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19,Friday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 유산(遺産)

 

 

어릴 때는 설날이 되면 마냥 신이 났습니다. 부모님이 마련해 주신 설빔을 차려 입고 풍성한 먹거리와 오랜만에 친척 형제자매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세배를 하면 할수록 두둑해지는 주머니에 흐뭇해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세뱃돈을 받는 입장에서 달려 드는 조카들을 피해 달아나야 하는 입장으로 변한 때부터였습니다. 결혼 때를 지나친 사촌 형, 취업을 못한 동생들에게는 더욱 달갑지 않은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기쁨이라는 게 남아 있었습니다. 가능성이라는 미래가 젊음이란 이름으로 우리 삶에 살아 꿈틀대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친지 어른들의 걱정과 타박 속에도 간만에 만나는 또래 사촌들과 어울리며 니캉내캉 주고받는 우리만의 설풍경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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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덧 그런 세월마저 보내고 나니 남았던 한줌 기쁨도 바람에 흩어지는 재처럼 펼친 손가락 사이로 부스스 빠져 달아납니다. 기쁘고 설레던 기억은 어디로 가고 이룬 건 없어도 배짱은 있었는데 그마저 사라진 자리에는 염려만 가득 차 있습니다. 어릴 때는 쉬웠던 모든 일이 어른이 되니 하나도 쉽지 않더라 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나이도 지나고 나면 새해가 되어도 맨숭맨숭 합니다. 아예 반갑지도 않습니다. 새해맞이 인사는 그저 몇몇 사람에게, 그것도 인터넷에 올라오는 이미지로 대신하고 마니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멘트는 철 지난 유행가의 의미 없는 후렴구나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이런 지경이니 새해라도 신선함은 커녕 첫날부터 몸도 무겁고 머리도 개운치 않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무대책으로 새해를 맞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 끄트머리에 살아온 날의 반의 반도 남지 않은 날을 위해 무얼 준비해야 할까 하는 질문이 대롱대롱 매달려 나옵니다.

 

뗏 기간 중 어떤 분이 모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분도 같은 고민 끝에 새로 맞는 해부터 유산을 준비하기로 했다 합니다. 설이 되어도 더이상 흥분이 일지 않는 나이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니 늦기 전에 자신이 남길 유산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는 거지요. 자녀들에게 남길 유산, 자신이 몸 담은 어떤 조직, 관심을 두고 있은 어떤 것들에 남길 유산, 이제 십 수년 뒤 몸과 기억이 쇠하더라도 자기가 살아온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바로 그런 것을 찾아 유산으로 전해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문득 ‘너희는 이것을 자녀들에게 말하고, 자녀들은 또 그들의 자녀들에게 말하게 하고, 그들은 또 그 다음 세대에게 말하게 하여라’ 하며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이켜 각성할 것을 외쳤던 요엘 선지자의 목소리를 듣는 듯했습니다. 유산의 크기를 금전적 가치로만 환산하는 시대에 영적이고 정신적인 유산을 전해주고자 하는 그 분의 고민이 새삼 다가왔습니다.

 

문용린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교육부장관을 지냈고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한 분이니 세상적인 기준으로 성공한 이입니다. 그는 I.Q에 집착하여 학생들의 가능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던 시기의 국내에 ‘다중지능이론’이란 개념을 처음 소개해 다양성에 대한 시각을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분이 책을 냈는데 제목이 ‘부모가 아이에게 물려주어야 할 최고의 유산’입니다. 저자 자신이 두 아이를 둔 아버지였고 교육계에 오래도록 몸담았던 학자이기도 했으니 현장을 보며 얻은 고민의 결론을 담은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최고의 유산은 ‘자기 성찰력’, ‘긍정심’, ‘행복을 찾는 눈’, ‘몰입의 기쁨’, ‘만족 지연 능력’, ‘인간 친화력’, ‘생각의 자유’로 일곱 가지를 꼽고 있습니다.

저와 말씀을 나눴던 그 분의 경우에는 한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세상과 인생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일’입니다. 옷의 첫 단추를 잘못 꿰어 마지막 단추를 넣을 자리를 잃어버리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컴퍼스의 뾰족한 바늘 끝을 중심에 정확히 꽂아서 바른 원을 그릴 수 있도록, 그런 시작과 중심에 대해 전해주고 싶어 했습니다. 그것을 단지 조언이나 지침 혹은 강요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남은 삶 속에서 아버지 된 자신이 살아가는 태도로 직접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분이 자녀들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유산은 건강한 신앙의 유산이었습니다. 그의 남은 생을 통해서 직접 증거할 그런 유산입니다. 그것을 위해 육십이 넘어 각질이 되어 굳어진 자기의 몹쓸 성품의 부분이 있다면 버리도록 애쓰고, 변할 부분을 변화시켜 성장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육체의 성장이 멈추고 이제부터 노쇠하여 부서져 가는 때에 자녀에게 살아갈 인생의 바른 기준을 주고 싶은 열망으로 수십년 묵은 땅에 쟁기질을 하듯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자신을 바꿔가고자 하는 그 분의 의지나 문용린 교수와 같은 노력을 저는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살아온 날이 살아 갈 날의 수배에 이르고 새해를 맞이해도 새로운 흥분을 더이상 느낄 수 없을 때 우리는 이제 우리의 자리가 세상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옮겨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살았지만 믿고 있던 주먹에는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고 한 번만 들으면 기억하던 상대의 이름도 두 번 세 번을 확인해야 간신히 기억할 수 있을 때가 되었을 때, 우리는 스스로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이루던 시절은 지나고 이제는 물러서 돕는 때가 되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렇듯 원치 않았으돼 나이가 더함에 따라 나도 모르게 만들어진 자리에서 준비해야만 할 것이 유산입니다. 살아온 세월들을 돌아보고 그 의미들을 정리해 보며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길 수 있어야 하는 그것이 진정한 유산입니다. 인류가 빙하기를 넘어 살아남은 수많은 종들 속에서 창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지혜의 DNA를 세대에서 세대를 이어 유산으로 전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른 새벽 달아나버린 잠을 잡기 위해 뒤척이다 마음을 고쳐 먹고 자리에 앉아 그 분과의 대화를 되짚어 봅니다. 유산, 무엇을 남기고 살 것인가 조용히 생각해 보는 가운데 저 멀리 로부터 찾아오는 부드러운 아침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습니다. 아침을 건강히 맞을 수 있을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 夢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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