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May 2,Thursday

한주필 칼럼- 골프내기

아직도 골프에서 내기를 하시나요? 

젊은 시절에는 처음 골프를 시작할 당시는 골프 라운드에서는 당연히 내기를 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30년 전인데도 한 타에 5천 원 정도의 내기 돈이 걸리고, 더불판이 되면 만원이 되었으니, 내기 비용으로도 상당한 금액이 소요되었습니다. 특히 배운지 얼마되지도 않은 새내기 골퍼에게 ‘골프 시작한 지 6개월이 넘으면 모두 다 스크래치야’ 하며 핸디도 없는 내기를 강요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험한 내기 분위기의 한국에서 골프를 치다가 베트남에 넘어와 보니 여타 골프 환경이나 약속에 대한 가치가  좀 다르긴 하지만 내기만큼은 강도는 좀 약해도 여전한 위용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골퍼들이 내기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결국 골프 내기는 지역에 관계없이 어디서나 다 흥행하는 기본 사항인 듯합니다. 

그런데 내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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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골프 내기에 매달리다 보면 골프 스윙이 쪼잔해 집니다. 절대로 큰 스윙으로 위험한 샷을 하지 않습니다. 샷이 짧아도 페어웨이만을 노리고, 그린 주변에서는 무조건 퍼터를 잡습니다. 로프트가 높은 웨지 클럽으로 샷을 하다가 실수라도 하면 순식간에 한 두어 타 까먹은 것은 일도 아니니, 무조건 안전한 퍼터를 잡습니다. 최악의 퍼팅이 최선의 어프로치보다 낫다 라는 골프 격언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내기에 진심이 된 어느 양반은 벙커에서도 퍼터를 잡습니다. 벙커에서 자칫 한두 타 까먹고 이성을 잃는 것보다 잠시 동료의 눈총을 감수하고 퍼터를 드는 것이 이익입니다. 벙커에서 퍼터를 잡으면 안 된다는 룰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내기에서는 지지 않은 무서운 골퍼가 되지만 스윙은 기형적으로 변해갑니다.  

내기의 부작용은 이제 시작입니다. 

모두 내기를 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내기 금액이 높아지면 인성의 바닥이 다 드러납니다. 내기를 계속하다가 서로 얼굴을 붉히고 싸우는 모습을 참 흔하게 봤습니다. 결코 많은 돈이 아니라 해도, 일단 돈을 잃으면 속 아픕니다. 그렇게 시작된 아픈 속은 꽁한 마음이 되어 필드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작은 마찰에 소리를 증폭시킵니다. 평소에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작은 일에 신경이 부딪치는 갈등이 일어나고, 그런 소소한 갈등이 관계를 흔들어 댑니다. 내기는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고 얼굴 붉히는 임계점을 낮춥니다. 

더구나 이곳이 어떤 곳입니까? 객지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만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내는 낯선 고을입니다. 이곳에서 맺는 관계줄은 그리 질기지 않습니다. 작은 바람에도 쉽게 끊어질 수 있는 약한 줄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작은 마찰에도 관계 정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국에서의 내기 골프란 자신의 관계망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참으로 위험한 익스트림 스포츠인 셈입니다.   

이런 내기의 부작용에 시달리며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게임의 흥미를 돋우고, 내기로 이긴 돈을 주머니에 챙기지 않는 정도로 내기 수준을 조정하기 시작합니다. 서로 부담이 갈 수 있는 내기는 지양하자는 지혜가 발동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캐디 팁이나 음료수값 정도의 금액을 등수에 따라 차등을 두고 내는 형식의 게임을 주로 합니다. 

그런데 골프 게임에는 기본적으로 고질적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늘 고수가 이기는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런 골프 게임의 특성은, 부담이 가지 않은 적은 금액이긴 하지만 늘 고수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금액을 부담하는 하수를 결코 행복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은 없을까요? 늘 고수가 이기는 결과가 나오지 않고, 핸디캡에 관계없이 자기 게임을 즐긴후, 내기 결과에 따라 내는 돈이 다 비슷하다면 이런 문제도 해결될 듯합니다.  

최근에 이에 적합한 듯한 내기 방식이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빈증코참 회장을 지낸 박진구 회장과 공을 치면서 그가 제의한 내기 방식인데 골프를 잘 쳐도 못 쳐도 다 즐길 수 있고, 내기와 관계없이 동반자 모두 비슷한 금액을 부담하는 내기 방식인 듯합니다. 

게임 방식은 전반과 후반으로 나눠서 합니다. 등수에 따라 정해진 부담금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2,3,4 등은 각 10만동 20만동 30만동 40만동을 냅니다. 전 후반을 두 번 나눠서 게임을 하고, 자신의 등수대로 부담금을 내서 비용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구체적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반 9홀은 모두 핸디 없이 그냥 칩니다. 그리고 전반이 끝나면 그 스코어로 전반 게임의 등수를 정합니다. 핸디도 없는데 무조건 고수가 이기겠지요.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후반 9홀은, 전반에 친 타수를 핸디로 정하고 게임을 합니다. 거기에 전반에 일등을 한 사람은 전반에 자신이 친 타수보다 한 타 적은 타수를 핸디로 정하고, 꼴등을 한 사람은 전반에 자신이 친 타수에 한 타 더한 핸드를 갖고 후반 게임에 임합니다. 전반에 1등을 한 사람은 후반에 낮은 핸디캡으로 어려운 게임을 감수해야 하고, 꼴등한 사람은 널널한 핸디캡으로 후반에는 좋은 순위를 갖기 마련입니다. 

게임이 끝나 전 후반을 합산하면 모두 비슷한 등수가 기록됩니다. 게임의 승부는 일단 내기가 걸려있으니 흥미롭지만, 경기가 끝난 후 지불하는 내기 돈을 모두 비슷한 금액이 되니 다 함께 즐길만한 공평한 게임이 아닌 가 싶습니다. 이 게임의 이름을 정한다면 <반전게임>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이 게임의 특징은 그날 골프가 잘 안되어도 스트레스를 덜 받습니다. 즉 즐기는 게임이 가능합니다. 잘 치는 사람이나 못 치는 사람이나 다 공평한 느낌을 받습니다. 고수도 하수도 제 실력만큼의 게임을 할 뿐입니다. 물론 이 방식도 의도적인 조정이 가능하긴 합니다만, 고작 몇 푼 되지도 않은 금액을 아끼겠다고 자신을 속이겠다면 말릴 방법이 없지요.    

결국 이 더운 날씨에 맹물을 그냥 마시지 말고 시원한 얼음이라도 넣어서 마시는 정도의 기분 전환은 되는 내기 방식입니다. 승부에 져서 언짢은데, 돈마저 많이 내라면 더욱 곤욕스러운 일이니, 서로 배려하며 함께 골프를 즐기자는 의도가 담긴 이런 류의 가벼운 내기 방식을 만들어 즐기는 것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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