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4,Wednesday

고정관념 깨기. 에곤 쉴레(Egon Schiele)


저희 화실 책꽂이에는 다양한 미술 관련 책들이 꽂혀 있습니다. 한 화가의 작품을 모두 담은 두꺼운 화집을 비롯해서 미술 관련 잡지, 작품 해설 집, 아동용 화가 위인전집, 각종 미술 전시회 도록 등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은 화실 학생들이라면 자유로이 열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 딱 한 화가의 화집은 금서(禁書)로 지정되어있어 학생(미성년자)들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림이 미성년자가 보기에는 너무 야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그의 그림을 볼 때 지나치게 노골적이라 수치심이 든다고 표현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보는 미술 전집에도 그가 빠지지 않고 한 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봐도 미술사 속에서의 그의 가치는 높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물론 어린이들이 보는 책엔 문제가 될 만한 야한 그림은 한 점도 실려있지 않습니다.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으로 유명한 화가, 오늘의 주인공 그는 바로 ‘에곤 쉴레’ 입니다.

‘에곤 쉴레’는 제가 무척 좋아하는 화가 중에 한 사람 입니다. 차마 못 쓰고 아끼고 아껴뒀던 ‘쉴레’ 를 이제야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 현재 활동하는 작가의 전시를 보다가도 ‘앗! 이 작가도 쉴레를 좋아하는구나.’ 또는 ‘이 작가는 쉴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네.’ 하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그만큼 그는 현대의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천재적인 화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그림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면 야한 그림을 뺄 수 없습니다. 지금 봐도 야한 그림인데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참 충격적인 그림이었겠죠. 그런데 이번 칼럼에서는 ‘어린 모델을 에로틱하게 그리다가 감옥에 가고 그 벌로 그림 한 점을 불태웠다.’, ‘쉴레는 클림트의 제자였다.’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아는 이런 얘기 말고 그의 그림에 대해서 좀 다른 얘기를 하려 합니다.

드로잉 분야에서는 쉴레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가 없습니다. ‘드로잉의 역사는 쉴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그의 드로잉은 대단합니다.

이전의 다른 화가들의 드로잉들은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작품을 위한 습작의 성격을 많이 띠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스승인 ‘클림트’의 드로잉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연습, 또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드로잉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의 선들은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마다 딱 그려져 있습니다. 드로잉들을 보면 선이 꺾이는 곳이 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신입생 시절에는 그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학 5년 동안 매일 아침 누드화를 그리며 인체와 씨름을 했더니 어느 날 평소처럼 그의 화집을 보는데 갑자기 ‘아!’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선이 꺾이는 곳이 그냥 멋을 부리기 위해 꺾인 것이 아니라 꺾여야 할 곳에서 정확하게 꺾이고 있었습니다. 인체의 해부학적인 구조를 따라서 정확하게 … 그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지우거나 남아있는 연필 스케치 자국도 볼 수 있습니다. 단번에 그린 것 같아 보이지만 고민하고 노력한 인간미도 느껴집니다.

또 다른 드로잉들을 볼까요? 가수들이 노래할 때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그 카메라를 찾아서 시선을 맞추는 것처럼 그림 속 인물들이 감상자와 눈을 맞추고 있습니다. 정면으로 쳐다보거나 몸을 꼬아서 보거나 제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앉았다가 섰다가 모두 다른 자세를 하고 있지만 눈동자들은 하나같이 감상자를 따라다닙니다. 도발적으로 때로는 반항적으로 쳐다보는 인물들과 눈을 맞추고 있다 보면 마치 그림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드로잉 이외에도 소개시켜드리고 싶은 그림이 있습니다. 보통 ‘해바라기’ 하면 고흐가 떠오르지만 쉴레도 해바라기를 그렸답니다. 그는 해바라기를 꽃으로 본 것이 아니라 초상화의 대상으로 생각해서 마치 사람이 서 있는 모습처럼 그렸습니다. 해바라기의 줄기에서 늘어진 커다란 잎들이 마치 사람의 팔과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한 쉴레 화집을 처음 다 본 후 들었던 생각은 ‘혹시 왕자 병 있는 거 아니야?’, ‘지금 태어났다면 시도 때도 없이 셀카 찍고, sns에서 활발히 활동했겠군’이었습니다. 너무도 자신 있는 그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그 때의 사진기로 다양한 셀카를 남겼습니다. 또 자신의 잘생긴 외모를 자화상으로도 많이 그렸습니다. 특히 그의 자화상을 보면 극사실주의처럼 사진과 똑같이 묘사한 것이 아닌 선으로 쓱쓱 그린 것 같은데도 사진보다도 그를 더 생생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에곤 쉴레.
그 짧은 생애에도 역시 천재답게 약 2천 점의 드로잉과 2백여 점이 넘는 유화 작품을 남겼다고 합니다. 역사에서는 만약이 있을 수 없다지만 쉴레의 너무 이른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아쉽고 안타까워서 ‘만약에~’라고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에 쉴레가 다른 화가들처럼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과연 어떤 작품들을 그렸을까요?…’

(전 연령층이 보는 잡지라 쉴레의 야한 그림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설마 이 칼럼이 소개된 후에 인터넷 상에서 실시간 검색어에 쉴레가 상위에 오르는 것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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