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ly 26,Monday

낙조 를 보며

지난 해가 역사의 뒤안길로 넘어가고 새 아침 밝은 해가 뜬지 이미 보름이 지났다.
매년 연말이 되면 시간이 빠르다는 투정으로 보내고, 새 아침이 되면 그 남아 있는 투정의 잔재가 새 아침의 감동을 잡아 먹고 만다.
그러고 보니 나이가 적거나 많거나, 철이 들거나 아직 준비가 안되었거나, 언제나 그렇고 그런 새 아침을 맞이하며 관성적으로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가 버린 것 같은 시간의 속도에 대한 투정을 털어놓으며 또 새 아침을 맞는 것이 대부분이다. 정작 아직 남아있는 길고 긴 세월에 대한 감사는 고사하고 새 아침을 맞이하며 작심삼일이라도 좋으니 뭔가 결심도 하고 계획도 세우는 의례적인 과제조차 빼먹고 또 하루하루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래도 올해는 조금 달랐다.
지난 해 말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단체로 베트남을 찾으면서 우리 집안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에서 형제 자매,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와 자녀까지 포함한 대규모 가족이 이국에서 그것도 하롱베이 배 안에서 새 아침이 뜨는 것을 함께 바라보며, 시간에 대한 투정을 잊고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고맙고 귀한 시간을 보냈다.
이미 중년의 고개를 넘어선 가족들이 대부분이라 육체적으로 그리 자랑할 만한 체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가족이 함께 모여 보내는 특별한 날에는 모두 장난기 가득한 생기 넘치는 눈동자로 서로에게 사랑과 배려가 담긴 마음을 주고 받았다. 나이에 관계없이 눈동자에 장난기와 호기심이 가득 남아 있는 사람은 아직도 청춘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집안 사람들의 거침없는 장난과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보면서 에너지 넘치는 집안의 일원이 된 행운에 감사를 보낸다.
해가 저무는 날, 거대한 크루저의 갑판에 몇몇 가족과 같이 비스듬히 누워 저녁 노을이 지는 것을 함께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보는 맛도 괜찮았다. 붉은 저녁 노을에 물든 바닷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침 해와 같이 태어나 낙조와 함께 사라지는 우리의 삶의 한 과정을 보여주는 듯 하다. 또한 저 너른 바다를 모두 홍조로 물들이며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먼산을 넘어가는 저녁 노을의 경이로움은 한 해 동안 삶의 긴장 속에서 허덕대며 살던 지친 영혼에게 평화의 안식을 들려 준다.
단지 아쉬운 것은 이런 평화의 시간, 잠적의 시간, 깊은 사고의 순간이 그 역시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즐겁던 가족들과의 여행도, 바닷물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서쪽으로 넘어가는 저 낙조의 의연한 모습도 이제는 그저 추억으로 남게 된다는 사실이다.
아직은 추억을 남기기보다는 추억을 만들고 싶은 마음인데 시간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이제는 모든 일 하나 하나가 다시는 반복되기 힘든 사건으로 남아 내 삶의 추억이라는 앨범을 만들고 떠날 것이다. 그만큼 모든 일들이 앞으로는 다시는 재현되지 않을 일들로 남아 있기에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 하나 하나조차 더없이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엄청나게 사진을 찍어 댄다.
그리고 보니 이 사진들은 과연 무엇을 남겨서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 줄까 궁금하기도 하다.
우리의 얼굴은 어떻게 전해 질까?
사진 속의 그 얼굴에는 과연 나의 삶의 흔적이 어떻게 남아 있을는지 두렵기도 하다.
인간의 얼굴은 그 삶의 모습이자 생의 조각이다. 나이가 중년이 넘어선 얼굴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대체로 나이가 들고 자신의 모습에 만족을 구하지 못할 때 우리는 사진을 찍기를 반가워하지 않는다. 내 모습의 얼룩진 삶의 흔적이 남에게 드러날까 두려운 까닭이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서 그 모자란 삶을 충만하게 채우겠다는 생각은 안 든다.
어차피 지나간 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 젊은 시절 정해진 삶의 궤적 안에서 다시 허우적대고 싶지 않은 탓이다. 아침마다 학교를 가야하고, 밤늦도록 야자에 시달리며 상급학교에 진학을 하고, 국민의 의미인 군 복무를 마쳐야 하고, 사회에 나와 먹고 살기 위해 취직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또 자녀를 키워야 하는, 사회에서 정해진 삶의 치열한 궤적에 다시 들어가기가 싫다는 얘기다.
이제는 사회가 요구하는 웬만한 숙제는 마친 셈이다. 그 결과가 출중하고 아니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정도 꾸미고 아이도 다 컸고, 아직 아침에 일어나서 일하러 나갈 곳도 있고, 설사 일을 한다고 해도 그리 험악하고 힘겨운 일은 내 손을 떠난 지 오래다. 일을 하고 있으니 아직은 경제적으로 그리 우려할 형편이 아니다.

그리고 숙제를 마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세상의 이치도 조금은 깨닫는 지혜를 얻었다. 이제는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구분할 줄도 알고, 남의 의견에 부화뇌동하지도 않으며 쓸데 없는 일에 헛힘을 쓰지 않을 줄도 안다.
안될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를 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될 일은 어떻게 해도 돌아간다는 것도 안다.
수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 이제서야 그나마 보잘것없지만 작은 지혜를 얻은 꼴이다.

이 나이가 되면 비록 낙조를 보며 이 아름다운 모습이 이제는 그저 추억으로만 남는다는 사실이 서글프기는 하지만 그 아쉬움 자체가 바로 인생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게 되는 것도 나이 듦이 주는 지혜의 하나가 아니던가?

신이여, 그대가 내려 주신 지혜에 감사 드립니다.
이 남아 있는 삶을 또한 지켜주소서, 죽는 날까지 저를 시험하시고 저를 당신의 지혜로 채워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지혜로 만든 내 얼굴의 조각이 그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하소서.

한 해가 저무는 날,
깊은 낙조를 보며 잠시 정리되지 않는 사고를 굴려봤다.

작성자 : 한 영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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