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April 27,Saturday

나의 화가 II. 로트레크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화가를 소개하는 ‘나의 화가 시리즈’ 중 두 번째 칼럼입니다. ‘나의 화가’시리즈의 첫 번째 주인공인 벨라스케스는 그의 한 작품(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1656년)에 제가 푹 빠져버려서 칼럼의 주인공이 되었다면 오늘의 주인공인 이 화가에게 저는 한 작품보다는 거의 모든 작품에 풍덩 빠져버렸답니다. 그림체, 색감, 구도 따질 것 없이 다 제 마음을 온통 빼앗아버린 오늘 칼럼의 주인공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입니다. 그럼 이렇게 제가 푹 빠져버린 이 화가 ‘로트레크’ 의 그림들을 먼저 살펴 볼까요?

이 그림의 배경이 어디인지 짐작이 가시나요? 사람들이 술을 먹고, 춤을 추고 있죠? 그 시대 파리 몽마르트르의 번화가에 자리한 유명한 공연장인 ‘물랭루주(붉은 풍차라는 뜻)’ 입니다. 물랭루주는 동명의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하죠? 그림을 보면 조금은 흥겨운 음악과 춤이 있는 공연장의 분위기와 왁자지껄하게 술을 마시며 놀고 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춤추는 사람들은 정지된 그림인데도 불구하고 마법이라도 쓴 것처럼 그림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역시 직접보고 그 자리에서 그린 그림은 이렇게 생동감을 담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정지하지 않고 죽지 않는 그런 살아있는 느낌을 주곤 합니다. 그래서 사진이 아닌 실제로 대상을 보고 그리는 그림은 그리기는 어렵지만 그 때의 느낌을 생생히 담을 수 있기에 더 좋은 작품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림들 중간에 ‘로트레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인지 찾으셨나요? 힌트를 드리자면 보통 사람들보다 키가 많이 작은 남자를 찾아 보세요. 그 사람이 ‘로트레크’ 입니다. ‘로트레크’는 유명한 명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릴 적부터 몸이 허약했고, 어린 시절 사고로 양쪽 다리를 골절한 이후로 키가 152cm 밖에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귀족들처럼 승마나 사냥을 즐길 수 없었던 ‘로트레크’는 교양과 취미로 배웠던 그림에 몰두하게 됩니다.

어린 ‘로트레크’가 16세에 그린 자화상을 보면 하체는 감추어져 있고, 보통 평범한 체구를 한 사람으로 느껴지게 그려져 있습니다.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우연에 지나지 않아. 내 다리가 조금만 길었더라도 난 결코 그림 따윈 그리지 않았을거야.” 라는 그의 말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작은 키는 그에게 숨기고 싶은 큰 컴플렉스이자 인생을 바꾼 이유가 됩니다. 그 컴플렉스를 ‘로트레크’는 그림을 그리며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극복한 것 같습니다. 그 후의 그림 속에서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등장시키고 또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사진도 직접 남긴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몸이 좀 불편한 화가가 있으면 ‘제 2의 로트레크’ ‘어느 도시의 로트레크’ ‘어느 나라의 로트레크’ 라고 불리는 그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작품에서 로트레크의 화풍이 느껴진다면 ‘제 2의 로트레크’ 라고 불리는데 수긍이 가겠지만 작품성을 따지는 게 아니라 외모만 보고 그런 별칭을 붙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어느 화가가 갑자기 귀를 자른다고 해서 ‘제 2의 고흐’가 될 수 없고 콧수염을 기른다 해서 ‘제 2의 달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유로운 선, 절제되면서도 세련된 색채와 생동감이 듬뿍 담긴 그의 그림 외에도 제가 로트레크의 팬이 되어버린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그의 포스터들 때문입니다. 그냥 무언가를 알리기 위해 쓰였던 포스터들을 하나의 예술 포스터로 끌어 올렸기 때문에, ‘현대 포스터는 로트레크의 포스터로 시작되었다.’라는 말을 들을 만큼 그의 포스터들은 많은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좋아하는 가수의 포스터가 길거리에 붙어 있으면 창피함을 무릅쓰고라도 떼어와서 방에 붙여놓곤 했었습니다. 만약 제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그의 세련되고 새로운 포스터들도 무조건 떼어오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로트레크는 다른 화가들이 잘 그리지 않는 밤 문화를 그렸기에 ‘퇴폐 화가’라고 불리기도 했다지만, 밤 문화 하면 떠오르는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느낌보다는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화려함 뒤에 밀려오는 쓸쓸함과 인생의 덧없음이 느껴집니다. 웃으며 춤추고, 마시며 즐기고, 밤에는 ‘물랭루주’의 스타가 되지만 현실은 밑바닥 인생이라 무시당하며 생활의 무게를 힘겹게 지고 있는 고단한 여인들이 아무런 포장과 꾸밈 없이 날카로운 그의 선으로 그의 그림 속에 살아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그곳에서 그들을 사랑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편안함과 위안을 받았던 ‘로트레크’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자신의 신체적 컴플렉스 때문에 그림을 시작하고 몰두하고 또한 극복한 로트레크.
우리는 자신의 가장 큰 컴플렉스(약점)를 어떻게 다루고 있나요? 자신의 컴플렉스가 더 이상 자신의 발목을 잡는 약점이 되지 않게 노력한 로트레크처럼 비관하거나 숨지 말고 당당히 인정하고 발전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칼럼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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