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y 3,Friday

한주필 칼럼-가을

한국의 가을은 늘 가슴을 울렁이게 만듭니다.

특히 장시간 외국에서 생활하며 오랫동안 한국의 가을 하늘을 만나지 못한 이방인이 한국에 돌아오면 더욱 그렇습니다.

의도하지 않게 고국의 가을 하늘을 만났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피할 수 없는 자연의 노화를 확인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잘 준비되어 있다는 한국의 의료시설을 찾았습니다.

역시 한국은 뽐낼만한 의료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훌륭하게 완비된 의료보험 체제로 금전적인 문제도 염려가 안되고 의료진의 실력도 의심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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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탈이 생긴 이후 베트남에서 이런 저런 진료를 받았지만 의사소통 문제도 그렇고, 요구하는 치료 수준도 이해가 되지 않아 아예 작정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모든 것이 감사하게도 치료도 잘 받고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국의 가을을 만나는 호사를 누립니다.

한국의 가을은 참으로 특별합니다. 천상의 계절이 이런 모습이려니 합니다. 하지만 가을이라는 계절은 정서적으로 묘한 안정과 갈등을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만물이 다 그렇긴하지만 가을은 더욱 두드러진 양면성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청명한 가을하늘이 전해주는 남성의 기상이 있는가 하면, 가녀린 여심을 자극하는 가을비와 낙엽의 슬픈 노래가 저변에 깔려있습니다. 오곡백과를 앞에 두고 온가족이 기뻐하는 하늘의 축복이 있는가 하면 가을바람에 날리는 낙엽에 담긴 세월의 그리움도 있습니다.

이런 詩를 아시나요?

가을바람에

 

오늘 아침 가을바람에 

꽃잎이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 

 

차창바람 서늘해

가을인가 했더니 그리움이더라

 

그리움 이 녀석

와락 안았더니 눈물이더라

 

세월안고 

그리움의 눈물 흘렸더니

아…, 

빛났던 사랑이더라. 

 

누구의 작품인지 밝혀지지 않는데, 모르긴 해도 중장년 남성 시인이 분명합니다. 가슴이 촉촉해지는 어른의 싯귀입니다.

같은 가을시지만 여성의 감성을 드러내는 詩가 있지요.

 

가을 편지 1

                                                 이해인 / 수녀, 시인

 

하늘 향한 그리움에

 

눈이 맑아지고

 

사람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

 

순하고도 단호한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용서하며

 

산길을 걷다 보면

 

툭, 하고 떨어지는

 

조그만 도토리 하나

 

내 안에 조심스레 익어가는

 

 참회의 기도를 닮았네 

 

이런 언어가 탄생시키는 마음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하늘 향한 그리움에 눈이 맑아지고, 사람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 

오랜만에 한국의 가을을 만나 가을시를 찾아보고 음악도 들어봅니다. 몸은 성치않지만 마음은 풍성해집니다. 베트남에서 느끼지 못하던 계절의 변화를 통해 마음의 치유가 되는 듯합니다.  한국에 오기를 잘했다 봅니다. 이런 가을을 가진 한민족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랜만에 찾은 고국의 모습에 취해 가을시를 올리긴 했는데, 이글을 읽으시는 독자들의 환경과는 전혀 다른 입장이라 민망하기도 합니다.  그저 이런 시를 통해 우리가 기억하는 고국의 가을을 잠시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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