄이는 일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2008년 당시 싱가포르와 대만, 홍콩의 개발기업들이 어떤 행보를 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개인은 준비하고, 기업은 과감할 때입니다. 과거의 실패가 중요한 것은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지 익숙해지기 위함이 아닙니다. /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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