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rch 29,Friday

한주필 칼럼- 골프와 화해하기

 

30년을 넘게 사귄 골프는 생각만 해도 그리운 친구입니다. TV나 영상에서 만나면 반가운 모습이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새록 새록 들지요. 생각난 김에 필드에서 데이트하기로 하고 약속을 정합니다. 전날 밤 데이트에 입고 갈 옷가지와 함께 하는 동안 마실 생수와 커피도 챙기고, 당 떨어질 경우를 대비하여 달달한 것도 준비합니다. 뜨거운 햇볕을 막기 위한 썬글라스와 멋진 우산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골프장에 가서 첫 티오프를 위해 조심스럽게 공을 올려 놓으며 오늘은 즐겁게 지내자며 환한 미소로 악수를 청합니다.

그리고 티 그라운드에서 바라본 1번 홀의 정경, 파란 페어웨이가 중앙에 있지만 왼쪽 숲과 오른쪽 벙커가 잔뜩 입을 벌리며 시야를 방해합니다. 저리로 보내면 안 되지 하며 입을 굳게 다물고 드라이버를 힘차게 휘두릅니다. 힘이 들어간 드라이버는 몸이 먼저 열려 슬라이스를 만들며 벙커에 빠집니다. 아직 몸도 안 풀렸는데 왜 그리 힘차게 휘두르는겨 하며 골프가 눈을 흘깁니다. 아 오늘도 어김없이 시작부터 삐그덕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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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첫 홀을 보기로 막으며 그린을 빠져 나오니, 파를 한 동반자가 첫 홀은 일파만파라며 모두에게 파를 선사합니다. 첫 홀부터 벙커로 안내한 골프보다 동반자의 아량이 훨씬 넓습니다.

그래도 몇 개 홀은 파와 보기를 나눠가며 잘 넘어갑니다. 오늘은 큰 다툼이 없이 지나가려나 하는데, 파 3홀 티그라운드에 마주하니 그린 앞에 물이 넘실거립니다. 물을 건너자마자 자리한 그린 앞쪽에 꽂힌 빨간 핀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30년 케리어인데 물이 무섭다고 긴 채를 잡을 수는 없지, 또 길게 올라가면 3퍼팅이 십상이야 하며, 앞핀을 감안한 짧은 클럽을 잡습니다. 짧은 만큼 제대로 맞아야 한다는 중압감에 힘이 잔뜩 들어간 클럽이 뒤땅을 스치면서 짧게 날아간 공이 간신히 물을 넘더니 그만 해저드 깊은 풀에 걸립니다. 깊은 풀을 이기려고 조금 강하게 친 샷이 핀을 훌쩍 지나 그린을 넘어갑니다. 그리고 앞 핀을 향한 세 번째 어프로치마저 물에 빠질 것이 두려워 짧게 치니 긴 내리막 퍼팅이 남습니다. 악재는 몰려 다닌다지 하며 쓰리퍼팅까지 선사하고 골프는 모른 척 뒤돌아섭니다. 짧은 홀에서 양파를 하고 나오니 얼굴이 붉어집니다. 에잇! 이놈의 골프! 속에서 피어나는 올화를 허허허, 억지 너털 웃음으로 감춰봅니다.

사랑스런 나의 골프는 평화로울 때가 별로 없습니다. 한 두어홀 아무 문제 없이 잘나간다 싶으면 어김없이 뭔가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그런 싸움이 반복되면 내가 이놈의 골프와 이렇게 싸우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자책이 들면서 마음에도 없는 이별을 들먹이며 겁을 줍니다. 그렇게 겁을 주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며 18홀을 마칩니다. 오늘도 우울한 데이트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골프와 다시 대화를 나눠봅니다.

그리고 골프가 하는 말을 들어봅니다.

이것 친구, 30년이 넘도록 옆에 지켜줘서 고마워, 그런데 말야, 그대는 아직도 나를 모르는 듯해. 내가 그대를 갈등으로 이끄는 아닌데, 그대는 뭔가 잘못되면 내탓을 하니 내가 오히려 섭섭하지. 지금부터 하는 말을 들어봐.

그대가 티그라운드에 서면 나는 손을 흔들어, 다른 보지 말고 정갈하게 잔디를 깎아 놓은 파아란 페어웨이로 오라고 힘차게 손을 흔드는 겨. 그런데 그대 시야는 왼쪽 숲이나 오른쪽 벙커로 향하며 페어웨이에 있는 나를 발견 하지 못하는 같아. 그리곤 그대가 본대로 벙커로 공을 보내곤 투덜대는 탓일까? 내가 오라고 손질하는 페어웨이를 보고 치면 자연히 그쪽으로 오게 돼. 제발 눈돌리지 말고 나만 바라봐. 

그리고 파 3홀도 그래, 내가 건너 그린 바로 앞에 핀이 있으니 위험하다고 빨간 깃발을 흔들지 않았어? 빨간색은 위험신호야, 짧게 치면 위험하니 짧은 잡지 말고 일단 넉넉하게 그린에 올리라는 신호라구. 그런데 그대가 쓸데없이 짧은 채를 잡고 용을 쓰며 왔다 갔다하다 대형사고를 것이 누구 잘못인가? 내가 오히려 섭섭하네. 오랜 세월을 함께 보냈음에도 아직도 소리에 닫고 몸짓을 외면하면서 투덜대는 그대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네. 내가 얘기하잖아, 내가 자리한 페어웨이에 공을 보내면 그린이 바로 정면에 보이고 풀도 없으니 샷이 진다고 말했지.
그리고 그린에 파란 깃대가 꽂혀있으면 클럽 길게 잡으라는 신호고, 빨간 깃대면 그린에 미칠 있으니 조심하란 신호라고 몇번을 말해? 파란 깃발은 푸른 하늘을 한번 바라보란 얘기여. 그러면 자연스럽게 평소보다 공을 길게 치게 돼. 그리고 흰색 깃발은 평소대로 편하게 치면 된다는 신호여. 30년을 일러줬는데도 듣는 자네도 대단한 고집쟁이인겨. 마음을 열어봐, 그럼 내가 하는 소리도 들리고 몸짓도 보여.

골프는 말하죠. 드라이버를 멀리 보내려고 용쓰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페어웨이에서 기다리는 골프와 데이트를 하러 나왔는데, 거리 경쟁을 하겠다고 용을 쓰다가 공을 러프나 숲으로 보내느냐고 나무랍니다. 비록 짧은 드라이버 거리지만 그곳이 페어웨이라면, 동반자보다 20야드 뒤에서 먼저 그린에 공을 멋지게 올리고 상대의 샷을 느긋하게 기다리는 여유로운 모습은 짧은 드라이버만이 보여줄 있는 매력 포인트라며 용기를 돋아줍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습니다. 역시 싸움을 건 것은 골프가 아니고 내 쪽입니다. 늘 골프는 손을 내밀고 나를 안내하는데 내가 딴청을 부리며 그 손을 뿌리친 형국입니다. 거기에 더해 적반하장으로 이별까지 거론하니 도를 넘은 행동입니다.

그것을 깨달으니 그제야 골프가 내민 화해의 손이 보입니다. 그렇게 골프와 화해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역시 맺힌 일은 해를 넘기기 전에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데이트가 더욱 기다려집니다. 다음 데이트에서는 골프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그의 안내대로 공을 쳐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꿈나라를 찾습니다.

안녕, 내 사랑 골프.

씬짜오베트남 데일리 뉴스도 오늘을 마지막으로 뗏 연휴 동안 쉽니다.

독자 여러분, 만복을 누리시고, 즐겁고 행복한 설 연휴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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