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October 11,Friday

소심필담(小心筆談)

지난 주 한국에서는 길고 긴 추석 연휴가 있었지요 맹숭맹숭한 기분으로 지낸 베트남의 생활에서는 조금은 이질적으로 들리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민족은 음력 8월 보름날을 추석 한가위라는 이름으로 일년 중 최고의 명절로 즐깁니다.

한가위라는 이름이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석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이라는 말이지요. 신라 중엽 이후 한자가 성행하게 된 뒤 중국인이 사용하던 중추와 월석이라는 말을 합해서 축약하여 추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라고도 합니다. 맘대로 의역을 한 것이지요. 아무튼 달이 유난히 밝은 명절이 바로 추석 한가위입니다.

그런데 한자어인 추석은 쉽게 의미가 와닿기는 한데, 한가위라는 우리말은 오히려 뜻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한가위는 무슨 말인가요?
한가위의 한은 크다는 말입니다. 한강이 큰 강이라는 뜻을 갖고 있듯이 한가위의 한 역시 크다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를 의미합니다. 말 그대로라면 큰 중심이라는 의미인데, 아마도 중국에서는 음력 팔월 보름날을 가을의 한 가운데라는 의미에서 중추라고 부르는데 그 한자어를 우리 말로 바꾸는 과정에서 가을 추가 빠진 채로 한가위가 된 듯합니다. 아무튼 우리가 부르는 한가위는 중추와 같이 가을 한가운데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번 가을 한가운데가 너무 더웠 다지요. 이제는 가을이라는 그 이름도 그저 예전의 흔적으로 남을 모양입니다. 가을이 오기 전에 겨울이 먼저 올까 두렵습니다.
겨울은 한민족에게는 고난을 시험하는 시기입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런 고난의 시기를 잘 준비한 것을 가족과 함께 축하하는 날이 바로 추석입니다. 추석이 한 민족에게 명절이 된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추수를 한다는 의미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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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익은 오곡백과를 추수하여 헛간에 정성껏 쌓아두고 추운 겨울을 준비한 농부는 한시름 덜어놓고 풍요한 마음을 달래 봅니다.
한여름 가뭄도 장마도 다 이기고 곧게 자란 양식으로 고운 송편 빗어놓고 객지에서 돌아올 자식들을 기다립니다.
이날은 온 가족이 모이는 날입니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지난 여름 잔인하던 뙤약볕을 이겨낸 세월을 대견해하며 서로를 위로합니다. 함께 자리하지 못하는 베트남의 아들 내외도 저 둥근 보름달을 같이 보리라 생각하며 그리움에 눈시울을 적십니다.
베트남의 낯선 하늘에도 한가위 보름달이 떠오릅니다. 일년 중 가장 긴 연휴를 즐기는 고국과는 달리 베트남의 추석은 아무렇지 않게 무심하게 넘어갑니다. 유난히도 밝은 보름달에 고향의 얼굴이 비칩니다.
휘영청 달빛에 내 마음을 싣고 고향으로 달려갑니다.

이렇게 베트남에서의 한가위가 지나갑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그래도 함께 볼 보름달이 있고 그리운 마음을 담아둘 달빛이 가까이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모든 우리 가족 친지들, 그리고 베트남에서 달빛으로 한가위를 보낸 모든 교민들에게 밝은 달님이 내려주는 찬란한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달빛기도 한가위에
– 이해인 –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더 환해지기를
모난 미움과 편견을 버리고
좀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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