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July 29,Thursday

강남 1970

1970년 욕망이 춤추는 땅

제2 한강교, 제3 한강교는 어디일까? 제 2한강교는 양화대교를 가리킨다. 제 3한강교는 혜은이의 노래로 유명한 그 다리, 한남대교다. 1969년 개통된 한남대교는 당시 영등포 동쪽이라 영동이라고 불렸던 강남지역을 강북과 연결하는 다리였다.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새로운 서울이 만들어질 곳, 바로 그곳 남서울 강남의 역사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영화 ‘강남 1970’은 격동의 1970년대를 다루고 있다. 강남 땅이 평당 50원에서 70원 사이에 거래되던 1960년대와는 완전히 다른 때였다. 강남 개발이 시작되면서 평당 가격은 5000원 선으로 뛴다. 가히 십 년 사이에 무려 100배나 땅값이 올랐다. 당시 자장면값이 100원, 담뱃값이 10원이었음을 생각하면 땅값 상승률이 얼마나 높았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유하 감독은 1970년대에 경험했던 ‘강남’ 체험을 자신의 핵 체험이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말죽거리 잔혹사’로 이미 한 번 영화화된 바 있다. 말죽거리로 불렸던 서초와 양재가 도시 개발과 함께 상전벽해 되던 시기, 급격한 개발로 몸살을 앓던 서울과 억압적이었던 학교를 교직해낸 것이다. ‘강남 1970’은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를 이은 거리 3부작의 완결편이다.

유하 감독의 특장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배우들을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섹시 가수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던 엄정화를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개성 있는 배우로 다듬었고, 발음 문제가 걸림돌이었던 권상우에게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대표작을 선사했다. ‘강남 1970’은 그런 점에서, 유하 감독에게 기대되는 여러 가지가 모두 들어 있는 작품이다.

우선은 감독의 핵 체험인 개발기 강남에 대한 이야기가 소재다. 제비, 넝마주이, 복부인 등의 소재를 서사적으로 녹여내 1970년대 사회사를 조형하고 있다. 두 번째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와 ‘상속자들’로 부잣집 아들 이미지로 자리 잡은 이민호가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모두는 지금껏, 유하 감독이 성공적으로 해냈던 부분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남 1970’은 유하 감독의 모든 것을 보여주긴 하지만 최고를 보여주지는 못한 작품이다. 욕망과 권력, 폭력이 뒤섞여 만들어낸 1970년대 강남의 상징성은 주목할 만하다. 짐작으로만 유추하고 있었던 도시개발계획의 정치적 음모를 픽션으로 재구성한 부분도 흥미롭다.

문제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한 편의 영화에 담아내려 했다는 점이다. 이는 배우 이민호에게 너무 다양하고 복잡한 연기를 요구한 것으로 구체화된다. 이민호는 고아로 자라난 가난한 넝마주이, 도와준 은인을 아버지로 여기는 의리 있는 건달, 의부의 딸에게 느끼는 연민을 모두 표현해야만 한다.

여기에 당시 최고위 권력층이 배후로 자리 잡은 도시개발계획의 흑역사가 전경화되고 그 음지를 활보했던 정치폭력배들의 암투까지 개입한다. 개연성은 있지만 이민호에게 지나치게 복잡하고 과하다. 1970년대는 분명, 지금 서울이 앓고 있는 여러 부작용들이 잉태된 시발점이다. 1000만 인구가 넘게 모여 살며 해마다 오르는 전월세로 몸살을 앓고 있는 2015년의 서울, 그 모태가 바로 영화 ‘강남 1970’에 담겨 있다.

2015년 지금, 대한민국을 말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시공간이 강남 1970년대임은 분명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영화가 사회학 보고서는 아니다.

감독 :유하
출연 :이민호, 김래원
글 :강유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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