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September 26,Sunday

분노의 정복

일전에 동료들과 사담을 나누다 평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이 오간 적이 있다. 필자의 경우는 단연 소크라테스였다. 그 이유가 뭐냐고? 미리 말하지만 그가 세계 4대 성인 가운데 한 사람 이어서도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이기 때문도 아니다. 또한 그가 후세에 길이 남을 명언 ‘네 자신을 알라’는 말을 했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사실 알고보면 너무나 단순한데, 그가 악처의 대명사 크산티페와 살면서도 평생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는 사실때문이다. 그에 대한 이런 일화가 전해져 온다.

어느 날 그가 친구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아내가 온갖 바가지를 긁는다. 남편이 모른 척하고 계속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자, 잠시 후 그녀는 항아리채 들고와 그의 머리 위에 들이 붓는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혼자도 아니고 친구와 함께 있는데 이런 일을 당했다면 십중팔구 무안을 준 아내 앞에서 반사적으로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게다. 하지만 그는 성을 내기는 커녕 태연하게 물기를 닦으며, “여보게 천둥이 치면 소나기가 내리는 법이라네!!”라고 말했고, 친구는 그 상황에서 이토록 초연한 소크라테스에게 감탄하며 그만 껄껄 웃고 만다. . .


한국인 특유의 불같은 성정이 있는 필자에게는 이런 기질이야 말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의 경지(?)라 할 만하다. 이 일화가 과연 진짜인지 아닌 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분노야 말로 다혈질 한국인이 반드시 정복(혹은 컨트롤)해야 하는 필연적 성정이다. 특히 연중 찌는 듯한 무더위속 베트남에 오신 분들, 심기일전, 제 2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해 보자고 머나 먼 이곳까지 왔지만 결국 분노조절(control of anger) 실패로 인해 스스로 인생을 파탄내버린 사람이 주변에 어디 한 둘인가. 그러므로 마음의 통제(control of mind)야말로 인생을 살아나가면서 죽을 때까지 수행해야 하는 지상과제요, 가정사, 인생사, 직장사의 승패를 판가름짓는 중차대한 대업(?)이자,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골든 키(golden key)다.

지피지기는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분노에 대해 마스터하려면 그 정체부터 밝히는 게 우선이다. 분노의 어원은 앵거(anger), 아프(히브리어), 오르게(그리스어)로, 괴로움, 급격히 불타오름, 보복, 증오 등의 복합적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한자어로는 奮怒, 즉 분(憤)하여 몹시 성을 낸다는 의미다. 물론,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은 인간의 본능이며, 이 중 분노 역시 인간이면 누구나 갖는 감정(오토메틱 시스템)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화나는 것’과 ‘화내는 것’은 별개라는 점이다. 즉, 전자는 인간의 본능적 감정이지만, 후자는 자칫 산불처럼 일순간에 주변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적절히 다스리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닌, 각 개인의 의무다.
특히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분노의 조절이야말로 선비가 갖추어야 할 고귀한 품성이기에 아무리 높은 신분일지라도 함부로 화를 내는 것은 매우 천한 행동으로 간주했다. 실제로 노할 노(怒)자는 心(마음 심)과 奴(종 노)가 합해진 말로, 노예(奴)의 마음(心;천하고 경박하다는 의미)을 의미한다. 그만큼 마음을 통제하고 절제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덕목이며, 얼마나 스스로의 감정을 잘 억제하는가가 인품의 척도가 된다. 이에 대해 지혜의 왕인 솔로몬도,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성벽이 무너진 것과 같다”는 등의 말로 그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분노는 개인에게나 집단 모두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이점에 대해 뇌의학자들도, “분노는 학습되고 중독되어 결국 뇌를 망가뜨린다. 또한 화내는 주기와 시간도 앞당겨지는 데다 전염성마저 강해 화를 표출할수록 상황이 좋아지기는 커녕 순식간에 폭언, 폭력, 파손, 상해,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며 그 피해가 겉잡을 수 없이 증폭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요사이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가정, 직장, 학교 등에서 분노조절이 잘 안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고성에 폭언, 기물파괴까지 이어지면 순식간에 그 집단에서 상종못할 XX, 성질 더러운 X으로 낙인찍혀 버린다. 당사자 역시 또 다시 그런 현상이 재발할까봐 늘 전전긍긍, 스트레스속에 방어적, 소극적으로 직장생활을 하게 되고, 그러다 다시 분노가 폭발함으로써 실직과 이직을 반복하게 된다. 또한 이런 상태에서는 판단능력도 현저히 떨어져 심지어 상대방의 공적인 지적도 과장, 확대해석하여 자신의 인격이 모욕당했다고 생각하는 등 불필요한 감정을 스스로 유발하게 된다. 하지만 이처럼 성인이 되어서도 분노가 조절되지 않는 주된 원인은 어떤 핑계를 대든 사실상 그 마음이 충분히 수양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설사 객관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상황일지라도 분노를 직접 겉으로 드러내는 것보다는 평온하고 침착하게 대처해야 마땅하다.

말이 쉽지 대안이 있느냐고? 후후, 일단 화를 내면 ‘자기만 손해’라는 걸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비지니스 협상이든 부부관계든 일단 먼저 화를 낸 쪽이 지는 법, 그러므로 분노가 치미는 상황에서는 잠시 5분간 쉬어가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사실 인생사 대부분이 알고보면 사소하다. 화가 났던 상황을 냉정하게 되짚어 본 후 자신의 의견을 매너있게 주장하자. 특히 자녀들에게, “매일 오락만 할 거면 X져!”라고 하지 말고 “한창 공부할 시기에 제대로 안 하니 걱정이 되는구나”라는 식으로 매사 말을 가려가며 해 보자.
또한 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 분노는 흔히 감정적으로 무시당했다고 느낄 때, 또는 상대방의 어리하고 악한 행동에 대해 반사적으로 일어나지만 사실 알고보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다 부족하고 허물이 많으니 웬만하면 서로 포용하고 용서할 줄 알아야한다. 어차피 더불어 사는 세상, 상대방이 있으므로 해서 내 삶이 얼마나 풍성하고 행복한지에 대해 먼저 깊이 생각해본다면 웬만한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 수 있지 않을까.

반대로 상대방이 내게 화를 낸다 해도 그 즉시 맞받아 치지 말고 그가 화를 내는 원인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자. 온유한 태도로 자신이 실수한 부분이 없는지 상대방에게 먼저 물으며, 차분한 어조로 대화를 시도해본다. 물론 ‘삼십육계 줄행랑’이라고 최악의 경우에는 그 즉시 자리를 피하는 것도 상책이다.

거두절미하고 같은 전철을 되풀이하는 것만큼 한심한 인생이 없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자신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가정과 직장과 사회, 심지어 국가까지도 파탄내고야 만다. 그러므로 교민사회의 화합과 하나됨을 논하시는 분들이여, 사심을 버리고 대의에 충성하자고 목청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먼저 제각기 사소한 일에도 ‘욱’ 하는 것부터 참아보시는 게 어떠신지.

올해는 만사 재치고 천사같은 우리 마눌님에게 수시로 짜증내는 필자의 이 못된 성질머리부터 뜯어고쳐야 할 듯 …

작성자 : 김 은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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