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September 26,Saturday

한국어학과 여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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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학부의 전공은 경영학이다. 당시에 나에게 깊은 철학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장래희망 같은 것을 가지고 젊은 시절을 보낸 것도 아니었기에 학과의 이름도 그럴듯하고 졸업하면 취업도 잘될 것 같아 경영학과를 지망했던 것 같다.

교양과정에는 무역이나 경제학 등 상경학부에서 이루어지는 원리 수준의 전 과정을 두루 듣게 되는 데 그때 당시의 기억으로는 경영학 쪽보다는 경제학이 나에게 더 재미가 있은 듯하다. 그렇다고 경제학을 전공하고 싶었다는 것은 아니고 다만 경제학과에는 우리 과에는 없는 예쁜 여학생이 두 명이나 있었던 기억이 난다. 경영학은 재미가 없다.

당시 생산원가를 가르치는 어떤 교수가 경영학은 ‘엿장수가 엿을 얼마에 만들어서 얼마를 받고,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답을 구하는 것이다’ 라고 요약했을 때 우리는 ‘엿은 엿장수 맘대로 만들어서 엿장수 맘대로 파는 것이다’ 라고 한마디로 요약 하기도 했는데 별로 재미없는 학문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은 120명의 학생 중 여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뼈 아픈 현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 때문이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과를 중심으로 친구를 만들기보다는 서클이나 동아리를 통하여 학교생활을 하는 듯 했고 나는 동아리나 서클활동도 하지 않았기에 학교와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자취방을 오갈 때 지나치게 되는 문과대 건물에서 풍겨져 나오는 분 냄새 때문에 학과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 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고등학교는 공업 고등학교라는 이유 때문에 여학생이 없었고 중학교는 남녀 공학이 아니었다는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자들만 있는 학교를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의무적으로 남녀가 합반이 되는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여학생을 구경도 못하는 반에서만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분가루 냄새 대신에 발 냄새만 맡으며 자랐기에 요즘도 가끔 ‘성질 더럽다’는 소리를 듣는 인격 형성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런데 늘그막에 베트남에 와서는 내 인생의 여복? 이 전환기를 맞았는지 내가 가르치는 학과에는 여학생만 가득하다. 40명의 학생 중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학생이다. 2명밖에 없는 남학생마저 여학생인지 남학생인지 구분하기 애매할 정도로 성적 정체성이 모호하다 보니 모두가 여학생 같다. 한마디로 나는 요즘 학창시절에는 가보지도 못한 꽃밭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쉬는 시간이면 여대생이 물컵을 갈아놓고 여대생이 커피를 가져다 놓는다. 나는 잡담 많은 여대생의 머리를 꿀밤으로 쥐어 박기도 하고 수업에 늦게 들어 오는 여대생을 벽 쪽에 새워놓고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를 5번이나 복창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제는 이런 행위가 너무나 자연스러워 내가 주먹만 내밀어도 스스로 머리를 주먹에 갔다 박고 늦게 온 학생은 자연스럽게 ‘통곡의 벽’을 쳐다 보고 죽을 죄를 지었다고 5번 외치고 자리에 앉는다. 나는 지금의 3학년 학생을 1학년 때부터 가르쳤고 수도 없는 자기 소개 연습과 리포트 때문에 난 그녀들 대부분의 꿈과 희망뿐만 아니라 가정환경까지도 잘 알고 있다. 잘 살고 있지 않은 나라의 여대생이라 우리 학과의 꽃밭은 한국의 어느 문과대 강의실처럼 분 냄새까지는 나지는 않지만 그녀들은 모두는 젊어 있는 청춘이며 아름다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 베트남의 미래 들이다.

3학년 학생 중 가장 공부를 잘하는 학생의 이름은 ‘후에’ 이지만 그녀의 고향은 동나이다. 난 그 학생을 부를 때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어이~ 동나이’라고 부른다. 동나이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내 수업을 빠진 적이 없다. 동나이는 항상 강의실 첫 줄에 앉아 있으며 아직까지 ‘통곡의 벽’을 바라보고 반성을 한번도 하지 않은 유일한 학생이며 나의 살인 꿀밤도 맞아 보지 않은 성실한 여대생이지만 동나이에서 운전을 하는 그녀의 아버지가 키가 너무 작기에 그녀도 너무 작아 버렸고 몸이 불편한 어머니 때문에 집안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스스로 학비를 벌어 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녀는 아직 오토바이가 없으며 학과의 친구 3명과 방세가 가장 싼 ‘고밥’ 지역에서 학교가 있는 시내까지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고 있기에 ‘리포트’ 속에 소망이 오토바이를 빨리 사는 것이라고 1학년 때부터 적어 왔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을 적기 위해 얼마 전 오토바이를 샀냐고 물어 보았지만 그녀는 아직도 사지 못했다고 했고 언제쯤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고 아직도 소망은 오토바이를 빨리 사는 것이라 하기에 내가 중고 오토바이라도 한 대 사줘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투’는 우리 과에서 가장 여대생 같은 여대생이다. 투는 스스로 소녀시대의 ‘수지’를 닮았다고 생각하고 그의 얼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아직 수지가 누구인지 몰라 정말 비슷한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투의 성적은 얼굴에 반비례 하여 끝에서 두, 세 번째 쯤 되고 학과 수업이나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우리 과에서 ‘수퍼쥬니어’의 노래를 제일 잘 부르며 과에 행사가 있을 때 마다 얼굴 마담으로 활동 하기에 투가 우리 과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은 상당한 듯 하다. 하지만 그녀는 잡담을 좋아하기에 나의 꿀밤을 우리 과에서 가장 많이 맞은 듯하고 그 놈의 잠 때문에 ‘통곡의 벽’을 쳐다 보고 외치는 반성도 가장 많이 했기에 결국은 나에게 ‘총’을 맞아 지금도 한 과목은 2학년 학생과 같이 수업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한국 병원의 간호사 되길 바라지만 그녀는 가수가 꿈이라 베트남의 어느 프로모션회사의 오디션을 세 번 이나 보았다고 했고 아직은 아무 곳에서도 연락을 받은 적은 없다고 했지만 난 그녀가 간호사가 되는 것 보다는 환자의 안전을 위하여 가수가 되는 것이 나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우리 과의 반장을 처음 보았을 때 ‘이영자’란 한국 코미디언이 생각나 반장의 한국 이름을 이영자로 지어 주었다. 영자씨의 목소리만 듣고는 그 누구도 우리학과의 반장이 여자인줄 모른다. 그녀는 이영자씨 보다 더욱 활발하고 이영자씨 보다 조금 더 무거울 수 있다고 짐작은 가지만 아직도 반장에게 몸무게를 물어 보지 않아 이영자씨 보다 무거운지 어떤지는 아직도 나는 모른다. 영자씨는 학과 학생 중 나에게 가장 관심이 많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에게 관심이 많은 것이 아니라 이제 고 3 밖에 되지 않은 한국에 있는 아들에게 관심이 많다. 내 아들의 근황을 물어 볼 때마다 내가 몇 번이나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강조했지만 3~4살 차이는 충분하게 극복 할 수 있단다. 그녀가 우리 과에서 2등 정도 하는 우수한 여대생이며 그녀의 아버지가 호치민의 어느 치과대학의 교수이고 어머니는 베트남 대기업의 지분 이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녀가 졸업 후 예정되어 있는 한국 유학을 가더라도 난 그녀에게 내 아들의 연락처를 주지 않을 듯 하다. 왜야 하면 난 코미디언 이영자 스타일을 며느리로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으며 내 아들도 여자를 보는 눈은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난 이렇게 희망과 꿈이 다르고 환경도 다르지만 모두 젊어 있는 40여명의 여대생을 데리고 베트남의 미래가 될 수도 있는 그들을 키워가고 있다. 어떤 이는 당장의 꿈이 오토바이를 사는 것일 정도로 환경이 좋지 않고 어떤 이의 꿈은 실현 가능성이 없을듯한 가수가 되는 것이며 어떤 여학생은 이영자씨보다 무겁게 자라 있지만 내 같은 늙은이가 아니라 나의 아들을 애인으로 두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들 한국어학과 여대생 중에는 나같이 학과 이름이 좋아서 또는 취업이 잘될 것 같아 목적 없이 한국어 학과를 선택한 이도 있겠지만 한국을 동경하고 한국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이 좋아하는 한국은 ‘수퍼쥬니어’와 내 아들 같이 젊어 있는 또래의 한국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지 결코 늙어 있는 나 같은 한국 사람까지 좋아하는 범주에 포함 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은 명확 하다. 이들 여대생은 한국어를 더욱 쉽게 배우기 위하여 또는 한국인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위하여, 베트남에 있는 수많은 초보 수준의 교민과 접촉하게 된다.

어떤 교민은 이들 한국어학과 여대생이 베푸는 친절을 오해하여 오버하는 경우도 있고 이들의 친절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 베트남의 한국어학과 여대생은 한국의 여대생만큼이나 젊어 있고 그들 꿈 또한 너무나 야무지기에 만약 교민님이 젊어 있지 않다면 그들의 친절을 사랑으로 착각하거나 그들의 친절에 대하여 오버 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작성자 : 최 은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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