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4,Wednesday

한주필 칼럼 – 주책

주책, 좀 묘한 단어입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주책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정한 판단력이나 주관을 의미하고, 다른 한 가지는 그와 반대로 줏대 없이 되는대로 하는 짓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주책맞다’와 ‘주책없다’는 같은 의미입니다. 두 가지 다 줏대 없이 되는대로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여하튼, 주책이라는 단어의 이미지는 별로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자신의 경우는 어떠한가요? 과연 주책은 그저 남의 얘기일 뿐일까요? 가끔 스스로 주책스러운 언행을 했다고 후회하는 경우는 없던가요? 안 해도 될 소리를 대책 없이 해놓고는 잠자리에 들어 생각하다가 이불 킥을 날리며 후회를 하는 경우 말입니다. 물론 이런 후회는 젊은 시절에도 합니다. 그러나 젊은 시절의 그런 말실수는 그야말로 실수로 치부하는데, 알만큼 알 나이가 되었음에도 그런 말실수를 하면 주책맞은 소리를 한다고 힐난을 받는 것이죠.

새해에는 늙은이가 주책맞는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주책맞는 행동이나 말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찾아보고 그런 상황을 맞을 때 약간의 경각심을 갖자는 의미에서 이 주제를 택했습니다. 마침 자료를 찾다 보니 어느 유튜브에서 나열한 주책의 종류가 있더군요. 공감이 가서 그 내용을 참고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첫 번째 주책은, 앉을 자리를 구분 못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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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늙은 내가 끼여도 될 자리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못하면 은근한 눈총을 받게 되는데, 그 눈총에는 주책스럽다는 표현이 담깁니다. 직원들이나 후배들과 회식 자리가 마련되었을 때 나이 든 양반은 1차 회식이 끝나면 식비를 지불하고 ‘이제 편하게들 노시게’ 하며 자리를 떠야 합니다. 이게 잘 안되면 주책소리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모임에 나가면 아무래도 가장 연장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부담스럽습니다. 참석 여부부터 고민하게 됩니다. 의례적으로 초대한 것인지 진짜 마음으로 부른 것인지를 구분부터 해야 하니 말입니다. 마스터스 골프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트 골프장에서는, 역대 챔피언은 영원히 참가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나이 든 양반들이 역대 참피온이라는 이름으로 매해 참가하여 꾸물대는 게 별로 보기 좋지 않자, 마스터스 주최 측에서는 그들에게 초대장을 보내면서, “참가하시면 영광이지만, 멀리서 불편하신 몸을 감수하는 참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라는 정중한 거절의 의미를 기입했습니다. 그 후로 꼬부랑 늙은이들이 나와 어정대는 모습들이 사라졌습니다. 앞으로 늙은이들에게 초대장을 보낼 때는 이렇게 좀 알아듣는 내용의 문구를 적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앉을 자리 구분 못하는 주책이란 소리를 안 듣지요.

두 번째는 할 말, 못 할 말의 구분을 못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오랜만에 만나 좋은 식사 자리에서 상대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남긴 사람의 잘나가는 안부를 묻지도 않았는데 꺼내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이혼으로 가슴 앓이를 하는 여성에게 전 남편이 이번에 다시 재혼한다더라 하며 전하는 인간은 주책이 넘어 눈치 없는 인간으로 왕따 당하게 됩니다. 그러니 늘 좋은 소식만 전하세요. 나쁜 소식은 그대 말고도 전할 이들이 넘쳐납니다.

세 번째는 농담과 진담을 구분 못하는 경우입니다.

특히 젊은이들 농담을 이해 못하고 진담으로 알아듣는 경우 참 난감한 상황이 연출됩니다. 머리 숱이 다 빠진 양반에게 “어르신이 들어오시니 방 안이 다 밝아집니다” 한다고 화를 내시면 안 됩니다. 농담과 유머를 구분하셔야 합니다. 유머는 늙은이를 친근하게 만드는 수단입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하자 ‘제 고향이 영광인 걸 어찌 아셨나요’ 하는 어느 국회의원의 유머는 대중과의 거리를 좁힙니다. 웃자고 한 소리를 진담으로 알아듣고 화를 내도 곤란하지만, 진담을 농담으로 대수럽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입니다.

네 번째로는 나이를 벼슬로 아는 경우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대접을 강요하는 경우입니다. 가진 것 없는 미천한 인격을 들어내는 주책인데, 특히 서비스 업종의 어린 현지 종원업을 함부로 대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행동은 주책을 넘어 비겁한 행동입니다. 그나마 나이로 위세하는 것은 주책으로 끝나지만, 몇 푼 돈으로 위세를 부리면 인상이 바닥난 짐승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런 문화를 무시하고 그들을 함부로 대하면 자신도 모르게 기피 인물 명단에 이름을 올립니다. 우리 교민들이 특별히 주의해야 할 사항입니다.

다섯 번째는 어른과 꼰데의 구분입니다.

어른 노릇을 한답시고 매번 만날 때마다 공자 얘기를 늘어놓으면 참 상대하기 힘든, 주책맞은 인간이 됩니다. 골프장에서 청하지도 않은 가르침을 마구 뿌리는 양반들 역시 주책 맞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요즘 표현대로 “라떼는 말이야” 하며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 듣는 사람이 얼굴이 굳어집니다. 진짜 어른은 말을 아낄 줄 알고 주로 묻는 말에만 대답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주책은, 주책 구분이 안 되는 경우입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주책맞은 행동인지 아닌지를 구분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주책입니다. 이런 글을 올리는 게 주책인지 아닌지 구분을 못하고 주책스러운 글을 올리는 저도 주책맞기는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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