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May 27,Friday

베트남의 구정 일기

2015년 2월 14일 토요일

직원들은 10시부터 핫바지에 바람 새듯 한 명씩 한 명씩 회사에서 새 나갔다.

띤은 고객 집을 방문한다고 나갔고, 회계직원은 토요일인데도 세무서를 방문한다고 했고, 허우는 이미 휴무를 시작한 회사에 수리가 있다고 오토바이를 타고 휑하니 나가 버렸다. 출근한지 얼마 되지 않아 비워지기 시작하는 회사는 구정연휴가 끝날 때까지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회사를 일찍 비워 줘야겠다는 생각에 푸미흥으로 들어왔다.

푸미흥은 아직도 비울게 많은지 계속 비워지고 있었고 비워진 빈자리 때문에 가게의 문들은 잘 열리지 않았고, 도로는 막히지 않았고 오토바이가 토해내는 매연도 줄어들고 있었다. 태식이와 이사장은 오늘 2시 비행기로 한국에 간다고 했고, 맞은 편의 한국인 부부는 밤 비행기로 간다고 했다. 오늘 출근할 때 승강기에서 만난 밑에 층의 다문화 부부가 웃는 얼굴로 자기들은 오늘 하노이로 간다고 했고 나에게 언제 한국가냐고 물었을 때 나는 웃지 않고 ‘한국은 가지 않는다’라고 대답했지만, ‘그렇다고 비워지는 푸미흥에 그대로 있지도 않을 꺼다’ 란 말은 밖으로 내지 않았기에 그들 부부는 내가 연휴 내내 푸미흥에 있을 것이라 착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휴가 시작되는 첫 날 푸미흥은 밤새 비워지고 있었지만 나는 비워지는 푸미흥에 그대로 있었다.

2015년 2월 15일 일요일

연휴 때 한국에 가지 않는 동문을 위하여 급조한 골프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아침 일찍 롱탄으로 출발했다.
오늘 저녁에 고향으로 출발한다는 운전기사가 출근하여 나를 롱탄까지 태워 주기만하고 올 때는 다른 선배의 차를 얻어 타고 오기로 했다.
운전기사는 하노이 역에서 내려 동쪽으로 3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야 된다고 했고, 고향에는 부모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늙은 남동생이 있고, 아직 늙지 않은 여동생도 있다고 했지만, 나는 그의 여동생이 그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생각에 여동생에 대해서는 깊이 물어 보지는 않았다. 그의 가족들은 오늘 저녁에 호찌민을 비우는 대신 내일쯤에는 하노이에서 3시간쯤 떨어진 어느 구석의 조그만 시골 마을을 채우고 있을 것이다.

골프는 항상 그렇듯이 아주 많이 쳤고 아주 많이 친 만큼이나 돌아오는 롱탄 도로가 멀리 느껴졌지만 완전히 비워있는 호찌민의 공기가 맑아 있었기에 골프를 많이 친 만큼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2015년 2월 16일 월요일

어렵게 든 잠이 쉽게 깨버려 이불 속의 새벽이 너무 길었다. 한국에 가지 않는 선배와 아직 보지도 못한 그의 친구 2명과 함께 결정된 캄보디아와 아직 결정은 되지 않았지만 라오스와 태국을 가기로 했기에 길었던 새벽을 빠져 나와 ‘신까페’가 있는 거리로 나갔다.

새벽에 배낭만 메고 갈 것인가를 두고 심하게 고민했지만, 수영복과 화장품 그리고 긴 소매가 있는 옷가지를 챙기다 보니 가방이 두 개나 된 것에 계속 신경이 갔다.

목바이에 있는 국경을 통과하여 프놈펜으로 가는 버스는 예전에 한번 타보았기에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것 보다 더욱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은 캄보디아 비자가 내 여권의 얼마 남지도 않은 여백 란을 한 페이지나 차지 하기에, 가급적 도장이 있는 곳에 붙여 달라고 부탁했지만 보란 듯이 말간 곳에 붙여 놓았다. 여권의 여백이 한 장하고 반 페이지 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오는 내내 약이 올랐다.

도착한 프놈펜은 구정이 없었기에 그냥 월요일이었고 그냥 월요일 저녁에 도착한 남자 4명은 마중 온 내 친구와 남자 5명이 되어 저녁을 먹었고 저녁 먹을 때 소주를 먹었기에 호텔로 돌아와 각자의 방에서 여행의 첫날을 그냥 잤다. 캄보디아에 사는 친구가 저녁 술밥자리에서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관계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와 갔다’라고 말했을 때 ‘정부는 우호적일 수 있지만 국민은 적대적이 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2015년 2월 17일 화요일

선배의 친구로 온 두 분은 같이 올 때부터 안건 마다 싸움 같은 대화를 지속하고 있었지만, 아직 까지는 싸움까지는 가지 않았고, 싸움과 싸움이 아닌듯한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고 있었기에 이 여행이 지속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오늘부터 들기 시작했다.

가방을 3개나 들고 온 키가 작은 김사장이란 분이 외모적으로는 법의 보호가 있어야만 살 수 있을 듯한 이사장을 몰아 세우는 형국이었다. 이사장은 김사장의 공격을 무시하다가 한번쯤 응수를 하는 편이었지만 이 한 번의 응수가 또 다른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었기에 싸움 같은 대화는 여행 내내 아슬아슬하게 지속되었다. 선배는 이런 두 분의 전투를 ‘매일 저런다’란 말로 무시했고 실제로 상당히 일상적인 일로 치부하기에 나도 두 분의 아슬한 대화를 일상적으로 받아 들이기로 했다.

애초에 캐릭터가 너무나 강한 4명이 여행을 시도했다는 생각은 첫 식사에서 판정이 났다. 이사장이 ‘여행은 고생하며 그곳의 문화를 즐기는 것이기에 자전거를 빌려 현지 체험을 하며, 현지의 컨츄리 음식을 먹어야 한다’ 라고 했을 때 난 ‘고생을 왜 돈 주고 사서 하려 할까?’ 라고 생각했고 이사장은 현지의 고급식당에서 우아하게 현지식을 하자고 했을 때 선배와 나는 사실 한식밖에는 먹지 못하는 아주 철저한 애국자? 였기에 친구가 ‘프놈펜에는 현지 식을 먹을만한 고급 식당이 없다’ 고 말해 주기를 바랬다.

결국 친구 덕분에 각자의 개성은 뚜렷했지만 한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고 씨엠릿으로 가는 오후 비행기 안에서 화장실을 한번도 가지 않아도 되었다.

2015년 2월 18일 수요일

김사장이 3개의 가방 중 한 곳에 넣어 온 오이마스크 팩을 붙이고 잠이든 덕분인지, 아침식사 시간에 만난 4명의 얼굴에는 반짝반짝 광택이 나든 듯 했다. 우리는 광택이 나는 얼굴로 아침을 먹었지만 행선지를 돌멩이가 쌓여 있는 곳으로 정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4명 모두 앙코르왓을 3번이상은 갔다 왔다고 했고, 모두가 불가사의한 고대 유적을 ‘돌멩이 블록’ 정도로 표현하는 수준인지라 우리는 아침 일찍 광택나는 얼굴로 골프장으로 땅을 파러 갔고, 나는 오늘도 아주 많이 팠다.

돌아 올 때 ‘골프장 땅은 베트남에서도 팔 수도 있었는데 씨엠릿까지 와서 땅을 많이 팠다.’는 생각에 살짝 짜증도 났지만, 아직도 반짝거리는 얼굴의 광택 때문에 그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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