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September 26,Sunday

그녀와의 짧은 하룻밤

“언제 오노?” 늙어있는 여자의 목소리가 익숙하다. “낼 간다고 했는데?” 짧고 딱딱한 의문형 대답이다. 한국 간다고 그리고 모레쯤 갈 끄라고, 맑지 않은 국제전화로 전달했지만 벌써부터 삽작 거리를 서성이다 전화를 한다. 보통 서울에서 일을 보고 가기에 한국 도착 보다는 며칠 늦게 그녀에게 가게 된다. 그녀는 한국에 온 나만 기다리지만 난 그녀만 보러 한국에 온 것이 아니기에 여유가 생길 때 그녀의 집에 들린다. 그것도 대부분 짧은 하룻밤이다.

똥개가 한 마리 있지만 나를 보고 짖지 않는다.
지난번 그녀는, 그가 나를 알고 짖지 않는다고 똥개를 자랑했지만 난 그가 짖는 소리를 한번도 듣지 못했기에 귀찮아서 짖지 않는 것이라고 그녀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가 나를 보고도 나무로 만든 집에 누워 쳐다만 보기에 그가 반가움에 꼬리를 흔들었는지 흔들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4개월전에 왔을 때도 있었고, 이번에도 있기에 반가워서 머리를 만져 주었더니 ‘낑~낑’ 거리며 어리광을 부린다. 게으른 똥개의 어리광 소리를 듣고 그녀가 “작은 놈이가?” 하며 현관문을 연다.

지난번 왔을 때는 하루 종일 앞마당에서 기다렸는지 마당에서 봤는데, 이제는 하루 종일 기다릴 기력이 없어졌는지 방에서 나오신다. 곱고 하얀 피부가 세월이 지나간 만큼 늙어 있다. 선 굵은 주름이 깊숙하게 이마의 가로를 여러 개 지나갔다. 선 굵은 주름이 입술과 턱 사이의 세로를 여러 개가 지나 갔다.

세월 때문에 굽어진 것 같은 허리는 펴져 있지 않고, 다리 부근에 있는 신경통들은 그녀가 걷는 것을 불편하게 만든다. 내가 자라는 동안 그녀의 청춘은 시들어 갔다. 내가 야금야금 젊어지는 동안 그녀는 야금야금 늙어 갔기에, 내가 중년이 된 지금 그녀는 늙어 할머니가 되어 있다.
난 그녀의 젊음을 먹었고 그녀는 우리 형제에게 젊음과 청춘을 다 주었기에 그녀에게 젊음과 청춘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저녁을 먹는 내내 그녀는 그녀의 작은 아들에게서 한 번도 눈을 놓지 않는다. 밥을 뜨면 반찬을 올려 놓고, 밥을 넣으면 국을 밀어 놓는다.
“밥은 잘 챙겨 먹나?” “염려하지 마라, 세끼는 무조건 챙겨 묵는다”
지난번 왔을 때도 그녀는 똑같이 물었고 난 똑같이 대답한 기억이 난다.
“술 좀 작작 먹고” “엄마는~ 인자 술 안 묵는다” 이것도 4개월전에 한 말들이다. 그녀는 술 많이 드신 내 아버지의 부인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잔소리가 많으신 내 할머니의 며느리로 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어머니로 산 것을 가장 행복해 했고 지금도 그녀는 나의 어머니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듯하다.
그녀는 경북 고령군 고령읍 외 2동으로 아궁이에 군불을 때어 밥을 짓든 시절에, 아주 곱고 젊어서 내 아버지의 색시로 시집 왔다. 손자인 우리에게 그렇게 다정하고 자상한 할머니는 그녀의 며느리에게 만큼은 자상하지 않았다. 자상하지 않은 시어머니는 젊고 고아 있는 그녀를 군불 때는 아궁이 옆에서 수도 없이 울게 만들었다. 하지만 객지에서 공직 생활을 하는 그녀의 젊은 남편은 그녀가 젊었을 때 그의 곁에 있지 않았기에 그의 어머니가 주는 시집살이를 알지 못했고 그녀가 아궁이 옆에서 우는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넋두리를 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의 시집살이를 알지 못했던 그녀의 야속한 남편도 그녀에게 시집을 살리며 한 평생을 같이 했던 그녀의 시어머니도, 모두 집 맞은편 작은 산에 오래 전부터 누워 계시기에 그녀는 경북 고령군 고령읍 외 2동에 있는 집에서 짖지 않는 똥개와 함께 홀로 세월을 지내신다.

베트남에 살러 간다고 했을 때 삽작거리까지 따라 와서 하염없이 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먼데 가면, 내 죽으면 오겠나?” 그녀는 울면서 물었고 “엄마는~ 죽기는 와 죽노!” 난 울지 않고 대답했다. 그녀는 살아있는 체로 작은 새끼를 보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고 난 두려워하는 그녀를 걱정했지만 그냥 베트남으로 왔다.
그리고 4개월에 한번 정도 돌아가는 한국에서 자꾸만 늙어만 가는 그녀를 만난다.
“몸은 어떻노?” “게 안타, 걱정하지 마라” 그녀의 대답은 항상 4개월 전과 같지만 그녀 허리는 지난번 보다 더 굽은 것 같고 뽀얀 얼굴에는 세월이 지나가는 흔적들이 더 많이 쌓인 듯 하여 가슴이 무너짐을 느낀다.

그녀와의 짧은 하룻밤이 가고 아침부터 무심하게 짐을 챙긴다.
어차피 가야 하는 것을 아시기에 그녀는 이런 나를 잡지 않는다.
“언제 오노?” “얼마 안 있으면 또 올 끼다” 아직 가지도 않은 나에게 다음의 만남을 약속 받는다. 자동차 트렁크에 짐을 싣는 것을 보고, 깊숙한 눈에 눈물이 고인다. 작별의 품 안에 안긴 그녀의 몸집이 지난번 보다 작아진듯하여 마음이 시린 듯 아프다.
“가다가 산소 보고 가래이” “알겠다” 그녀에게 혹독하게 시집 살 이를 시키신 시어머니와 이를 지켜주지 않은 그녀의 남편 산소를 모두 보고 내려오는 것을 할머니가 되어 있는 그녀가 삽작거리에서 보고 있고, 똥개는 할 일 없이 그녀의 주위에서 흙 냄새를 맡으며 돌아 다닌다.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할 때쯤 그녀가 손을 들고 흔드는 모습이 멀리서 보인다. 동네 입구에 있는 커브를 돌 때는 그녀가 백미러 속에 들어와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신에게 간절히 기도 할 뿐입니다.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그리고 그 다음에도 그녀가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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