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September 25,Friday

제주도 특집2-‘제주도의 화가’ 변시지

예술은 풍토에서 나오지요. 그래서 ‘외로운 섬 제주’를 그린 내 그림에 쓸쓸하고 외로운 정서가 스며있지요.

지난 호에 이어 이번 칼럼도 제주도 특집입니다. 며칠 전에 베트남 호치민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제주도의 풍경이 자꾸 눈에 아른거립니다. 아름다운 제주도에 작업실을 하나 짓고 살고 싶고, 그 아름다운 풍경을 맘껏 그려보고 싶은 걸 보니 단단히 반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제가 푹 빠진 제주도에서, 더 푹 빠져버린 화가와 그의 작품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이 화가의 작품이 전시된 전시실에서 그림을 보고 있다가 그만 투어버스 시간을 놓쳐서 그 날의 제주 관광투어가 모두 날아가 버린 일도 있었답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습니다. 그 큰 전시실을 전세 낸 것처럼 그림을 보고 또 보고, 몇 바퀴씩 돌고 또 돌고 했었지요. 벨라스케스 칼럼에서 잠깐 등장했던 엄마와 동생(그 때는 같이 그림 보기를 거부했었지요.) 또한 먼저 나가지 않고 끝까지 그림을 보는 것을 보니 이 화가 작품의 매력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지난 호의 주인공 이중섭이 ‘서귀포의 화가’라면 ‘제주도의 화가’로 칭송 받는 이번 호의 주인공 변시지 화가를 소개합니다.

변시지 화가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양화(서양화)를 전공하고 졸업 후 ‘일전’과 더불어 일본의 대표적인 공모전으로 꼽히는 ‘광풍회전’에서 23세의 나이로 최고상을 수상하며 최연소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100 여년의 광풍회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이 그것도 한국인이, 그리고 23세라는 젊은 나이로 최고상을 받은 일은 그 당시 일본화단을 뒤흔드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일본에서 작가로서 성공의 길을 걷던 그는 한국으로 귀국합니다. 귀국 후 서울에 있는 고궁‘비원’의 풍경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일명 ‘비원파’활동을 하고, 일본 화상(畵商)을 통해 그림을 많이 팔았지만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제주도로 귀향해서 전혀 다른 느낌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이 때 그린 그림들이 나중에 ‘제주화’라고 불리게 됩니다.) 이 시절의 그림들은 그의 아들조차 좋지 않게 평가했었다고 합니다. 그의 아들은 잘 나가는(잘 팔리는) 그림을 버리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고, 또 그림들이 정교하지 않고 거칠게 그린 것 같아 굉장히 창피하게 여겨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심 아버지가 다시 ‘비원파’때의 그런 풍의 그림을 그리길 바랬다고 합니다.

제주에 내려오고 나서 변시지 화가는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가족이랑 떨어져 살면서 무언가를 이뤄내야 하는데 그림이 뜻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2년여 시간 동안 방황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러 자살 바위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그런 심적 고통의 과정을 겪은 후에 그를 세상에 알리고 남겨지게 한 ‘제주화’가 탄생합니다.

그럼 ‘비원파’ 그림을 먼저 보실까요?
비원파 시절의 그림을 보면 정말 잘 그린 그림입니다. 서양화를 전공하고 제대로 습득한 화가다운 그림입니다. 그림 속 고궁의 기왓장 수가 실제와 같을 정도로 섬세하고 치밀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색, 구성, 묘사 등등이 잘 어울러져 있어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잘 팔릴 수 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인기 화가의 인기 작품이 그 화가의 대표작이나 역작은 될 수 없다는 말처럼 변시지 화가에게는 그 그림들이 자신의 마음에 차지 않았었나 봅니다.

그럼 ‘제주화’라고 불리는 제주도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 그림들을 볼까요?
그림을 보는 순간 저는 똑바로 몸을 가누고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림 속에 있는 바람이 너무도 세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사진처럼 자세히 묘사한 것도 아니고, 굉장히 색을 절제하여 사용했지만 그림이 너무도 생생히 느껴집니다. 마치 3D 영화를 보는 것처럼 폭풍과 풍랑의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입니다. 아! 그래서 ‘폭풍의 화가’라고도 불리나 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그림 속에 한 사람과 한 마리의 말이 등장합니다. 어딘가를 향해 나란히 걷고 있거나 거센 바람이 불면 서로 의지를 하고 있습니다. 고독해 보이는 그 한 사람이 변시지 화가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색! 색! 색!
그림 속의 황금 빛 황토색과 검정색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따뜻하기도 하고 빛나기도 하고 눈이 약간 부시기도 한 그런 느낌의 색은 정말 제주도의 맑고 강한 햇살을 실감나게 표현했습니다. 그림을 보면 제 앞에서 제주도의 강렬한 햇빛에 눈이 부시지만 눈을 찡그리고 감을랑 말랑 실눈을 뜨고 열심히 빛을 그리고 있는 변시지 화가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의 그림이 주는 또 다른 느낌은 그림이 서양화 재료인 유화로 그렸는데 동양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절제된 간결한 먹 선의 느낌. 그가 활동하던 시기의 유행은 서구적인 화풍이었고, 잘나가는 작가들은 외국으로 나가서 활동하는 것이었는데 반해 그는 한국 작가는 한국에서 활동해야 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작품 2개 -난무(1994), 이대로 가는 길(2006)-는 생전에 살아있는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그 유명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작품도 사후에 전시되었음) 160 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뮤지엄에 10년간(2007 ~2016) 상설 전시 중이기도 합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서 제주도를 떠났다가 다시 제주도로 돌아와 살다가 이어도(제주사람들의 관념 속에 자리 잡은 죽어야 갈 수 있는 상상의 섬)로 떠난 변시지 화가와 그의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변시지 화가의 작품들은 지금 제주 돌문화 공원 내 오백장군 갤러리에서 9월 30일까지 특별전으로 열리고 있으며,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기당 미술관’에서는 상설 전시 되고 있습니다. – 특히 기당 미술관은 1층의 그림을 보고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2층의 그림을 보고 있는 특이하고 신기한 구조의 미술관이니 제주 여행을 하시는 분들은 꼭 들러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아울러 사진촬영도 허락해 주시고 비매품 도록도 선뜻 주신 기당 미술관 관계자분께 깊은 감사인사 드립니다.)

간결한 것이 더욱 좋다.
제주도를 단순화해서 점 하나로 세계를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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