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5,Thursday

한글, 화룡점정

옛날에 중국 양나라의 장승요라는 화가가 금릉의 안락사 벽에 용 4마리를 그려 놓고 눈동자를 찍지 않은 채 ‘눈동자를 찍으면 즉시 살아서 날아갈 것이다.’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그의 말을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여 용 그림에 눈동자를 찍으라고 재촉하자 장승요가 붓을 들어 눈동자를 찍으니 잠시 후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쳐 벽이 깨지면서 눈동자를 찍은 용 2마리는 즉시 살아나 구름을 타고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 버렸고 눈동자를 찍지 않은 용 2마리는 그대로 있었다는 설화에서 비롯된 고사성어가 화룡점정이다.

즉, 무슨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마지막 중요한 일을 함으로 일을 완성시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있어서 마지막 화룡점정은 바로 한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글 제목을 화룡점정으로 이끌었다.

지난 3일 우리나라의 개국을 기념하는 개천절 행사가 있었다.
개천절, 참으로 거창하지 않은가? 지구의 한 곁, 조그만 한반도에서 별로 크지도 않은 나라를 개국하면서 감히 개천, 하늘이 열렸다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지, 그 기개야 말로 바로 한민족의 정체를 드러내는 일이다.
단군이 개국을 한 후 5천 년의 장구한 역사를 누리며 중국 변방의 작은 민족으로는 드물게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지만, 워낙 거대한 나라인 중국의 옆에 있다 보니 우리 문화의 대부분이 중국의 영향을 받아 타인의 눈에는 중국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작은 나라에 불과한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살아왔는데, 최근, 불과 수십 년 동안 세계가 놀랄만한 눈부신 발전을 거치면서 뭔가 각별하고 만만치 않은 나라로서의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어떻게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자신만의 컬러를 보이며 현대사에 남다른 족적을 남기고 있는가? 한반도에 사는 한민족은 도대체 무엇을 갖고 있는가?

한민족이란 지역적으로는 한반도라는 곳에서 살며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 그 한국어를 표기하는 문자 역시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자인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북한과 형제라는 연을 끊어낼 수 없어 수많은 난제가 쌓여있는 골 아픈 통일 문제를 영원히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 아닌가? 만약 한글이 없어 북한과 사용하는 문자가 서로 다르거나 혹은 중국과 같이 모두 한자를 사용한다고 가정한다면 과연 우리가 북한에 이렇게 애착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도대체 언어란 무엇인데 이렇게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을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공동체로 묶어 놓는 것일까?
언어란 일종의 자의적인 약속이다. 그래서 언어는 형태와 그에 대응하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즉, 이것은 ‘말’입니다 라고 얘기하고는 소를 지적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말이라는 형태(글,음성)는 말이라는 동물을 의미(개념)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모인 집단이 자의적 약속에 의해 정해진 동일한 언어를 함께 사용한다는 것은 이미 남다른 약속을 행하는 동질의 성향(문화)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언어가 그 집단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다 용이하고 소통하기 편리한 언어(음성,문자)로 집단 구성원간의 장애 없는 대화와 기록이 가능한 집단은 그렇지 못한 집단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문화수준을 가졌다고 해도 크게 어긋남이 없다.
바로 한민족이 가지고 있는 힘의 원천은 누구나 쉽게 배워서 사용이 가능한 최고의 문자언어, 한글이 아닌가 싶다. 그런 한글이 있었기에 우리의 문화와 교육의 수준을 높일 수 있었고, 그 양질의 인력을 활용하여 남다른 발전을 이루게 만들었다고 믿는 것이다.

문자는 인류의 문화가 발생된 4대강 유역에서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입으로 전해지는 음성언어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지고 기억에서 지워지는 약점을 지니고 있는 터라 그런 약점을 보완하여 기억력을 돕기 위한 수단으로 문자언어가 시작되었다.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 종교적인 목적이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재물을 받쳐야 할 때 그것을 규정하기 위해 그림을 단순화한 상형문자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문자가 생기고 자신들의 행적이나 필요한 규범에 대한 기록에 가능해지면서 역사시대가 막을 연다.

문자는 처음에 형상을 그려서 나타내는 회화, 표의, 표음 문자로 발전하여 왔으며, 표음문자 중에서도 낱낱의 소리를 상징하는 기호를 사용하는 음소문자가 가장 발달된 문자로 한글이나 알파벳이 이에 속한다. 그런데 한글은 그런 음소 문자 중에서도 문자의 기호가 스스로의 발음의 기질을 지니고 있는 가장 발전된 자질문자라는데, 인류의 모든 문자 중에 유일한 자질문자가 바로 한글이라는 것이다.

’86년도에 영국의 리스대학의 음성언어학과 제프리샘슨(Geoffrey Sampson)교수는 한글이 발음기관을 형상화하여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도 독특하지만,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하여 음성학적으로 동일계열의 글자를 파생해내는 방법(ㄱ-ㅋ-ㄲ)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훌륭한 최고의 문자라고 극찬하며 한글은 표음문자 중에 가장 발달된 음소문자이지만 그 음소문자에서도 글자 자체가 그 발음의 성격을 나타내는 새로운 차원의 자질문자라고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선사했다.
자질문자란, 한마디로 직관적인 인식이 가능한 문자라는 의미다.
애플에서 아이폰을 만들었을 때 사용설명서도 없지만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사용법을 익히도록 디자인 되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새로운 전자시대를 이끌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질문자 역시 직관적으로 그 발음의 기호가 어디서 생겨났는지 모양을 보고 알 수 있다는 뜻이다.
한글의 우수성은 이미 세계의 석학들이 이구동성으로 인정하며, 인류의 위대한 지적 성취이자 지적 호사의 극치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지적 호사의 극치라는 지적은 반어적인 표현으로 한글은 문자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너무나 완벽하여 지나칠 정도로 호사스럽다는 표현이다. 그 표현이 너무나 과하다 보니 그 과찬의 속 뜻에는 인류의 위대한 지적 성취인 한글을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격에 맞는가 하는 시니컬한 비판적 사고가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이런 한글을 가졌다는 것은 한민족으로 더없이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좋은 연장을 갖고 있다고 모두 훌륭한 목수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위대한 무기를 어떻게 사용하는 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특히 요즘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서는 글자의 기능과 활용이 국가 경쟁력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10월 9일 한글날
우리문화의 초석이 되고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화룡점정의 역할을 수행한 한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돌아보고, 인류의 위대한 지적 성취를 한민족에게 선물한 세종대왕께 감사의 마음을 가지며 하루는 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작성자 : 한 영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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