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16,Tuesday

한주필칼럼 – 골프와 바둑 그리고 인생

 

 

잡기에 능하다는 소리가 있지요. 이런저런 놀이를 잘한다는 의미인데 제가 좋아하는 바둑이나 골프를 잡기로 불러야 할지 잠시 망설여집니다. 잡기란 잡다한 놀이의 기술이나 재주를 의미합니다. 과연 바둑과 골프가 잡다한 놀이인가 하는 의문이 가는 것이죠.

만약 바둑을 잡기라 한다면 가장 흥분할 사람은 일본인들입니다. 중국에서 시작한 바둑이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후에 제대로 된 대접을 받습니다. 일본에서는 바둑을 동양의 정신이 이입된 일종의 道라고 생각하고, 막부시대에는 국기國技로 삼아 적극 지원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바둑을 잡다한 놀이라고 치부한다면 그들의 얼굴이 붉어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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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바둑을 잡기로 보지 않습니다. 엄청난 정신 집중이 필요한 게임입니다. 머리가 혼란할 때 가끔 인터넷 바둑을 두거나 유튜브에서 프로들 게임 영상을 봅니다. 흩어진 정신이 다시 질서를 잡는 듯합니다.

골프도 정신을 쓰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골프 게임은 정신 70%,  운 20%,  기량 10%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지요. 육체적 운동 중에 가장 많은 정신 소모를 요구하는 운동이 골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두 가지 다 좋아합니다.

이 두 가지 운동은 서로 비슷하고 또 인생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을합니다. 그래서 이들과 만나면 알게 모르게 인생을 배웁니다.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인생을 배울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유익도 흔하지 않을 듯합니다.

바둑과 골프, 두 가지 다, 인생의 길과 너무 유사합니다. 골프에서 인생을 배운다고 하고, 바둑에서는 인생의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 유사점이 많은 두가지 운동에서 배우는 인생을 한번 들쳐볼까요.

골프나 바둑을 함께 하면 상대의 심성을 대번에 알아봅니다. 골프 한 라운드를 돌거나, 바둑 한 게임을 겨루면 상대가 감춰두었던 성격까지 다 드러납니다. 대표적인 예로 여성분들과 바둑을 두면 깜짝 놀랍니다. 무엇에? 그들의 호전성에 화들짝 놀랍니다. 한국의 프로 바둑기사 중에 가장 뛰어난 여성 기사는 최정 프로인데, 그녀의 뛰어난 싸움 실력에 남자 기사들이 혀를 두릅니다. 그녀만 그런 것은 아니고, 대체로 여성 바둑기사들은 주로 싸움으로 승부를 냅니다. 남자들은 개인마다 틀리긴 하겠지만 최고의 기사들은 잘 싸우지 않습니다. 바둑 역사상 최 고수로 자타가 인정하는 이창호 기사는 상대가 싸우려 덤벼도 여간해서는 대응을 안 합니다. 그는 안 싸우고 이기는 방법을 택합니다. 어찌 보면 남자다운 기상이 없어 보인다고도 말할 수도 있지만 진정한 고수는 피를 흘리지 않고 승리하는 길을 찾아냅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호전적일 수 있다는 것을 바둑을 통해 알았습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한여름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은 헛말이 아닌 모양입니다.

바둑 격언에 초반 50집 필패라는 말이 있습니다. 초반에 뜻하지 않은 대박을 만난 바둑은 끝까지 그 유리점을 유지하며 승리하기 힘듭니다. 골프에서는 첫 홀 버디는 게임을 망친다고 하지요. 인생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예상 못 한 대박에 오만한 마음이 생기면 대박이 패가망신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바둑에는 일수불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번 내려놓은 돌은 다시 짚을 수 없습니다. 골프에도 공을 있는 그대로 치라고 합니다. 미스 난 샷을 다시 칠 수 있는 멀리간은 인생을 다 산 70세 이상의 명랑 골프에서나 가능합니다. 그래서 한 수, 한 샷 정신을 집중하여 후회 없는 착수와 스윙을 해야 합니다. 인생도 한 번 삽니다. 한번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후회 없는 결정을 위하여 중요한 순간에는 신중한 자세와 침착한 언행이 필요합니다.

바둑에는 수많은 격언이 있습니다.

부득탐승(不得貪勝): 승리를 탐하면 얻지 못한다.

사소취대 (捨小取大):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

봉위수기 (逢危須棄): 위기가 닥치면 돌을 버려라.

기자쟁선 (棄子爭先): 돌을 버리더라도 선수를 잡아라.

그 외에도 수많은 격언이 있지만, 모든 격언의 뜻을 하나로 모은다면, “욕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승부는 욕심이 빌미가 되어 결정됩니다. 골프도 마찬가지입니다. 버디 욕심에 늘 핀 만 보고 샷을 날리거나, 욕심껏 버디 퍼팅을 하다 길어지면 버실보득(버디를 잃고 보기를 얻는다) 이 됩니다. 주식시장이 나빠지는데 잃은 자금이 아까워 손절하지 못하면 깡통 구좌만 남습니다.

세상사의 모든 문제는 욕심에서 생깁니다. 돈, 명예, 사랑,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욕심을 버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적당히 제어할 방법은 있습니다. 욕심 크기만큼의 배려와 양보를 그 욕심에 삽입하면 균형을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이렇게 글로 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정작 행동으로 옮기기는 태산을 오를 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올라야 만날 수 있는 평화라면 올라야 하지 않을까요?

정상까지는 아니라도 오른만큼은 편해진 마음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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