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February 23,Friday

한주필 실버 칼럼 – 형통한 날에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 돌아보라

 

코로나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가 참으로 참혹합니다. 코로나의 터널에 빠져 있을 때는 모든 욕망을 누르고, 조신하게 인내하며 세월이 지나가기만 기다렸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성경 말씀을 되뇌이며 말입니다, 결국 말씀대로 코로나는 길고 지루한 시간을 앗아가기는 했지만, 결국 그 자리를 다시 우리 손에 돌려주었습니다. 기나긴 코로나의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만 해도 이제는 살만하겠다며 깊은 안도의 숨을 쉬었지만, 세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긴 세월 꼼짝없이 지낸 대가를 이제 지불해야 한다고 청구서가 날아옵니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비명이 새어 나옵니다. 코로나로 인해 특혜를 받은 산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듣습니다. 특히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섬유산업은 그 상황이 심각합니다. 전체 시장이 잠식되며 주문은 축소했는데 코로나 기간 사라진 직원을 충당하지 못해 그나마 고양이 밥처럼 들어오는 오더도 소화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실로 절박하게 들립니다.

코로나로 장기간 활동하지 못한 흔적이 이제야 드러나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그런 와중에 코로나 기간에 아예 사업을 정리하고 일선에서 물러나 잘 준비된 은퇴 생활을 즐기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참 현명한 친구들입니다. 요즘 아이들 말대로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부럽긴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부러우면 진다는 마음도 들지 않습니다. 특별히 기를 세우며 버둥대는 시절은 지난 모양입니다. 친구의 삶이 부럽다고 그 삶을 내가 살 수는 없는 일이라는 걸 아는 나이가 된 것입니다. 단지 저에게는 아직 형통한 날이 오지 않은가 보다 생각합니다. 오히려 아직도 목을 매고 일을 해야 살 수 있다는 점은 형통하다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행복한 삶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하며 몸단장을 해야 할 이유가 있다는 점은 이 나이에 축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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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희 회사도 코로나의 풍파를 비껴가지는 못합니다. 장기간 봉쇄로 반 토막 난 교민사회의 모습과 그 교민사회와 운명을 같이 하는 교민잡지는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습니다. 그래도 아직 살아 있으니 아침마다 침대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이유가 있다는 것이 어디야 하며 불편한 마음을 달래보지만, 올려다 본 하늘엔 뿌연 구름만 가득합니다.

지나온 삶에서 이리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철이 들고 사업을 시작한 이래 가장 곤고한 날이 온 듯합니다. 밤잠을 설쳐냅니다. 하필이면 말년에 경험하지 못한 시련을 내리시나 하며 야속한 마음에 볼멘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도둑이 들려면 개도 안 짖는다고, 안 되는 시절에는 모든 것이 꼬입니다. 시장도 나쁜데 시대의 트랜드마저 우리 편이 아닙니다. 시간은 달려가는데 손발이 묶인 기분입니다.

비상대책회의를 하며 직원들의 의견을 들었는데 마땅한 대안이 나오지 않습니다.

시대가 우리 편이 아니라는 사실만 다시 한번 확인되어 오히려 분위기만 우울해지고 맙니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성경입니다. 비록 얼치기 기독교 신자이긴 하지만 모태 신앙으로 시작한 인생이라 급할 때는 결국 하나님을 찾습니다.

‘형통한 날은 기뻐하고 곤고한 날은 돌아보라’는 말씀은 전도서 7장 14절 말씀입니다.

그간 형통했습니다. 베트남 최초의 교민잡지를 발간하고 20년이 되도록 발전을 거듭하며 하늘이 주신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형통한 날 기뻐하며 즐길 줄은 알았지만 곤고한 날에 대한 대비는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곤고한 날이 다가오자 그저 하나님을 원망만 합니다. 하긴 어떤 한 사람에 의한 잘못이 아닌데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만만한 게 바로 그분입니다. 그분이 다시 길을 열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런 곤고한 날을 맞아도 이를 통해 얻은 것이 있으리라 믿고 그분의 말씀대로 돌아봅니다.

코로나의 여파로 자연스럽게 회사 조직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갑작스런 세대교체가 미덥지 못한 탓에 아침마다 이른 시간에 직원과 매일 미팅을 합니다. 그동안 소원했던 직원들과의 대화가 활성화되었다는 점에 감사하고, 또한 직접 관리를 하며 실정을 파악하게 된 점도 감사할 일입니다. 직원들의 눈에 책임감이 담겨 있습니다. 자신들이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전사로서의 자세가 보입니다. 이 또한 감사할 일입니다.

물론 제 개인적으로도 느끼는 점이 많습니다. 어려운 시기가 되니 그간 맺은 인간관계의 깊이가 드러납니다. 사람들의 민낯을 본다는 점에서 그 고난에 감사할 일입니다. 사람에게 기대면 외로워진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지난 날을 돌아보고 자신이 얼마나 바보같았는지 자책하고 때늦은 후회를 해봅니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또 열심히 머리를 굴려봅니다. 언젠가 죽겠지만 오늘은 아닌 듯하니 뭔가 길을 찾아내야 합니다.

하긴 세상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린 날이 얼마나 있었나요. 늘 어렵고 힘들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왔는데 조금 더 무게가 더한다고 죽을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힘든 세월을 통해 새삼스럽게 깨닫는 일, 감사할 일이 생겨났다는 점도 축복의 하나라고 생각하며 목소리에 힘을 담아봅니다.

언젠가 다시 형통한 날이 다가와 기뻐할 일이 일어날 것을 믿고 자리를 털고 일어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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