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May 23,Thursday

블랭킷 캣

베트남에서는 한국 책을 구해 읽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 베트남으로 오는 이에게 부탁해 책을 받아보거나 항공택배를 이용해 서점에서 직접 구매하거나 아니면 이북 회원 등록을 해 단말기로 내려 받아 읽어야 한다. 어느 방법도 평균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도 별로 책도 안 읽던 사람이 새삼 왜 그래 하고 핀잔을 준다면 별말 할 수 없지만 본시 물이 없는 곳에서 갈증이 나고 화장실이 없을 때 배가 아픈 법이다. 그런데 이런 독서 타령을 해도 막상 책을 손에 얻게 되면 다시 게을러지는 것은 또 어쩐 연고인지. 잠시 반짝 불꽃을 일으킨 독서열은 사라지고 책상 위의 책에는 먼지만 쌓여 가기 일쑤이다. 그런 내가 며칠 동안 책 한권을 붙들고 살았다. ‘블랭킷 캣’이라는 책 이야기이다.
이 책은 일본의 작가 시게마쓰 기요시가 쓴 동명 소설의 한국어판이다. 고양이를 대여해 준다는 상점을 매개로 해서 고양이를 빌려 간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담은 내용이다. 이 고양이들은 눈치가 있는 똑똑한 고양이들이다. 2박 3일의 일정으로 다른 이의 집에 가서 그 집 고양이 노릇을 수행하고 돌아온다. 그런데 어떻게 낯선 곳에서 지낼 수 있을까? 비밀은 고양이의 담요에 있다. 고양이들은 각자 자기만의 담요를 가지고 있다. 이 담요가 곁에 있는 한 그곳을 자신의 안식처로 인식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그래서 이런 고양이들을 담요 고양이, 블랭킷 캣이라고 부른다.
블랭킷 캣을 대여할 때는 주의사항이 있다. 첫째, 담요를 치우거나 바꾸면 안된다. 고양이 집에 넣어둔 담요 그대로여야 한다. 그래야 고양이가 안심하고 환경에 적응한다. 두 번째는 먹이를 바꿔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조건을 지키기로 서약한 사람들이 원하는 종류의 고양이를 빌릴 수 있다. 사람들은 키우던 고양이에 대한 추억으로, 아이들의 요청으로, 또는 환경을 바꿔 보기로 결심하며 각자의 고양이를 데려 간다. 담요가 들어있는 고양이 집과 더불어 말이다.
소설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은 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여자가 처한 각각의 상황과 문제들은 고양이로 인해 명료해진다. 사람은 고양이를 통해 자신을 투영하고 객관화한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무엇이 문제일까 자각하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 고양이들이 주인공으로 사람의 삶에 직접 개입하는 순간은 말썽을 부리거나 배가 고플 때 뿐이다. 그들은 무료해진 몸에 기지개를 켜면서 사람들의 삶의 어긋난 조각 위에 올라가 몸을 웅크린다. 이렇게 에피소드들은 사람의 삶이 고양이라는 이물로 말미암아 실체가 만들어 지면서 슬프기도 하지만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 다른 고양이가 책의 말미에 등장한다. 이미 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이 고양이는 ‘태비’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아메리칸 숏헤어 종이다. 그는 목소리를 듣는다. 목소리는 그에게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선조들의 개척자 본성을 일깨울 것을 충고한다. 그리고 기회는 갑자기 찾아왔다. 대여자의 부주의함이 틈을 준 사이 태비는 담요가 든 고양이집을 벗어난다. 두려움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채 담요를 바구니에 남겨둔 채로 길이 없는 길을 떠난다. 자유라는 생소하고 어색한 굴레를 쓴 그가 만난 것은 어머니를 찾아 길을 떠난 남매였다. 태비도 남매도 탈출자였고 방황하는 처지였다. 고양이는 처음으로 대여자가 아닌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애쓰기 시작한다. 남매와의 인연은 가족과의 재회로 짧게 끝이 난다. 하지만 고양이의 이야기는 그 때로부터 시작된다. 태비는 자유라는 이름의 새로운 환경과 악수하며 불안의 나무가 줄지어 있는 미래라는 어둠이 깔린 길을 향해 떠난다.
독립이나 자립, 혹은 도전이라는 명제가 주는 묘한 흥분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때때로 대가는 예상치를 넘어 혹독할 수 있다. 그래서 갈망하지만 참는다. 그것을 뭉뚱그려 불안감이라고 하자. 불안감의 실체는 예측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길이 없으면 불안하다. 그러기에 머리를 도리질 하며 담요를 끌어당긴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들었다. 베트남이라는 낯선 땅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왔던 과정에 길이 있었던가.
태비처럼 내 안에도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고양이집의 담요 위에서 느낀 안도감은 실제일까? 대여점과 대여된 집 사이를 오가던 삶이 규칙적이라 하여 미래가 안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맡고 있는 회사를 두고 볼 때, 우리는 이곳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일구어 낼 수 있을까? 낮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난립한 경쟁 속에서, 수익성을 걱정해야 하는 취약한 단가 구조 안에서 지속 가능해질 수 있을까? 태비와 같이 앞발을 모으고 귀를 쫑긋인 채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내 안의 무언가 내게 말했다.
아마 그럴 수 있을 거야. 네게 담요를 거두어 낼 용기가 있다면. 너에게 담요가 뭘까? 본사라는 배경, 그리고 주재원이란 신분. 이 안정된 조건이 정작 네 미래를 불안감으로 두렵게 만들고 있는지도 몰라. 익숙한 담요에 둘러싸여 그 냄새에 안심하고 지정된 사료를 먹으면 배탈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말이지. 하지만 다른 이를 위한 대여를 반복하다가 나이를 먹게 될 거야.
질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나도 성장하고 조직도 성장하고 그럼으로써 거기에 몸담은 모두가 성장할 수 있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태비가 내게 대답해 주었다.
그것은 본성을 다시 찾는 거야. 개척지에 처음 도착했을 때 코를 킁킁거리며 낯선 냄새를 맞고 주변을 불꽃 같은 눈으로 경계하던 너의 본성. 베트남에 올 것을 결정하기 위해 지샜던 불면의 날들 속에서 깨어 있던 날카로운 도전의 본성.
고양이 한 마리가 안주적이고 타인의지적으로 변해가며 회전의자에 어색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생각의 틈 위에 자리를 잡았다. 소설의 마지막은 남매가 새엄마가 만날 때 슬쩍 그들을 사이를 빠져나온 태비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달을 행해 묻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어땠나요?
나… 제대로 역할을 다했을까?
그리고 태비는 밤의 어둠을 향해 달린다.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메리칸 숏헤어의 본성으로.
그래. 우리는 모두 이 곳 베트남에서 길이 없는 길을 간다. 길을 만들면서 간다. 이 곳으로 온 이유는 서로 다를지라도, 거칠고 힘든 경쟁의 급류 속에서 자신의 본성을 잃지 않으려 매일처럼 나아갈 방향의 키를 고쳐 잡고 싸우는 모든 한국사람들은 태비와 같다. 그래서 이 늦은 밤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미래를 위해 새로운 도전을 고민하며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밤의 어두움으로 뛰어든 태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그 때가 내게는 언제일런지 창가에 서서 밤의 길을 따라 새벽이 걸어오는 소리를 듣는다. / 夢先生

박지훈 / 건축가,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정림건축 베트남 법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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