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16,Tuesday

독서 모임 ‘자작 공간’- 나이를 먹는다는 것

 

 

‘아니 얘가 벌써 이렇게 컷어?’ 인사 치레가 아닙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자녀를 보면 우리는 진심으로 놀랍니다. 모든 사람은 남들이 나이 드는 것은 잘 알지만 정작 자기만 자기가 나이를 드는 것을 모르는것 같습니다. 전국 노래 자랑을 보다가 동작구 상도동에서 오신 김OO 씨 (XX세)라는 자막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볼때 내가 저사람을 볼때의 느낌을 받는다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 마음은 아직 20대 초 그 마음과 큰 차이가 없는데, 몸상태는 그 때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해가 지날수록 느끼며 남몰래 서글퍼집니다. 그래서 그 때 그 시절 노래를 찾아 듣고, 노래방에 가면 그 때 그시절 노래를 부르며 잠시나마 그 때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으며 시간여행을 합니다.

‘내 나이 몇살 같아요?’ 라는 질문은 사람을 처음 만날때 자주 듣기도 하고, 자주 하기도 하는 질문입니다. 사회 생활을 좀 해본 사람은 보통 보이는 나이보다 3살정도 빼서 대답하는 센스를 발휘합니다. 정직하게 대답했다가 정답을 맞추기라도 하면 초면에 인상을 구기고,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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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지원용 사진을 실물과 똑같이 찍은 사진사가 고객에게 실력없는 사진사로 비난을 받듯이, 사람의 나이를 똑같이 맞추면 우리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자신의 나이를 들음에 있어서 우리는 사실주의 보다는 초현실주의를 선호합니다.

나이를 먹는 것이 개인의 선택사항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선호되는 일도 아니지만 좋은 점도 있습니다. 일단 판단이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사회경험을 해보면 이제 자기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됩니다. 어렸을때는 하고 싶은일, 좋아하는 일, 해야하는 일 사이에서 많은 정신적 갈등을 겪습니다. 나이가 들면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경계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장래 희망에 ‘군인’ ‘대통령’, ‘과학자’, ‘의사 선생님’, ‘가수’ 라고 쓰는 40대 아저씨, 아줌마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할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렸을때 가졌던 막연한 불안감과 초조함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잘 속지 않게 됩니다. 사회 경험을 해보면 ‘일확천금’이라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고, ‘세상엔 공짜가 없다’라는 당연한 사실을 체득하게 됩니다. 다단계 피라미드 사기에서 주 타겟이 어린 대학생들이 되는 이유가 그래서 입니다. 그렇게 좋은 일이면 친동생이나 자기 친척에게 기회를 줄것이 뻔한데, 굳이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기회를 준다면 일단 의심부터 해보는 것이 나이든 사람들입니다. 인간 관계도 편해집니다.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 들으면 밤새 잠못자다가 다음날 아침 일찍 따지러 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나에게 나쁜 사람, 나에게 좋은 사람이 있을 뿐인거죠. 먹고 살기 위해 만나는 사람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욕을 하지도, 욕을 먹지도 않으며 사는 기술을 터득합니다. 이것을 잘 못하면 사회생활 잘 못한다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와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나 소주 한잔 기울이고, 자기 가정을 돌보며 사는 것이 나이든 사람들이 사는 방법입니다. 모두에게 잘 해줄수도, 모두에게 좋은 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는 것을 나이든 사람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나이에 대해 우리는 어느정도 이중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어떨때는 ‘어린놈들이 싸가지도 없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나이에 대한 권위를 인정 받으려 하고, 어떨때는 한살이라도 어려 보이려고 운동, 염색, 보톡스, 필러 등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나이에 대해서는 그냥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답인것 같습니다. 예전에 나이든 사람들이 권위가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지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 입니다. 웹 4.0 시대에 ‘지식’만 두고 본다면 ‘나’보다 젊은 후배들이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지식’을 갖고 권위를 인정 받으려 하면 권위 대신 ‘꼰대’라는 비아냥을 듣게 됩니다. 대신 아직 경험 부족으로 인해 매일 매일 처음간 프랑스 식당에서 아침, 점심, 저녁 메뉴를 고르는 듯한 삶을 살고 있는 젊은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어주며 그들에게 ‘셋트 메뉴’를 고르는 신세계를 알려주면, 후배들은 그를 ‘멘토’라고 부르면서 마음속으로 따를 것입니다. 뭐가 제일 맛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선배들은 뭐가 맛없는지, 쓸데없이 비싼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선배들은 ‘멘토’의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곧 새해가 밝고, 또 한살을 먹게 됩니다. 우리가 나이드는 것이 싫은 이유중의 하나가 ‘ 이 나이 먹어놓고 뭐 해논게 없네’ 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잘나가는 친구, 좋은 차 타는 옆집 아저씨, 공부 잘한다고 소문난 영숙이 아들 철수만 생각하면 새해마다 그런 생각에 한숨이 나올수도 있습니다. 성공의 기준을 외부에서만 찾는다면 우리는 사회가 정한 기대치의 노예로 살수 밖에 없습니다. 올해 나이가 한살 더 먹을때는 나는 건강한지, 내 가족은 행복한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있는지, 나는 하루 하루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는지 하고 질문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나에게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남에게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사는 것보다 더 쉽고, 큰 행복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저자 – 독서 모임 ‘공간 자작’
이번에 본 칼럼을 시작한 독서 모임 공간 자작은 회원수 xx명 규모의 2018년 말 시작하여, 한달에 한번씩 평균 2권의 책을 읽으면서 토론하고, 주제를 논하는 독서 모임이다. 이들의 칼럼은 ‘공간 자작’ 대표측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발표할 예정이며, 2주에 한번씩 연재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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