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6,Friday

한주필 칼럼- 관계

얼마 전, 유튜브에서 <관계에도 유통기간이 있다>는 강의 영상을 봤습니다. 그 영상을 기반으로 제 생각을 좀 써봅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입니다.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슨 크로스의 삶이 아니라면 모든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지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삽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관계에서 일어납니다. 그것이 갈등이든, 축복이든 말입니다.

젊은이들 상대로 가장 고민하는 문제가 무엇인가 하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첫 번째가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대한 고민이라고 합니다.

서로 함께 잘 살자고 맺은 관계인데, 그런 이성적 목적과는 달리 실상은 너무 감정적입니다. 인간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만날 때는 오랜만에 자신과 코드가 맞는 상대를 만난 듯하지만 관계가 깊어지면 예상치 못한 차이점이 드러납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하지요. 생물학적 타인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 관계의 근본 설정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윤리적 관념이 다른 연인 관계는 지속될 수 없고요, 경제관념이 다른 사업 파트너 역시 공존하기 힘듭니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에 관하여 재미있는 영어 문장 하나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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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an not change the people around you, but you can change the people around you.

당신은 주변 사람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주변 사람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게 뭔소리인가요? 바꿀 수 없다는데 바꿀 수 있다니, 이 말에는 서로 다른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바꾸는 대상 말입니다. 첫 문장 change의 목적어는 주변 사람들의 본성이고, 두 번째는 주변 사람들 그 자체입니다. 즉, 당신은 주변인의 본성을 바꿀 수는 없지만, 주변 사람을 다른 이로 바꿀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 동업하는 관계에 돈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다면, 그 관계의 기본 조건이 무너진 것입니다. 또한 한 편에서 초심을 잃고 과욕을 부리면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대부분 냉정하게 관계를 깨는 것보다 동업자의 관념이나 행동을 자신과 맞도록 수정하려고 노력하지만, 알다시피 타인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럴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CHANGE THE PEOPLE, 즉 사람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와는 오랜기간 맺어온 인연을 끊는 일입니다.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그간의 의리를 생각하여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는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유통기간이 지난 식품을 계속 마시다 배탈이 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조언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하기 싫은 일을 마땅히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특히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지내는 교민사회에서는 관계 맺은 사람의 본성이 뒤늦게 나타나 낭패를 보기도 하고, 관계정리가 잘 안되어 송사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단순한 친목 관계를 넘어서는 관계 맺기를 원한다면, 더구나 그것이 이권이 개입된 관계 맺기라면 충분히 고민해봐야 합니다. 돈은 열심히 일해서 버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과 인생은 한탕이라며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과의 조합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가벼운 저녁 식사 정도가 전부입니다. 외지에서 외로움을 덜어주는 친구가 되었다고 사업도 함께 할 수 있다는 믿는 것은 달걀과 골프공이 비슷하다고 한 바구니에 담아두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친구는 감정상의 문제고 사업은 이성의 문제입니다.

현명한 사람이란 시간과 장소 그리고 사람을 가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하지요. 해당 관계에 있어서 근본이 되는 축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그 축에 필요한 성품을 읽을 줄 아는 것이 사람을 가리는 것이고, 있어야 할 자리인지, 아닌지를 아는 것이 장소를 가리는 것이고,  머무를 시기와 떠날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시간을 가리는 현자라는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둔한 우리는 하나의 관계에 모든 다른 관계의 축을 다 담아 흔들어 대다가 시간도, 장소도, 사람도 가려내지 못하고 아예 그릇 자체를 깨고 맙니다. 그런 파국을 피하기 위해 관계 정리가 필요합니다. 설사 살아가는 철학이나 가치관이 달라 서로 다른 길을 가야 한다 해도, 그런 정리가 서로의 삶을 위해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는 공감을 나눌 수 있다면, 그 관계는 소멸되지 않습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고 합니다.

비록 피치 못한 이유로 정리가 된다고 해도,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세상사입니다. 우연한 자리에서 다시 만나도 미소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성숙한 정리 과정이 필요합니다.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는 어느 대중가요 노랫말은 늘 관계의 갈등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귀한 조언이 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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