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December 3,Tuesday

Biz Hot Issue-93조원의 야심! 베트남 남북고속철도

700억 달러 인프라 계획의 의미는?
고속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지정학적 경쟁

현재 베트남에서 철도는 여행객들의 최선의 선택이 아니다. 하노이에서 호찌민까지 이어지는 통일호 열차는 서울-부산 거리인 사이공-나짱 구간을 제외하면 지나치게 긴 이동시간으로 인해 실용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운행 시간도 제한적이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베트남인들은 비엣젯항공이 저가 항공 시대를 연 이후로는 고향 방문조차 항공이나 버스를 선호하는 실정이다. 선진국처럼 인프라가 잘 갖춰진 국가였다면 단거리는 철도가, 장거리는 항공이 담당하는 효율적인 교통 체계가 구축됐겠지 만, 베트남의 현 육상 인프라로는 그러한 역할 분담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러한 교통 체계의 혁신적 변화를 위해 베트남 정부가 내놓은 카드가 바로 시속 350킬로미터급 남북고속철도다. 본지는 이 야심 찬 프로젝트가 베트남 교통 인프라에 가져올 변화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베트남의 철도환경
베트남이 왜 남북고속철도에 큰 기대를 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베트남의 철도환경을 알아야 한다. 베트남 철도의 운영 및 안전에서는 엄격하고 선진적이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가 매우 열악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주요노선 현황
베트남 철도 네트워크의 대동맥인 하노이-호찌민 남북선은 전체 철도망 2,600km 중 1,726km를 차지한다. 대부분의 노선은 1,000mm 협궤로 건설되어 있는데, 이는 과거 한국의 수인선에서 사용하던 950mm보다는 약간 넓지만 일본 재래선의 1,067mm보다는 좁은 규격이다. 다만 중국과의 화물 운송을 고려해 북부 국경 지역은 표준궤(1,435mm)와 협궤가 병용되는 복합궤도로 설계되었다.
열악한 하드웨어
베트남 철도는 극도로 열악한 운영환경과 인프라가 특징이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베트남 전쟁에 이르는 기간 동안 남북선 전체가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1954년 제네바 협정으로 인한 분단으로 히엔르엉 다리를 경계로 철도마저 남북으로 갈라졌다. 1975년 통일 이후 1976년 12월 31일에 철도가 재 개통되었으나, 전쟁의 상흔과 지속적인 투자 부족으로 인해 기반 시설은 여전히 취약한 상태다.
현재 남북선은 뒤틀린 선로, 파손된 침목, 자갈이 유실되어 노반이 드러난 구간이 산재해 있다. 일부 구간은 개보수가 이뤄졌으나, 단선 운행으로 인해 동아시아 철도의 일반적인 수준인 시간당 10회 이상의 고밀도 운행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러한 열악한 인프라는 관광객들에게 이국적인 매력으로 비칠 수 있으나, 철도의 핵심 기능인 대량 수송 측면에서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호찌민-하노이 구간은 38시간이 소요되며, 하루 4편 운행에 그친다. 1편성당 항공기 4대 분량인 720명을 수송한다고 가정해도 일일 양방향 수송량은 6,400명에 불과하다. 다낭, 후에, 나짱, 하노이-싸파 노선을 모두 합쳐 2023년 연간 610만 명, 일일 1.6만 명을 수송했다. 이는 국내 항공이 연간 8,000만 명, 일일 21만 명을 수송하는 것과 비교하면 베트남 철도가 그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남북 고속철도 계획
팜 민 찐 총리 주도로 재개된 베트남 남북고속철도 프로젝트는 2024년 9월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승인을 받으며 중요한 정치적 고비를 넘었다. 약 700억 달러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2010년 당시 GDP의 2/3에 달하던 비용이 현재는 GDP의 16% 수준으로 낮아져 재정적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 베트남 정부는 총 사업비의 22%인 약 160억 달러를 정부 예산으로 충당할 계획이며, 이는 현재 진행 중인 롱탄 공항 프로젝트(190억 달러)와 유사한 재정 모델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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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 년간의 검토 과정에서 최고 시속 350km 철도가 250km 대비 12.5% 더 많은 승객을 수송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베트남 정부는 비용이 8~9% 더 소요되더라도, 장기적으로 250km에서 350km로의 속도 향상에 따른 추가 비용까지 고려하면 처음부터 350km급으로 건설하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노이-호찌민을 6시간 이내로 연결하는 이 고속철도는 일일 364,000명의 승객 수송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다만 2050년 예상 수요가 수송능력의 40%에 그친다는 점과 킬로미터당 4,560만 달러에 달하는 높은 건설비용은 우려 사항으로 지적된다.

총 67.34억 4000만 달러가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는 베트남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책사업이 될 전망이다.
그리고 열차운임은 베트남 국내 항공요금의 75% 수준으로 책정될 예정이다. 하노이 응옥호이에서 호찌민 투티엠 역을 포함해 총 23개의 여객역과 5개의 화물 대응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베트남 정부가 이 막대한 사업비를 해외 차관 없이 자체 조달하겠다는 계획이다. 국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로 국가 핵심 인프라의 해외 종속을 방지하고 재정 자립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다. 응웬단후이 교통부 차관은 ‘해외 차관은 조건이 따르므로, 기술 이전과 국내 기업 도급계약 등을 전제로 제한적으로만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최근 국회에서 고속철도 사업 계획 승인을 받았으며, 2025~2026년 타당성 조사를 거쳐 2027년 말 1단계 구간의 계약자 선정과 용지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어 2028~2029년 빈-다낭, 다낭-나짱 구간을 착공해 2035년 말까지 전 구간을 완공한다는 목표다.”


2024년 9월 최종 확정된 남북고속선 노선도

왜 남북고속철인가?
총연장 1,541km의 남북선은 베트남의 대동맥이지만,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설된 인프라를 거의 개량 없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어 대량 여객수송의 기능을 수행하기엔 역부족이다. 남북 고속도로마저 아직 건설 중이라 국내 장거리 이동은 고가의 항공편을 이용하거나, 열차나 버스로 하루 이상을 이동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하노이와 호찌민을 5~8시간 내로 연결하는 고속철도 구축 방안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다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왜 고속철도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영국처럼 기존 선로를 개량하는 방안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600억 달러 이상이 소요되는 고속철도 신설을 선택했다.

1. 도로와의 수송불균형 해소
베트남의 고속철도 건설 논의는 201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 2010년 첫 제안 당시에는 당시 국가 GDP의 절반에 달하는 560억 달러의 막대한 사업비로 인해 국회에서 부결되었으나, 202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논의가 이어져왔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시기의 조사에 따르면 철도 부문의 여객 및 화물 운송량이 1.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세계은행(WB)이 지적한 베트남의 물류 경쟁력 약화다. 도로 운송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국내 물류비용이 GDP의 약 21%에 달해, 이는 태국의 두 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이에 베트남은 고속철도 도입을 통해 여객 수송을 대폭 확대하고, 기존 재래선을 화물 운송에 집중 활용함으로써 육상 물류비 절감을 도모하고 있다.

2. 수송력 증가
고속철도의 강점은 빠른 속도와 시간 절감 뿐 아니라 놀라운 수송력에 있다. KTX-1 1편성은 좌석 955석에 입석까지 포함해 최대 1,000명을 수송할 수 있으며, KTX-산천은 단편성 기준 379명(A타입)에서 410명(B타입/SRT), 중련 시에는 최대 820명까지 수송이 가능하다.

이러한 수송력의 우위는 다른 교통수단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만석인 KTX가 20분 간격으로 운행할 때의 수송력을 맞추려면, 버스는 30초마다, 항공기는 3~4분마다 운행해야 한다. 실제로 주말 피크 시간대 경부선 KTX는 10분 간격으로 만석 운행되고 있으며, 일본 신칸센 E4계 전동차는 2편성 연결 시 1,634명이라는 놀라운 수송력을 보여준다. 세계 최대 여객기인 에어버스 A380도 전 좌석을 이코노미로 구성해도 최대 853명에 그쳐, KTX-1 한 편성의 수송력에 미치지 못한다.
이러한 고속철도의 장점은 베트남과 같이 국토가 종으로 긴 국가에서 더욱 빛을 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남북선 구간이 베트남 인구의 80%를 커버하고 있어, 현재 연간 600만 명 수준인 여객 수송능력을 연간 2,000만 명 이상으로 대폭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3. 지역균형발전
고속철도의 지역균형발전 효과는 국가별로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베트남과 같이 국토가 긴 국가에서는 그 긍정적 영향이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베트남은 전국 단위 이동의 선택지가 제한적이어서 지역별 교통·수송 수요의 불균형이 심각하며, 긴 이동 시간으로 인해 대도시조차 발전에 제약을 받고 있다. 특히 오토바이에 의존하는 통근은 거리상 최대 30km로 제한되고 날씨의 영향도 크게 받아, 도시 구조가 과도하게 밀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속철도는 이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함으로써 도시권역의 과도한 밀집을 완화하고 인구의 효율적 분산을 가능하게 한다. 일본과 중국의 사례를 보면, 고속철도 개통 이후 주요 도시의 통근권역이 확대되면서 대도시권 인구 분산 효과가 나타났다. 특히 중국과 대만에서는 고속철도역을 중심으로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대도시의 높은 주거비용 안정화에도 기여했다.
더불어 고속철도가 고속도로 등 다른 교통수단과 연계되면, 기존에 접근성이 떨어졌던 지역도 일일 방문권에 포함되어 관광 산업 발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달리고 있는 베트남 철도 화물열차의 모습

KTX 풀편성 모습, 수송량이 최대 1000명이다

일본 토호쿠/죠에츠신칸센에 투입된 E4계, 2022년 은퇴했으며, 2편성 전체를 연결하면 약 1630명의 승객 수송이 가능했다

 

지정학적 경쟁과 베트남의 전략적 선택
베트남의 남북고속철도 프로젝트를 둘러싼 국제 경쟁은 동아시아의 복잡한 지정학적 역학관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단순한 인프라 수주 경쟁을 넘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강대국들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고 있다.

중국의 공세적 접근
중국은 일대일로 이니셔티브(BRI)의 핵심 프로젝트로 베트남 고속철도 사업을 주목하고 있다. 이미 라오스-중국 철도를 성공적으로 완공하고,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고속철도 사업을 진행 중인 중국은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철도망 완성의 마지막 퍼즐로 보고 있다. 특히 2023년 완공된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의 성공적인 개통은 중국의 기술력과 사업 수행 능력을 입증하는 강력한 레퍼런스가 되었다.
중국은 킬로미터당 평균 2,100만 달러(시속 350km 기준)의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할 수 있으며, 이는 다른 경쟁국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다. 또한 이미 구축된 라오스-중국 철도와의 연계성을 강조하며, 베트남이 중국의 기술을 채택을 강력하게 유도하는 중이다.

일본의 전략적 대응
일본은 베트남의 전통적인 개발 파트너로서 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2010년 최초 제안 당시 유력했던 신칸센 기술의 우수성과 안전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질적 인프라 파트너십’을 통한 포괄적 협력을 제안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단순한 철도 건설을 넘어 베트남의 산업화와 기술 이전을 포함한 장기적 파트너십을 제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반둥 노선을 중국에 빼앗긴 경험이 있는 일본은, 베트남을 동남아시아에서의 입지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 이에 일본국제협력기구(JICA)를 통한 대규모 ODA 지원과 함께, 민간 기업들의 투자를 패키지로 제안하는 등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한국의 새로운 도전
한국은 우즈베키스탄 고속철도 수주 성공을 발판으로, 베트남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2024년 7월 윤석열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당시 고속철도 협력이 주요 의제로 다루어졌으며, 한국의 기술력과 운영 노하우를 강조하며 제3의 대안으로서 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베트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국가로서, 정치적 부담이 적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하고 있다. 또한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삼성, LG 등 한국 기업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산업 협력도 제안하고 있다.


한국 KTX이음

 

베트남의 전략적 딜레마
이러한 3국의 경쟁 속에서 베트남은 신중한 접근을 보이고 있다. 팜민찐 총리는 지난 1년간 중국을 세 차례 방문하여 철도 협력을 논의했고, 2023년 말 일본 방문에서는 ODA 지원을 요청했으며, 2024년 한국과도 고위급 회담을 통해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러나 베트남의 지형적 특성상 여러 국가의 기술을 혼용하기 어려워 단일 파트너 선정이 불가피하다. 이는 태국이 중국 기술(방콕-농카이 노선)과 일본 기술(방콕-치앙마이 노선)을 병행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상황이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 속에서 베트남의 최종 선택은 단순한 기술 및 비용의 문제를 넘어, 향후 수십 년간의 지역 질서와 세력 균형에 영향을 미칠 중대한 전략적 결정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93조원의 기회
2024년 남북고속철도 사업의 시작이 발표되면서 2045년까지 93조원의 기회가 베트남 기업만이 아니라 건설기업들에게도 잠재적으로 열리게 됐다. 베트남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본 프로젝트는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이내로 착공이 될 예정이다.
아울러 이와 별개로 장기적으로 메콩델타에 철도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도 장기적으로 실행될 예정이다. 고속철도는 단지 철도만이 아니다. 도시를 바꾸고, 사람들의 이동이 활성화 되면서 베트남 국토활용이 전면적으로 변할 예정이다.
먼 미래를 본다면 즉 100조원 이상의 기회가 건설기업들에게 열리는 것이다. 이에 베트남 철도 프로젝트 참여를 원하는 한국 기업은 해당 프로젝트 진행 동향에 관심을 기울이고 어떤 방식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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