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ly 29,Thursday

제보자

대한민국을 뒤흔든 줄기세포 스캔들 제보자, 임순례 감독의 묵직함 돋보여

2005년 12월 터진, 소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스캔들은 국민들로서는 트라우마에 가까운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지식인이며 노력하는 과학자, 강력한 노벨상 후보자, 난치병의 구세주라 믿었던 이에 대한 기대는 통탄으로 바뀌었다. 임순례 감독의 ‘제보자’는 황우석 박사 사건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임 감독이 방점을 찍은 것은 하나의 은폐된 진실 앞에 놓인 수많은 사회적 압력의 층위와 그 층위를 돌파하려는 한 PD와 제보자의 양심의 무게다. 영화 속에서 제보자 심민호는 2중 3중의 고통에 빠져 있다. 연구소에서 같이 일하는 아내는 불치병에 걸린 딸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것임을 천명하고, 빚더미에 앉아 집도 처분할 태세다.

그런데도 심민호는 윤민철 PD에게 끝내 전화를 건다. 왜 그랬던 것일까? 사랑하는 딸 앞에 당당하게 서고 싶은 마음과 임상 실험을 할 10살 소년의 앞날이 끝내 걸려서라고 그는 인터뷰에서 밝힌다. 그러나 생명공학계의 영웅 이장환 교수의 대응 역시 만만치가 않다. 엄청난 로비력으로 관련 방송을 준비하는 윤 PD와 보도국장을 옥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장환 교수의 캐릭터 묘사와, 그를 둘러싼 국민들의 반응이다. 치졸한 악한이기보다 겉으로는 신중하고 원만한 지식인으로 보이는 이 교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좀처럼 예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장환 교수는 얼마 안되는 콘텐츠를 부풀리고 시스템으로 승부하는 기획적인 인간,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위선적인 지식인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를 믿고 따르는 국민은 자신의 집단적 믿음이 꺾이자, 일종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 휠체어를 탄 아이들, 언론사 편집인들까지 이 집단적 광기에 휘말린다. 침묵을 의미하는 X자 마스크를 쓰고, 촛불을 들고, 방송국 앞에서 취재를 철회하라는 반대 시위를 벌인다.

이 지점에서 임순례 감독은 관객에게 아프게 말을 건넨다. ‘우리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 ‘가만있으라’는 지시가 주는 상징성.

윤민철 PD는 이 광경을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진실을 알려주면 그 진실이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보자는 결코 선정적이지 않다. 상업적인 포석과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는 시원한 한 방도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익히 아는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을 넉넉하게 포용하는 편이다. 그것이 임순례 감독의 세계관이자 연출 방식이기도 하다. 뭔가를 예리하게 주장하기보다 둔중하고 느리지만 언젠가는 드러나는 삶의 단면을 서서히 파헤치는 것. 전작인 ‘남쪽으로 튀어’의 익지 않은 유머감각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그리고 ‘제보자’ 쪽의 묵직함이 더 임순례 감독의 전공답다. 결국 인간의 체세포에서 복제된 줄기세포는 단 한 개도 없었다. 복제동물 연구도 암에 걸려 시들어 가는 불완전한 생명체를 이 땅에 탄생시켰을 뿐이었다.

생명과 자연의 섭리를 무리하게 따라잡으려다 결국 추락해 간 한 과학자의 궤적은 태양에 너무 다가가 날개가 다 타버린 이카로스의 신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세월호 사건으로 수많은 질문들을 맞이해야 하는 지금 이 순간. 과연 누가 이 질주하는 이카로스를 또다시 땅으로 불러들일 것인가. 결코 과거의 것이 될 수 없는 이 화두는 여전히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제보자

감 독 : 임순례
출 연 : 박해일, 유연석, 이경영
작성자 : 심영섭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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