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October 11,Friday

유화(油畵)의 첫인상


학창 시절의 제 꿈은 ‘디자이너’ 였습니다.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것은 고등학생 때였지만 중학교 생활 기록부 속 장래희망 란에 한 해는 ‘의상 디자이너’ 또 다른 한 해에는 ‘시각 디자이너’ 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디자이너’ 의 꿈을 키우던 중 대학교 1학년 학부 시절에 잠깐 스쳐 배우게 된 ‘유화’ 에 푹 빠지게 되어 전공도 디자인에서 회화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처음 유화 수업을 들을 때에 생각이 납aaa니다. 신입생들 거의 다 처음으로 해보는 유화여서 그랬는지 테레핀유를 담아놓는 통의 뚜껑을 활짝 열어놓고 그린 덕분에 일주일 내내 몸살이 나서 앓아 누웠을 정도로 ‘유화’ 와의 첫 만남은 강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몸이 별로 안 좋은 날에는 유화 작업보다는 물을 쓰는 작업을 선호하고는 합니다.

2011년도부터 격주 토요일마다 한국 국제 학교 중고등학생 ‘유화부’ 강의를 하러 가고 있습니다. 유화 재료들이 복잡해서 첫 시간에는 재료 설명하는 시간을 길게 갖고는 합니다. 유화 물감, 유화 붓 등 유화에 관련된 재료 설명을 조용히 듣던 아이들이 테레핀유를 기름통에 붓는 순간 코를 막고 난리가 납니다. “으악, 냄새” “으악 머리 아파” 하고요. 또 신기하게도 “아~ 좋다.” 하고 테레핀유 냄새를 좋아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수채화와 달리 여러 번의 과정을 거쳐서 깨끗하게 붓을 세척하는 설명을 들을 때는 집중하는 눈들이 반짝입니다. 잘 씻어놓고도 익숙하지 않은 재료이기에 여러 번 확인해달라고 자꾸 붓을 들이미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처음에는 이랬던 학생들이 시간이 좀 지나서 익숙해지면 척척 자신만의 느낌이 살아 있는 ‘유화’ 를 그리게 됩니다.

한국에도 ‘유화’ 가 처음 들어오던 때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화’ 하면 ‘서양화’ 가 떠오르시죠? 유화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기름으로 갠 물감을 사용하여 그리는 서양화의 한 기법. 또는 그러한 기법으로 그린 작품’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국 근대 미술 시작과 함께 전통적 수묵화와 본질적으로 다른 서양화의 사회적 개념을 일반화시키게 되면서 ‘서양화’ 와 그에 대한 상대적 개념인 ‘동양화’ 라는 새 낱말이 등장하여 불리게 됩니다. 그 전까지는 전통적인 그림만 있었으니 ‘서양화’ ‘동양화’ 이렇게 나눌 필요가 없었겠죠?

이렇게 전통적인 그림만 있던 동양의 나라 한국에 서양에서 온 화가들이 와서 여행도 하고 그림도 그립니다. 1890년에 새비지-랜도어(Arnold H. Savage-Landor, 1865~1924) 라는 화가가 배를 타고 유화 물감, 수채화 물감과 캔버스 등의 서양 화구를 잔뜩 들고 와서 1년 동안 서울에 머물며 여러 계층과 풍경을 그렸다고 합니다. 서양 화법에 흥미를 느낀 고종과 민영환 등 중신들의 초상도 유화로 그렸다고 합니다. 근대 한국 미술사에서 유럽의 화가가 서울에 와서 임금과 중신의 모습을 직접 마주하고 그린 최초의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 그림들은 그가 직접 쓴 책에 수록된 흑백 사진으로나마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들은 1899년에 베이징을 거쳐 서울에 온 휴버트 보스(Hubert Vos, 1855 ~ 1935, 네덜란드 계 미국인 화가) 가 그린 ‘고종황제 초상‘ 과 ‘민상호 초상’ ‘서울 풍경’ 입니다. 이 그림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화가가 즐겁게 작업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원래 즐거운 성격을 가진 화가일 수도 있겠구요. 그리고 전통적인 재료로 그려져야 할 것 같은 한국의 황제와 전통적인 복장이 서양의 재료인 유화로 그려져 있는 것이 무엇보다 신선하고 재미있게 느껴져 마음에 듭니다. 동양화 같은 서양화라고 해야 할까요. 국내 최고의 화원만 그릴 수 있는 어진을 서양에서 온 화가에게 그리고 전통적인 앉은 자세도 아닌 서있는 자세로 파격적으로 그리게 한 고종 황제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휴버트 보스가 쓴 글 중에 그가 그림을 그릴 때 내시들이 이젤 뒤에서 엿보며 초상화에 그려진 그림이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했다고 합니다.

그림 그리는 내내 뒤에서 기웃기웃하며 수군수군거리는 것을 들으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요. 또 다른 그림들은 마르기 전에 빌려가서 이곳 저곳에 손자국을 묻혀 왔다고도 전해지는데, 처음 유화 그림을 접한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꾹꾹 찔러보는 것이 상상이 되어 웃음이 납니다. 신기해서 만졌다가 손에 끈적끈적하게 묻은 물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상상되기도 하구요. 지금도 유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면 사람들이 자꾸 만져보려 해서 제지하느라 진땀이 나는데 그 시기에 종이 위에만 그린 그림을 보다가 캔버스 위에 그린 그림이 얼마나 신기했을까요. 그리고 한글로 ‘휴벗 보스’ 라고 쓰여 있는 작품 위의 서명도 외국인이 쓴 것 처럼 어색하기는커녕 조화롭고 멋스럽게 느껴집니다. 한국인보다 한글을 더 잘 쓰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린 것일 수도 있겠지요.

제가 지금 ‘유화부’ 수업을 하는 곳은 10년 전에 제가 벽화도 그리고(비록 지금은 말끔히 페인트칠이 되어 없어졌지만..) 다양한 미술 활동을 하며 미술의 꿈을 키웠던 미술실입니다. 그 미술실에서 올해로 4년째 ‘유화부’ 를 맡아서 지도를 하다 보니 다양한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미술을 좋아하면서도 자신이 재능과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는 학생들을 보게 되었을 때, 그런 모습이 마치 영화나 드라마 속 회상 장면처럼 10년 전의 제 모습과 겹쳐보여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마음과 고민이 이해가 되어 안쓰럽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 부럽기도 합니다. ‘나도 중고등학생 때 유화를 접할 기회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구요. 이렇게 매력 많은 유화에 평소에 관심이 있으셨거나 그려 보고 싶으셨던 분들은 더 늦기 전에 시작하시길 바라며 오늘 칼럼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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