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6,Friday

클레이 샘의 영어 정복기. 영어로 생각하라는 가르침에대한 두번째 오해

“번역 금지”

한국인이 영어를 습득하고 사용하는 데 소위 ‘콩글리시’라고 부르는 ‘한국식 영어’를 극복하고 영어를 영어답게 배우고 사용하는 원칙을 소개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공부하면서 국제회의통역사(동시통역사)가 되기까지, 그리고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과 수 년간의 강의 현장에서 경험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한국인이 영어를 마스터하는데 효과적인 원칙과 영어 사용법을 나누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에게 당돌한 질문 한 가지 드리고자 합니다. 당신은 영어로 말하거나 글을 써야 할 때 의식적으로 우리말의 스위치를 꺼버리고 영어의 스위치만 켜서 영어를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가능한 사람을 바로 이중언어 bilingual 인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애당초 영어에 대한 고민을 하지도 않을테고, 이런 칼럼을 읽는 일이 큰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만 자라고 교육받은 성인이라면 한 가지 언어는 끄고 다른 언어만 켜놓고 언어 전달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동시통역을 하는 필자도 영어를 할 때는 우리말을 머리 속에서 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합니다. 아니 우리말을 귀로 듣고 영어로 뱉어내야 하는 통역사라면 더욱더 그 ‘번역’의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겠지요. 단지 프로 통번역사들은 우리말에서 영어로 옮기는 과정을 엄청나게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빠른 시간 안에 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에게는 “저 사람은 번역하지 않는다” 혹은 “저 사람은 영어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라는 인상을 줄 뿐입니다.

영어로 말하거나 글을 쓸 때 우리말에서 영어로 ‘번역’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닐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영어를 듣거나 읽을 때 영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번역’하는 자체가 잘못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영어 고수들이 “번역하지 마라”는 주문을 하는 이유는 우리말과 영어의 껍데기 “말”을 일대일 대응 시키다 보면 결과물이 ‘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즉 “번역하지 마라”는 주문을 좀 더 정확히 하자면 “번역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아예 하지 마라”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혹자는 그래서 ‘번역’이라는 말과 ‘해석’이라는 말을 구분해서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번역이든 해석이든 어느 한쪽 언어의 전원을 완전히 꺼놓고 다른 언어의 전원만 켠 채로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이중언어인 bilingual이 아닌 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말과 영어 사이에서 ‘번역’이든 ‘해석’이든 ‘일대일 대응’을 시키려 할 때 겉으로 드러나는 ‘말’끼리 대응을 시키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수들이 경고하는 것은 바로 그런 ‘말’ 사이의 일대일 대응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말과 영어 사이에서 대응을 시키려면 겉 껍데기인 ‘말’이 아니라 그 말이 지니는 ‘의미’ 즉 속 뜻을 대응시켜야 올바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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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필자와 약 5년 간 함께 일했던 한 영국인 강사가 얘기해 준 실화입니다. 이 친구는 (우리 식의 ‘친구’라고 하기는 어색할 정도로 나이가 많은 사람인데) 1980년대 초반 처음 한국에 와서 평생의 인연을 만나 그 당시에는 흔치 않은 국제 결혼을 하였답니다. 당시 벽안의 사위를 맞게 된 한국인 장모님이 친척들을 모아놓고 사위를 위한 잔칫상을 준비하셨다고 합니다. 처갓집을 처음 방문하는 누구나 그렇듯 잔뜩 긴장해서 장모님을 처음으로 찾아 뵙게 된 이 친구에게 장모님이 하신 말씀.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들게나.”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영국인 사위를 위해서 옆에 계시던 한 친척 분이 친절하게 통역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There’s not much I’ve prepared, but eat a lot.”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들라”는 우리 말을 껍데기만 영어로 옮기면 이런 재앙과도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리고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세요”라는 말을 영어로 할 때는 그저 “Help yourself, please.”하면 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말을 옮기지 말고 의미를 옮겨라”라는 원칙을 기억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 바로 “번역 금지”라는 가르침의 진정한 취지입니다.

“우리말과 영어 사이에서 번역하지 말라”는 가르침 때문에 영어를 할 때 우리말이 떠오른다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말을 따라가지 말고 의미를 옮겨라”는 원칙만 기억하면 됩니다.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세요”라는 말은 “Help yourself.”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다소 진지하고 복잡한 내용을 다루게 되면 그 원칙을 잊고 ‘말’을 따라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 모릅니다.

작성자 : 이성연 원장(팀 스피리트 원장)
팀스 2.0 영어학원 대표원장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 졸업
헬싱키경제경영대학교 경영학석사
(전) 한성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겸임교수 및 시간강사
(전) 산업정책연구원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교육부문 이사
(전) 한국경제신문사 글로벌커뮤니케이터 과정 주임교수
(전) 한국리더십센터 성공을 도와주는 영어 과정 주임강사
(전) 삼성 SDI 전속 통번역사
(전) SK TELECOM 전속 통번역사
종로/대치동/삼성동/역삼동 영어학원 강사경력 총 10여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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