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19,Friday

한주필 칼럼-아는 사이

젊은 시절, 3살 위의 형과 양복을 맞추러 간 일이 있었습니다. 

누구 양복인지, 왜 양복을 맞춰야 하는지 그 이유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는데 한가지 기억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양복점 주인이 형과 잘 아는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양복을 만들기 위해 그 양복점에 가서 몸 치수를 쟀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옷이 나오겠지요. 당시 양복은 아주 비싼 의복이고 대부분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니 행여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치수를 재고 형은 그 양복점 주인인 친구분과 몇 마디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고 양복점을 나왔습니다. 저는 좀 불안한 마음에 형, 잘 아는 친구인데 좀 특별히 잘해달라고 당부의 말이라도 한 번 하지 그랬어 하고 물었더니 형이 하는 말, “잘 아는 사이니 말을 안 하지. 아마 말 안 해도 잘 해줄 거야” 하며 웃습니다. 당시 저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잘 아는 사이인데 가격도 싸게 하고 뭔가 특혜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져 있었죠. 그런데 긴 세월을 살고 보니 나중에 깨닫는데, 잘 아는 사이는 특혜를 받는 것이 아니고, 배려를 해주는 관계라는 것을 말입니다.

흔히들 누군가 뭔가 구입을 하기 위해 어느 가게에 간다는 말을 들으면, 옆에 있던 사람이 아, 그 집 주인 내가 잘 아는데, 내 얘기하면 좀 깎아줄꺼야 하며 자기 이름을 팔아서 이익을 구하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잘 아는 분이라면 제 가격을 받도록 해드려야지, 자기 이름을 팔아서 잘 아는 분에게 손실을 가게 하는 게 옳은 일인가를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물론 구입자 역시 잘 아는 분이니 그분에게 유익이 돌아가는 것도 배려하는 일이긴 하지만 자기 얼굴을 내세우기 위해 아는 분에게 은근한 특혜를 요청하는 것은 잘 아는 사람에게 보일 자세는 아닌 듯합니다.  

예전에 빈증에 있는 어느 식당에 갔습니다. 잘 아는 분이 하시는 식당인데 그때가 아마 코로나 때로 기억하는데, 그 여파인지 손님이 없는 탓에 일정 기간을 두고 50% 할인 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장사가 안 되면 반값으로 음식을 팔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특별히 풍족하게 음식을 시키고 계산서가 나오는데 반값입니다. 종업원에게 제값을 다 받으라고 제값을 다 주었습니다. 종업원의 말을 듣고 주인장이 나오셔서 정색을 하며 안 된다고 반값만 받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 차례 밀당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값을 다 치렀는지 아니면 주인장의 고집으로 반값만 치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는 사이에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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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사를 20년 운영하다보니 쌓아온 인맥이 제법 됩니다. 

어느 날 그 많은 인맥 중에 후배 한 명이 연락합니다. 광고를 내겠다는데, 대폭 할인을 요구합니다. 잘 아는 사이니 그 정도 혜택은 줄만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인 모양입니다. 제 속마음에는 ‘잘 아는 사이면 좀 후하게 주면 안 되나, 꼭 특혜를 받아야 잘 아는 사이가 유지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웃으면서 거절했지만 속이 편치 않습니다. 평소에는 배포가 큰 인물로 알던 친구가 연을 앞세워 대뜸 특별 혜택을 요청하는 것은 그리 자랑스런 모습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아는 사이라고 무작정 특혜를 요구하는 것은 아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그런 일방적 인맥은 만남을 후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상대를 아는 만큼의 혜택을 요구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상대를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 사고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집사람이 SS 패션으로 불리는 사이공 스퀘어라는 유명 시장에 가끔 갑니다. 한가한 날 훌륭한 소일거리가 됩니다. 그곳에서 가격 흥정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라 합니다. 그런데 몇 번 가다 보니 상점 주인과도 얼굴을 익히고 서로 알게 됩니다. 그러면 가격 흥정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예전처럼 무작정 깎는게 아니라 서로 양애할 만큼만 적당히 조정해서 산다고 합니다. 상호 믿음이 생기는 관계가 됩니다. 하다못해 몇 번 작은 물건을 사고 팔아도 아는 사이가 되면 상호 믿음이 생기고 상대에 대한 입장을 고려하는 배려심이 생깁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베트남에서는 무조건 가격을 깎으려 듭니다. 시장이건, 길거리 노점이건 관계없이 그들이 부르는 가격은 거품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그 거품 좀 먹어도 되지 않나요? 길거리에서 손수레나 자전거에 과일을 싣고 파는 사람들의 처지보다는 아무래도 자신들의 상황이 좋지 않나요? 속는 셈 치고 부르는 대로 다 주면 어떨까요? 기껏해야 몇만 동인데 우리 주변의 불우이웃들에게 모르는 척 작은 호의를 보여주는 것도 이 사회를 정겹게 만드는 데 일조를 하리라 믿습니다. 불우이웃을 돕는 일은 매체에 거창하게 사진과 함께 실리는 거금을 제공하는 일만이 아닙니다. 길거리 행상에게 후하게 물건을 사주는 일도 우리 이웃을 돕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몇 번 그렇게 물건을 사고 얼굴을 익히게 되면 서로 아는 사이가 됩니다. 그렇게 아는 사이가 되면 더 이상 엉뚱한 가격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는 사이란 이렇게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해하지 않을 것이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도록 배려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자신의 특혜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인생 공부를 덜 한 분입니다. 

아는 사이를 내세워 자신의 인맥을 자랑하기 전에 그 믿음의 관계를 쌓기 위해 자신은 어떤 역할과 배려를 했는가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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