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May 27,Friday

CHAPPIE

로봇 경찰의 이야기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폴 버호벤 감독의 역작 ‘로보캅’이 준 충격과 신선함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다. 목숨을 잃을 뻔한 경찰이 기계와 합체해 탄생한 로보캅은 발전된 미래를 확신하던 1980년대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인류가 달에 발을 딛고 난 20여년 후였던 당시엔, 곧 있으면 사이보그 경찰쯤은 당연히 등장하리라 여겼다.

그런 점에서 ‘채피’는 매우 독특한 영화다. 독특함은 이종 결합성에서 비롯된다. 가령 ‘채피’의 시간대는 가늠하기 어려운 가까운 미래다. 우선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 경찰력으로 동원된다는 점에서는 꽤나 미래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속에 묘사된 로봇의 모습이라든가 도시 모습은 과거인 1980년대 초반의 분위기에 더 가깝다.

두 번째 독특함도 바로 이 시공간에서 비롯되는데, 대부분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달리 ‘채피’의 배경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다. 시카고나 마이애미, 뉴욕을 벗어났다는 것 자체가 매우 다른 시각적 효과를 선사한다. 그들이 쓰는 남아공식 영어 역시 이질적이면서도 새롭다. ‘채피’는 일견 매우 평범한 할리우드 영화처럼 다가오지만, 뜯어보면 할리우드 스탠더드에서 벗어난 점이 더 많다. 이 독특함이야말로 1979년생의 젊은 감독 닐 블롬캠프가 지닌 힘의 근원이다. 그는 데뷔작인 ‘디스트릭트9’을 통해 낯설고도 매혹적인 SF 세계를 창조해냈다. 뻔한 영웅이 지구를 구하는 식의 공상과학영화가 아니라 존재와 기원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내는 그만의 방식을 고안해 냈기 때문이다.

‘채피’에도 그 도발성은 유효하다. ‘채피’는 ‘로보캅’ 같은 사이보그 영화의 질문에서 한발 더 나아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의 가능성까지 묻는다. 과학이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 과연 기호화될 수 있고 전송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로봇의 질문을 확장시켰다. 과연 인간다운 인간은 무엇이며 인간과 기계적 사고의 구분은 무엇인가를 B급 갱스터 랩의 운율로 표현해낸다. 그런 점에서 휴 잭맨의 캐릭터는 주목할 만하다. 대개의 영화 팬들에게 휴 잭맨은 착하고 다정한 인물로 기억된다. 그런데 ‘채피’에서 그는 음흉한 데다 폭력적이기까지 한 악역이다. 휴 잭맨은 자신의 연구 성과를 위해 ‘윤리’ 따위는 던져 버리는 이기적이며 광적인 개발자로 등장한다. 닐 블롬캠프는 휴 잭맨에 대한 잘 알려진 이미지를 전복함으로써 새로운 긴장감을 이끌어 낸다.

건들건들 갱스터의 걸음과 3류 속어를 배우는 로봇 채피는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로봇’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을 통해 인간 감성의 구조를 밝혀내려 하는 시도는 여전히 의미 있다. 과연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그리고 인간성의 핵심은 정신일까, 육체일까. SF영화의 가치는 얼마나 매끈하게 시각적 눈속임을 완성하느냐에 있지 않다. 결국 인간에 대한 질문, 그것이 바로 과학과 공상을 통해 닿아야 할 최종 영역이기 때문이다.

감독 : 닐 블롬캠프
출연 : 휴 잭맨, 샬토 코플리, 시고니 위버

글 : 강유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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