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October 23,Tuesday

베트남의구정 일기2

2015년 2월 18일 수요일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내일 때문에 씨엠릿의 저녁자리에서는 소주잔이 돌아다닌 만큼이나 많은 의견들이 테이블 위를 돌아 다녔다. 여행 계획은 모든 국가를 두루 다녀본 최선배가 주도 했지만 여행이 지속되면서 가방을 3개나 들고 와서 우리 모두에게 오이마사지팩을 선사한 김사장 쪽으로 파워가 쏠리는 듯했다. 김사장은 너무 피곤한 관계로 곧바로 방콕으로 가는 코스를 고집 했고 선배는 처음 계획대로 라오스의 정적인 분위기를 느껴보고 방콕으로 가자고 했고. 나는 ‘이제 그만하고 호찌민으로 돌아갑시다’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듣지는 않은 것 같았다.

물론 이때도 법의 보호를 받아야 살아 갈 수 있을듯한 이사장은 ‘난 어떤 의견이라도 따를 꺼야’ 라고 말끝이 조금 올라가는 서울말 투를 한 번 사용한 후 술만 마셨다. 어떻게 결정된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라우스의 정적인 문화는 다음에 느끼는 것으로 되었고, 이번에도 비행기로 가느냐 버스로 가느냐로 이견이 있었지만, 나의 의견은 별로 반영되지 않을 것 같아 서울말을 사용하지 못하는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고, 이사장은 또 끝이 올라 가는 서울 말을 한 번하고 가만히 있었지만 버스로 국경을 넘는 것으로결정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씨엠릿 시장을 태국행 버스표를 구하기 위해 돌아 다녔다.

10시가 넘었지만 씨엠릿의 시장은 살아있었고 호찌민을 비운 모든 사람이 씨엠릿을 채운 듯 사람들은 잠자러 가지 않았다.
낮에 여전히 호찌민을 탈출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민호’가 “모든 식당이 문들 닫았어요. 단 한곳도 문을 열지 않았어요”라고 절규 섞인 목소리로 통화를 해올 때 그는 ‘단 한 곳도’ 를 두번이나 사용했고, 난 민호의 아파트에는 가스레인지는 있지만 가스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숟가락과 젓가락이 2세트나 있었지만 전기 밥통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여행기간 동안 신문의 외신란에 ‘베트남 구정 연휴기간 동안 교민 1명 아사’ 같은 기사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문닫은 호찌민을 탈출 해 있었고 문이 열여 있는 씨엠릿에서 밤 10시가 넘어 내일 아침 태국으로 가는 버스표를 구입하기 위해 돌아 다니고 있었다.

2015년 2월 19일 구정

난 가방을 두 개 들었고 선배는 가방을 한 개 밖에 가져 오지 않았기에 한 개만 들었고, 키가 작은 김사장님은 가방을 세 개나 가져 왔지만 다행히 법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이사장이 한 개를 들어주었기에 두 개만 들고 새벽 일찍 버스 타는 곳으로 나갔다.

리무진 같은 버스는 만족했지만 친절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를 것 같은 운전기사는 그의 애인 같은 여인을 출발지부터 조수석 조그만 의자에 앉혀 출발했기에 그가 졸음 운전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의 ‘밀애’ 때문에 핸들을 놓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기에 약간은 불안하기도 했다. 운전기사는 국경까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은 거리를 가면서 휴게소를 2번이나 들렀고 첫 번째 휴게소에서는 둘이서 어디를 갔다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차 안에서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고, 두 번째 휴게소에서는 그가 휴게소 식당에서 그의 애인과 직접 음식을 팔았기에 우리는 그가 운전기사인지, 휴게소식당 사장인지, 아니면 애인과 밀월여행을 즐기는 것인지를 두고 얘기 했지만 정작 운전기사는 우리의 말을 알아 듣지 못 한 것 같았다.

씨엠릿의 국경은 쓰레기속에 국경이 있었는지, 국경에 쓰레기가 있었는지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었지만 지저분한 방법으로 빨리 통과했다. 씨엠릿 국경에서 10걸음 정도 앞에 있는 태국의 국경은 쓰레기는 적었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씨엠릿의 쓰레기보다 많았기에 우리는 3시간정도 줄을 서 있어야 했고 앞사람이 등을 돌릴 때 마다 그의 배낭에 얼굴을 열 번 정도는 맞고서야 국경을 통과 할 수 있었기에, 나는 누가 버스 투어로 결정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앞사람의 배낭에 얼굴을 두 번 정도 맞았을 때 이미 태국은 다시는오지 않기로 결정했기에마음은 편했다. 우리는새벽 6시에 씨엠릿에 있는 어느 호텔을 출발하여 밤 10시쯤 방콕의 어느 허름한 숙소에 도착했다. 방콕에서의 첫 날은 버스 운전기사가 첫 번째 휴게소에서 그의 애인과 어디에 갔다 왔는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2015년 2월 20일 금요일

쉽게 든 잠이 어렵고 늦게 깨어 났기에 아침이 한참이나 무거웠다. 김사장은 아침 일찍 그가 아는 지인을 만나러 가버렸기에 4명의 남자가 출발한 여행은 3명의 남자가 되어 있었다. 3명의 남자는 왕궁 근처의 강가에서 출발하여 방콕시내의 도랑을 오고 가는 투어를 위해 작대기 같은 모터가 부착된 보트에 썬 크림을 깊숙하게 바르고 탔다. 얼마 전 베트남에서 구입한 선글라스도 끼고 있었기에 맞은편에서 오는 보트의 여자 손님들이 한 번쯤 쳐다 봐주기를 바랐고, 강한 햇빛에서 나오는 자외선은 썬 크림을 발랐기에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만 윗도리를 입지 않은 보트 기사가 작대기처럼 생긴 모터를 물 속 깊숙이 박고 속력을 올릴 때 마다 방콕의 오폐수가 같은 도랑물이 얼굴에 튀길 수도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 몇 번이나 튀겼기에 다음에 아들과 함께 방콕에 오는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로 시내 도랑을 다니는 보트투어는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은 했다.

오후에는 거리 마다 붙어 있는 왕을 보기 위해 왕궁으로 갔지만 왕이 정말 살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그것을 아는 가이드도 없었기에 3명의 남자는 왕궁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고, 우리끼리 왕이 절대로 살지 않을 것이란 결론을 내리고서야 왕궁 밖에서 사진만 한 판 찍고는 공항으로 향했다. 어렵게 구한 비행기표는 밤 늦게 우리를 떵성녘공항에 내려 주었고 호찌민공항은 벌써부터 채워지고 있었다. 가스통도 없고 전기 밥통도 없는 ‘민호’가 굶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전화로 확인하고서야 베트남 호찌민에 있는 어느 아파트에서 “집 나가면 개 고생이야, 아~ 내 집이 최고야” 란 말을 혼자 남기고 혼자 잠을 잤다.

2015년 2월 12일 토요일~ 22일 일요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지 않았기에 아침은 먹지 않았다. 점심은 열려있는 중국집에서 간짜장을 시켰지만 자장면이 배달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자장면을 먹었고, 쿠폰도 가져오지 않았지만 구정 연휴 기간이라 항의하지 않았다.

저녁에는 아파트 밑에 채워지기 시작하는 오토바이 소리를 듣고 있었고 민호가 전화가 왔지만 전화벨이 끝날 때까지 받지 않고 있다가 ‘그냥 잘 거다’란 카툭 만 보내고 다시 잤다.

일요일. 어제와 같음. 다만 삼선짬뽕을 시켰는데 정확하게 삼선짬봉이 배달되었고 쿠폰도 받았기에 기분이 좋았음. 그리고 난 2015년의 구정을 태국의 어떤 국경에서 앞 사람이 메고 있는 배낭에 얼굴을 맞으며 시작했기에 액땜은 이미 다했다고 결론을 내렸고, 내일부터는 직원들이 사무실을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2015년도의 금고 또한 가득 찰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구정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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