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6,Friday

한주필 칼럼 – 노후대책

 

 

 

중국 송(宋)나라에 ‘주신중’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인생에는 다섯 개의 계획(五計)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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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생계(生計): 일생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계획

둘째는 신계(身計): 자신의 몸을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하는 계획

셋째는 가계(家計): 집안과 가족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

넷째는 노계(老計): 어떤 노년을 보낼 것인가 하는 계획

다섯째 사계(死計): 어떤 모양으로 죽을 것인가 하는 설계가 그것입니다

너무 포괄적인 언급이라 별로 마음에 닿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 마음을 두드리는 소리는 노계입니다. 쉬운 말로 노후대책이네, 유난히 시니어가 많은 베트남 한인사회에서는 큰 울림을 주는 화두입니다.

노후대책 어찌 세우고 계시나요?

많은 분이 노후대책을 세운다고 하지만 사실 생각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별로 없는 듯합니다. 가장 흔히 하는 일이 될 수 있는 대로 자금을 모아두는 것 정도인데, 그런 자금도 모으고 나면 쓸 일이 생기곤 하여 곧 바닥을 드러내고, 또다시 자금 축적을 해야 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그런 과정을 몇 번 거치고 나면 이미 노후에 접어든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노후라는 미래의 의미가 사라집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늘 노후대책을 준비만 하다가 늙고, 병들고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네요. 서울 시내에 자그마한 5층 빌딩을 하나 갖고 임대료를 받으며 지내는 은퇴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대로 생활비 걱정은 안 하고 살고 있지만, 재산이라고 하나 있는 빌딩이 땅에 묶여있으니 씀씀이가 자유롭지 못합니다. 언제까지 이리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빌딩을 매각하고 이런저런 빛도 청산하고, 남은 돈으로 베트남에 집 하나 장만하고 골프를 치며 노후를 편하게 지나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 꿈을 꾸며 자주 베트남을 오가며 노후 계획을 세워왔습니다. 이제 빌딩만 팔면 되는데 아무래도 망설여집니다. 벌써 몇 번 팔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 남은 재산인데
팔고 난 후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고 결정을 못 내립니다. 또 마침 그 주변에 아파트가 세워지고 땅값이 오른다는 소리에 또 몇 년, 욕망을 누르며 빌딩 관리를 직접하며 인고의 삶을 삽니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온 폐암으로 그만 생을 마감합니다. 결국 평생 모아온 재산을 자신을 위해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자녀들에게 양도하고 갑니다. 너무 안쓰러운 가장의 최후입니다. 그렇게 갈 줄 알았다면 그 잘난 빌딩 처분을 그토록 망설였을까요?

세상은 이런가 봅니다.

늘 벼르고 미루기만 하다가 정작 아무것도 해보지도 못하고 세월만 보내고 나서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아쉬움으로 가슴을 가득 채웁니다. 다시 한번 살면 이렇게 아쉬움만 남기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기회가 닿는대로 망설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이를 만나고, 평생 땀 흘려 모은 돈도 자신을 위해 쓰며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압니다, 아무리 마음으로 다져봐야 정작 실행되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인생은 늘 채우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살아가는 과정인 모양입니다.

왜 우리의 삶은 늘 이런 아쉬움을 남길까요?

문제는 마음입니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조금 더 좋은 환경, 좋은 조건, 좋은 기회를 추구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마음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열망이 발전을 가져오지만, 끝없는 갈구는 행복의 자리를 앗아갑니다.

완벽한 삶을 기대하면 모든 것이 부족해 보입니다. 세상에는 완벽한 상태, 완벽한 기회란 없습니다. 축구 선수가 상대 골문 앞에서 공을 한 번 더 돌려서 완벽한 찬스를 만들어 슛하려다가 그나마 찾아온 귀한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을 누누이 봤습니다. 모자란 대로 받아 들이고 지금의 찬스에 감사하며 슛을 해야 합니다. 비록 골이 되지 않아도 슛은 해봤으니 아쉬움은 덜 합니다. 노후를 위한 자금을 다 모은 후에, 멋진 풍경의 전원에 아담한 집을 짓고, 자 이제부터 행복한 노후생활을 즐기자 하고 출발 신호를 넣는 경우는, 골키퍼까지 제낀 완벽한 골을 기대하는 축구선수만큼이나 허망한 꿈입니다.

노후라고 특별히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오늘 사는 것처럼 노후에도 그렇게 살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내려놓고, 부족한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 상황에서, 이 자리에서, 웃으며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한 듯합니다. 지금까지 무탈한 것만으로도 축복입니다. 지금보다 더 큰 기쁨을 찾겠다는 욕심으로 가득 채운 우리 마음만 비울 수 있다면 별다른 노후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노후대책인 셈입니다.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듯이, 마음을 열면 행복이 찾아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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