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September 24,Thursday

2014년 재외동포재단 주관 제 16회 재외동포문학상 청소년 초등부분 우수상 수상작. 퐁경이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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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지니 (13세 / 영국국제학교(BIS) / 토요한글학교 7학년 재학중)

아침6시.. 겹겹이 쳐놓은 암막 커튼을 뚫고 찬란한 햇빛이 펜싱 칼처럼 저의 얼굴을 겨누고 있습니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일어나라는 낯익은 음성이 들립니다. 저는 모른 채하고 다시 잠을 자려고 했는데 엄마가 방으로 들어옵니다. “지니야 오늘 한글학교 중간고사 있다며 일어나야지..”하지만 꼭 잡은 이불깃을 놓을 수 없었던 저는 다시 잠이 들었고 그 날 시험은 망치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시험 망친 사람은 저 뿐만이 아닌가 봅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1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받아쓰기 20점을 받았다고 훌쩍거리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습니다. 1학년 때 받아쓰기로 엄마한테 투정을 부리다가 울어버린 일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2009년 1학년 2반 신지니의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엄마는 제가 국어공부를 싫어 할까 봐 그러셨는지 해외에서 국어 공부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시면서 점수는 상관하지 말라고 그러셨는데 연속으로 30점을 받아오자 평소엔 차분하셨던 엄마는 아무 말없이 한 숨을 쉬시고는 연습 좀 해야겠다고 하셨고 엄마의 반응에 당황한 저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한글학교 운명의 받아쓰기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선생님은 차례차례 문제를 부르기 시작하셨습니다. 온 몸의 세포들은 선생님의 음성에 쫑끗 귀 기울이기 시작했고, 저는 하나라도 놓칠세라 숨죽이고 신중을 거듭한 끝에 마지막 문제까지 모두 완성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선생님의 빨간 동그라미를 기다리는 일뿐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조용히 혼자서 그 엄숙한 일을 수행하고 싶으셨는지 저희를 화장실을 갔다 오거나 매점을 갔다 오라며 휴식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나갔다 올까 말까를 천 번도 더 고민했던 저는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기로 했습니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마치 차가운 얼음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5분 정도 지났을까요? 선생님은 앉아있는 저를 부르셨습니다. 2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들리는 선생님 음성이 마치 100미터 정도에서 저를 잡으러 몰려오는 거대한 쓰나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제 발자국 소리만 텅! 텅! 하고 사방에 울려 퍼지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선생님께서는 “지니야 이번에 공부를 아주 많이 했구나? 수고했어! 100점이야.” 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너무 좋아서 하마터면 선생님을 끌어안고 볼에 뽀뽀를 100번이라도 할 뻔 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밖으로 나가니 저 멀리 엄마가 보였습니다. 저는 한달음에 달려가 한 손으로 멋지게 촤~악 영광의 시험지를 펼쳐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소중한 아니 자랑스러운 답안지를 꼼꼼하게 살펴 보시던 엄마는 “선생님이 바쁘셨나 보네..여기 한 글자 틀렸네.”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랜 나머지 얼음처럼 굳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시험지가 찢어질 듯 재빠르게 낚아채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제 눈에는 너무나 자랑스럽기만 한 100점짜리 시험지였습니다. 엄마는 그 상황이 흥미롭다는 듯이 한번 씽긋 웃으시더니 “여기 말이야..’풍경이 아름다웠습니다’인데 너는 ‘퐁경이 아름다웠습니다’로 적었자나..” 그 말을 들은 저는 약간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었겠지만 그리고 목소리도 의심과 확신 그 중간쯤인 목소리였겠지만 하여튼 저는 너무 속상한 나머지 “엄마 진짜로 선생님이 퐁경이 아름다웠다고 말했다고” 하면서 너무 긴장하고 억울한 마음에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알았다고는 했지만 내내 뒤돌아 계속 큭큭 거리셨습니다. 자꾸 웃는 엄마가 얄밉기도 했지만 엄마는 아마도 받아쓰기를 해본 적이 없을 것이고 그리고 그 숭고한 일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모를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후로 저를 한동안 ‘퐁경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어의가 없을 따름입니다. 아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받아쓰기 문제로 울던 아이… 그 아이도 저와 비슷한 이유로 울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또 그 아이도 엄마와 공포의 받아쓰기를 원망하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저는 호치민 영국학교에 다닙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호치민 한글학교에 다닙니다. 황금의 토요일은 그 동안 못 보았던 TV 프로그램과 운동을 하고 싶고 엄마 아빠랑 쇼핑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4시간 꼬박 수업하는 한글학교에 가려면 다른 즐거움은 거의 포기 해야 합니다. 가끔은 가기 싫은 마음에 변명거리를 찾기도 하지만 저는 저와 같은 생김새를 하고, 같은 말을 하고, 같은 글을 쓰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어서 오늘도 내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한글학교 다닐 것입니다. 이렇게 글짓기를 할 수도 있고, 엄마에게 편지도 쓸 수도 있고, 또 한국에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문자도 보내게 만들어 준 한글학교가 너무도 고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학년 때 저의 선생님은 정말 퐁경이 아름다웠다고 하셨을까요? 이 찜찜한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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