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y 21,Tuesday

한주필 칼럼-인생의 목표

최근 동남아시아에서는 격년제로 열리는 아세안 게임(SEA games)이라는 동남아시아 만의 올림픽 대회가 있습니다. 아세안블록에 들어간 11개국이 참가하는 대회인데 아세안에서는 가장 큰 스포츠 행사입니다. 이번에는 베트남의 옆 동네인 캄보디아에서 5월 5일부터 17일까지 열렸습니다. 아세안국가 11개국이 참가한 대회에서 베트남은 금메달을 무려 136개나 획득하여 종합우승의 영예를 누렸습니다. 3번째 종합 우승입니다. 태국이 2위를 했군요. 박항서 감독이 사임한 베트남 축구는 금메달을 딴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축구팀에게 패해 동메달에 그쳤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지난 2번의 대회에서 2연패를 기록하였었는데 박 감독이 빠지고 나니 바로 민 낯이 드러납니다.  

이 아세안 게임은 아세안 블록에서는 최고의 관심거리입니다. 그리고 이런 대회를 유치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최대의 행사 중에 하나입니다. 베트남은 이 SEA Games을 2003년과 2022년 개최했습니다.

2003년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SEA games을 개최했을 때를 기억합니다. 그 당시 베트남은 1986년 도이머이 정책으로 문호를 개방한지 17년이 지났지만 눈에 보이는 발전은 없었습니다. 물론 나라가 빈곤한 상태였으니 수치적으로는 발전을 이루었겠지 만, 일반인이 피부로 느낄 만큼의 변화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003년 SEA games을 치르는 순간 나라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사회 인프라의 대대적인 건설이 이루어지고 전력 사정이 좋아지면서 밤마다 펼치던 촛불 축제 역시 점차 뜸해집니다.

한국이 서울 올림픽을 치르고 난 후 눈에 띄는 발전을 보인 것과 같이 베트남 역시 2003년 아세안 게임을 치르면서 본격적으로 눈에 띄는 발전을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운동 경기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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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캄보디아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많은 이야기 거리가 만들어졌습니다. 유튜브에서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올라왔습니다.

5천 미터 여자 달리기 경기에서 캄보디아 대표 선수인 18살 소녀가 맨 마지막으로 결승선을 끊었는데 우승자와 기록 차이가 무려 2분 이상이 났습니다. 이미 다른 선수들은 다 결승선을 통과한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때마침 쏟아지는 엄청난 폭우 속에서 트랙을 달리며 마지막 결승선을 통과하는 그 소녀의 모습은 엄청난 화제를 불렀습니다. SNS를 통해 전 세계 누리꾼들에게 공개된 폭우 속을 달리는 그녀의 영상은 놀랄 만한 조회수를 기록하며 한순간에 그녀를 유명 인사로 만들었습니다.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는 그녀에게 만 달러의 하사금을 내리며 그녀의 투혼을 응원했습니다.

그녀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인생은 조금 빨리 갈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목표를 향해 간다면 언젠가 목표에 도달하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어른스럽게 말했습니다.

그 영상을 보면서 갑자기 부끄러워집니다.  빠르거나 늦거나 의 문제를 떠나 그렇게 늦어도, 그렇게 폭우가 쏟아져도 포기하지 못하고 달려야만 하는 생의 목표가 있었는가 하며 스스로를 물으며 일어나는 부끄러움입니다.

여러분은 목표가 있나요?

부끄럽지만 저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생의 목표는 없었던 듯합니다. 살아가는 중간마다 과정의 목표는 있었겠지요. 대학을 가야 하는 목표, 취직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목표, 자기 사업을 해야 한다는 목표 등 중간 정거장 같은 목표는 있었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도달해야 할 최종의 목표는 없었던 것이죠.

요즘 젊은이들에게 생의 목표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든 간에 그 답은 모두 돈을 버는 방법에 관한 직업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의사, 변호사, 공무원, 운동선수 등 남들보다 용이하게 돈을 많이 버는 직업 말입니다. 이는 인생의 목표를 명예로운 자리나 지위, 직업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한 후에 그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그 후에는 생의 목표가 사라집니다. 생의 목표가 바로 그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목표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지위나 자리가 아니라 역할과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의사가 목표가 아니라,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행위, 그 역할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사람들을 무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법조인이 되고, 국민의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공무원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올바른 목표 지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사업체를 꾸려 사회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기업인이나, 2세를 양육하고 가족을 보호하는 주부의 자리 역시 타인을 위한 역할이라는 면에서 생의 의미를 던져 줍니다.

그러고 보면 의미 있는 생의 역할은 모두 타인을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인가 봅니다.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활동을 하는 한, 산다는 것 자체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런 영향이 타인을 이롭게 하는가 아닌가 의 문제가 생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을 넓게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을 내세워 나라를 세운 단군 할아버지의 혜안에 새삼스럽게 고개가 숙여집니다.

결국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 타인을 돕는 일이 되고, 동시에 그런 일을 하면서 이번 생의 역할은 이것인가 보다 하는 느낌이 찾아온다면, 이 생에 주어진 목표는 이룬 것으로 봐도 될 듯합니다.

지금 열심히 살고 있다면, 특별히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합당한 근거를 찾은 듯, 편안한 일요일이 지나갑니다.

One comment

  1. You got it, Mr.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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