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Colum – 난처한 동양미술이야기 1편 인도

우리는 미술을 좋아합니다. 어렸을때는 누구나 화가입니다. 그리기가 놀이가 되는 시절이죠. 아이들의 작품은 스케치북을 넘어 방바닥과 안방의 벽으로까지 이동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추상주의 화가 잭슨 폴락의 ‘액션 페인팅’을 연상시키는 작품을 거실벽에 그린 미래의 예술가들이 등짝을 두드려 맞는 일은 거의 모든 가정에서 일어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손자 손녀가 그린 그림을 집안에 걸어두고 흐뭇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감상하십니다. 모든 예술가들의 첫번째 작품 전시관은 할머니 할아버지 집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미술시간에 좋은 점수를 받는 아이는 미술이 숙제처럼, 공부처럼 느껴져서 멀리하고, 미술시간에 좋지 않는 점수를 받는 아이는 남의 그림과 내 그림을 비교하며 왠지 그림을 그리는 일이 자신 없어집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작가에서 관객으로 미술을 좋아하는 방식이 변해갑니다. ‘르느와르’의 그림을 보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고, 고호의 격정적인 그림을 보며 ‘위로’를 받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거장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인 <천지창조>를 보며 그 웅장함에 압도당하고 신비로운 영적인 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젊은 연인들은 좋아하는 그림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죠.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보며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새로운 미술사조를 연 거장들의 작품을 보다가 신규 사업에 대한 영감과 용기를 얻기도 합니다. 거실벽에 걸린 좋은 그림은 집안의 품격을 높여주고, 미술품 경매는 부유층의 중요한 재테크 수단입니다. 이처럼 미술은 우리 가까이에서 많은 순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미술이라 얘기할 때 너무 당연스럽게도 서양 미술가와 서양 미술 양식을 떠올립니다. 피카소, 램브란트, 고야, 브뤼겔… 셀수 없이 많은 서양의 미술가들의 리스트에 비해 한국의 유명한 화가를 꼽으라 하면 김홍도, 신윤복 화백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화가, 인도의 유명한 화가, 베트남의 유명한 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우리의 입은 더욱 굳게 닫힙니다. 이 책의 작가 강희정 교수(서강대학교 동남아학)는 바로 이점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책을 썼습니다. 미술에 대한 우리의 취향이 서양미술에 많이 치우쳐 있다는 것 자체를 문제로 삼았다면 이 책은 그냥 국수주의적이고, 자기 만족적인 평범한 책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문제에 대한 비난보다는 우리가 그런 취향을 통해 놓치고 있는 동양미술이란 ‘보물’에 대해 깊이 있으면서 친절한 문체로 소개해 주는데 집중합니다. 간략히 동양 미술의 범위에 대한 설명한후에 동양미술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의 하나로 ‘불교’를 설정하고,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의 고대 미술을 소개합니다. 이후 마우리아 왕조(기원전 5세기), 쿠샨왕조(1세기) 등 불교를 국교로 삼고 국가 통합을 시도한 인도의 통일 왕조를 소개하고, 어떻게 불교가 국제화 과정을 통해 중앙아시아, 중국, 한국, 일본에 전해지고 그들의 정신세계 및 미술에 영향을 끼쳤는지 설명해 줍니다. 이렇게 요약해 설명드리니 좀 건조해 보이는 내용인데, 책 자체가 너무 예쁘게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진, 그림 등 풍부한 시각자료, 흥미로운 주제, 재미있는 문답식 구성으로 인해 너무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을수 있습니다. 저 멀리 인도의 미술이 어떻게 우리 나라까지 오게 되었는지, 흥미진진한 한편의 여행기처럼 느껴집니다. 당연히 우리나라나 중국의 문화라고 생각했던 ‘탑’이 원래는 인도에서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시던 장소로 세워졌다는 사실, 절에서 반드시 보게 되는 ‘불상’이 불교 초기 500년 기간에는 의도적으로 제작이 안되었다는 사실 등은 신선한 이야기였습니다. 책의 주제가 동양 미술, 그중에서도 인도 미술인데 책의 후반에는 탑과 불상 얘기만 계속하여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저자의 취지는 ‘동양 미술에서 불교의 위상에 대한 강조’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불교가 종교의 하나로서의 역할을 하며 사회적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기원후 삼국시대, 고려시대 1000년이 넘는 기간동안 불교는 국교로서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 및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서양 정신의 기본축이 기독교와 그리스로마 문명이라면, 동양 정신의 기본축은 불교와 유교, 도교(힌두교)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불국사, 석굴암, 다보탑, 석가탑 등 우리의 문화 유산을 한국의 고유 문화라고 생각하며 자랑스러우면서도 고독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는데, 이책을 읽고 나서 다시 바라보니, 그 뒤에 흐르는 국제적 문화 배경과 우리만의 개성을 찾는 새로운 시선이 생겼습니다.

‘파랑새 신드롬’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한채 새로운 이상만을 추구하는 현상을 말하죠. ‘찌르찌르와 미찌르 남매가 모험까지 떠나며 그토록 찾아헤맸던 파랑새라는 새가 사실은 자신의 집에서 기르던 새였더라’는 줄거리와 ‘행복은 바로 우리 가까운 곳에 있다’라는 교훈을 주는 ‘파랑새’라는 동화에서 그 유래를 찾는 현상입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행복을 찾아’ 물건을 샀다가 지름신이 떠나고 나면 집에 비슷한 물건이 이미 몇개씩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인터넷 쇼핑족이 있습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시발점은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잘 정리하고 활용하는데서 시작됩니다. 비슷한 생각으로 동양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고, 더 많이 알아간다면 우리가 좀 더 행복해 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미술에 관심있으신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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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 - 칼럼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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